안일웅 한소자 부부와 <세상의 모든 계절>

지금까지제일행복한순간은요?"
"삶은당신에게친절했는가?또는당신은삶에친절했는가?"
"대화상대가있는건기적인거예요."
누구든지대화상대가필요해.
"혹시할말이있으면,내가여기에있다고,나얘기잘들어주잖아."
"우리전부노인이되잖아요."
"마음씨가참좋아."
"얘기할사람이있으니참좋네요."

이건한노부부의4계절과주변인들의외로움을그린영화<세상의모든계절>에서나오는대사다.

나는뒤늦게인간극장<그대그리고나>안일웅한소자부부를보면서이영화가떠올랐다.

부부란무엇일까?55년에걸친세월을완벽한연인으로잉꼬부부로사는두사람을보면서,그렇지,역시’대화상대’가있다는게얼마나중요한일인가!행복의선제조건은함께대화를나눌상대(꼭부부나연인이아니어도소통의상대)가있어야한다는거라고새삼느낀다.

<그대그리고나>-안일웅한소자부부

1940년8월20일생.연세대학교작곡과58학번.작곡가안일웅씨는20살에숙명여대문학의밤에서동갑내기한소자씨를처음만났다.

"그당시는빠이루란천이유행이었는데,낡아서올이다헤진빠이루코트를아무렇지도않게입고나온모습을보고아내에게반했습니다."

남편안일웅씨의말이다.

빠이루가뭐지?오래전들어본말같기는한데,정확한걸알수없어사전검색을해봤다.

*パイル(pile)파이로-타월이나비로드같이표면을테나보풀처럼울퉁불퉁하게짠천.

낡은빠이루코트를입은문학소녀와음악청년은1968년12월26일결혼했다.결혼식에맞춰작곡발표회를했다.신부헌정작곡발표회라는내용으로언론의주목을받았다.무용음악에매진하던십수년을제외하고,거의매년부인의생일(5월26일)즈음에작곡발표회를개최했다.그리고55년의세월을한결같은사랑으로살았다.두부부의삶이바로장대한로맨스소설이다.

남자와여자가사랑하고부부란어떤모습이어야하는가를보여주는두분.

이세상에남은것이아무것도없다할지라도사랑하고또사랑하라는계시처럼도보인다.

빈공간이란찾아볼수없이책과작곡노트연주회자료들로둘러쌓인울산의소형아파트나는두분의알뜰하게정돈된살림살이를감탄의눈으로보았다.값나가는물건이없어도,그삶의소중한흔적이자시간의보물들로빼곡이쌓인공간엔아이사진대신그동안길렀던반려동물사진들과고양이벽걸이장식과와인형들이있었다.자식이없는부부는개와고양이를길렀었단다.그반려동물이죽고,더는입양하지않는단다.’우리가나이가들었으니,우리가죽고나면그땐돌봐줄사람이없잖아요..’

대신부부는아침마다길을나서며길에사는개와고양이를위한음식을챙겨나선다.

매일아침호밀빵에햄과치즈를얹고,직접커피까지내리고아내의방문을노크하는남편과라면하나끓이는데도정확한물의온도를맞추기위해온도계까지동원하는아내.어찌보면닭살스럽기까지한부부는55년이란긴세월을이렇게서로를정성껏대접하며작곡가와시인으로서살았다.

추억의보수동헌책방!

부부가함께외출했을때남편의일로잠시기다려야하는시간동안한소자씨가보수동헌책방을찾는장면이나온다.중학생인오빠부탁으로보수동책방골목에서소설책들을빌리러다녔었다.그리고보수동쪽긴계단으로대청동꼭대기집으로올라가는동안쉬엄쉬엄오빠몰래그책(김내성의소설들)을탐독하느라해저무는줄도몰랐었던..

세상의모든계절(AnotherYear,2010)

각본연출:마이크리

출연:짐브로드벤트,레슬리맨빌,루쓰쉰,피터와이트

간단한줄거리

런던에사는노부부톰과제리는소박하지만행복한일상을보낸다.과거의잘못된선택과그로인한상처로힘들어하는제리의직장동료메리,퇴직을앞두고삶의기쁨을찾지못하는톰의친구켄등부부는주위의가족과친구들의외로움과슬픔,기쁨과행복을함께하는벗이되어준다.그러던어느날아들조이가여자친구케이티를소개하는자리에갑자기메리가찾아오고,그녀는그간말하지않았던자신의속마음을드러내며톰과제리의가정에불협화음을일으킨다…

마이크리감독은<비밀과거짓말>에서보여준소름끼칠정도의리얼리즘연출솜씨가인상적이었는데,<세상의모든계절>은이런마이크리감독의진가가더잘드러난영화이다.행복이나사랑을어떤시각으로볼것인가?모범적으로행복한한쌍의부부와그렇지못한주변인들과의관계.사계절의일상을보여주면서이행복한사람들이가진미묘한이기심과절제력그리고대비되는주변인들의소외와외로움을디테일하게보여준다.더섬세해졌달지,진정한소통대화인간관계란어떤형태여야하는가?관객스스로답을찾도록유도하는말하자면포슽의시작에다인용한대사도그렇지만,행복한삶이란외롭지않은삶이우선조건인거고,평생의대화상대를찾는것이야말로성공적인짝짓기이자,행복의선제조건이란사실이다.

서로소통이잘되어사이좋게결혼생활을잘유지하고있는톰과제리부부를중심으로뭔가가부족해서알맞는대화상대를구하지못한사람들(말하자면나같은외톨이들)연애와결혼생활에실패했거나반려자를잃어서솔로가된사람들메리와켄이톰과제리부부의집으로찾아온다.날씬하고예쁜얼굴이지만,세련되지못한태도에다중년의나이에도성적매력을드러내는옷차림을하는메리는그변변치못한스타일에서부터온몸으로외로움을드러낸다.사실이영화의진짜주인공은별로똑똑하지도못하고,정신적으로나감성적인면도성숙하지못해자신에게알맞는상대를찾기보다는가망없는상대를탐하다가상처만받는여자메리이다.

이메리를대하는톰과제리부부의모습을통해서행복한사람들이때론얼마나이기적인가를보여주기도하고,-사실모든행복한사람들은어느부분이기적일수밖에없겠지만,직업이병원의전문심리상담사인제리지만외롭거나불행한사람들을이성적인충고로만대할뿐이고,동료인메리와의관계역시그렇다.춥고외로워서이따뜻한가정의온기라도나누고싶어하는메리는예의와인정으로마지못해맞아들이는불청객이다.그보다는논리적인한마디나몸짓표정만으로자신들의영역을보이지않는잣대로냉정하게구분지어놓고있다는걸보여준다.

마이크리감독의따뜻하고섬세한통찰력을인상깊게보여주는이영화를보신분들도많겠지만,혹안보셨다면기회되는대로꼭보시라고권하고싶다.

톰과제리부부와안일웅한소자부부를비교하는건외람되지만,안일웅한소자부부의일상을지켜보다보니저절로<세상의모든계절>이생각났다.어느부분은많이비슷하다.

행복한가정은모두같은이유로행복하다.그러나불행한가정은각기다른이유로불행하다.

유명한<안나카레리나>의첫문장을들먹이지않더라도행복한부부의모습은같은이유로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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