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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NERUDA (영화)

402140.jpg-r_1280_720-f_jpg-q_x-xxyxx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었다. 1904년에 태어나서 1073년에 사망한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시인이다.

그는 1971년에 ‘ Vers de capitaine’이라는 시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었다. 이영화에서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부분은 없고 시인이며 정치인이었던 네루다에 대해 상당히 문학적 시각으로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칠레의 정치가 혼동을 겪고 있던 시기에 꼬뮤니스트를 자처하는 네루다, 사실 그는 처음에 불어선생이 되고자 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꼬뮤니스트 하면 마치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도 그것은 전쟁의 피폐함을 겪은 어르신네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피해 의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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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의 프랑스 문학인들은 대부분 꼬뮤니스트였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아라곤’이 그랬고 한국에서 잘 알려진 ‘연인’의 작가 마가렛트 듀라스가 그랬다. 그런데 초반에 꼬뮤니스트였던 작가들이 대부분 말년에 꼬뮤니스트를 탈퇴하는 것을 보면 그 이론에 문제가 있거나 인간의 본성에 맞지않는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372014.jpg-r_1280_720-f_jpg-q_x-xxyxx이 영화에서는 네루다가 정치적으로 쫓기는 모습 그리고 그의 가정사 약간과 시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약간은 초현실적으로 다루었다.

언어는 스페인어였고 자막이 불어였다.

429348.jpg-r_1280_720-f_jpg-q_x-xxyxx칠레가 위치하고 있는 남아메리카는 기질이 유럽과는 또 완전히 다른 곳이다. 이런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칠레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작업이 선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루다는 많은 여자들과 나체로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민중의 시인으로 이해되는 네루다를 쫒는 경찰관이 있는데 이 경찰관의 신상도 공개된다. 이 경찰관의 아버지는 유명한 경찰관이었고 동상까지 세워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루다를 쫒는 이 경찰관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었다.  엄마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또 한국식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이다.

360138.jpg-r_1280_720-f_jpg-q_x-xxyxx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결국 네루다가 프랑스 빠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데 독재정권 시절의 칠레 사람들에게는 프랑스가 구원의 나라였고 실제 나에게도 빠리대학 시절 같은 클래스에서 공부한 칠레 친구들이 있다. 독재정권을 피해 망명한 친구들이다. 프랑스 정부의 도움으로 공부를 끝내고 각자 독립을 잘 한 친구들이다.

감동 받는 영화를 대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가슴 후련해지는 느낌을 주는 영화, 아마도 네루다를 연기한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내가 본 영화들

132903.jpg-r_1280_720-f_jpg-q_x-xxyxx‘세잔과 나’ 라는 이영화는 화가, 세잔과 작가, 에밀졸라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문체가 좋아서 사랑을 받았던 에밀졸라는 당대의 프랑스인들에게 미움도 많이 받았었다. 두어달 전에 보았던 영화인데 시간이 없어서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구절은 화가와 작가가 여자들을 놓고 논평하는 장면이다. 세잔느 는 여자를 성욕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같고 에밀졸라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때문인지 여자를 다르게 보았던 것같다. 세잔느가 먼저 알았던 여자를 에밀졸라가 차지해서 약간의 감정적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도 있다. 세잔느는 늘 문학에서 에밀졸라가 차지한 위치를 그림에서 이루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451429.jpg-r_1280_720-f_jpg-q_x-xxyxx한국 영화, ‘아가씨’는 프랑스 여자들때문에 보게 되었다. 영화관에서 만난 프랑스 여자들이 한국의 부산에서 8년을 살았다고 하면서 이 영화에 관심을 보였었다. 18세기에 감옥까지 갔었던 작가 ‘사드’의 이론이 무분별하게 들어가 있는 것같던 이야기, 여자들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한국 여자들을 모두 이렇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들게 했던 영화이다. 누가 자막을 번역했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첫대사부터 틀리게 번역이 되어 있었다.

 

 

273282.jpg-r_1280_720-f_jpg-q_x-xxyxx‘oppression’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언젠가 본적이 있는 영화의 스토리와 같았다. 아버지의 여자에게 사랑을 구하는 자식의 병적인 행동 양태,

뻔한 스토리를 공포스럽게 구성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계속 보기가 싫었다. 중간에 나와 버렸다.

 

 

 

 

070308.jpg-r_1280_720-f_jpg-q_x-xxyxx‘아빠 또는 엄마2’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왠지 복잡하고 유쾌할 것같아서 선택한 영화, 오늘 개봉된 영화이다.

별거를 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 부인과 별거를 하면서 다른 젊은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아빠, 이들 사이에는 애가 네명이나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집에서 각자 살면서 늘 섞이고 .. 참으로 한국과 다른 풍속의 이야기이다. 남자의 이기주의.. 자기는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부인이 남자가 생겼다고 하니 질투를 한다. 아이들의 요구로 다시 합치려고 시도하면서 일어나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 아이들이 있으면서 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어쩔수 없이 이기주의자들인 것이다.

Une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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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éphane Brizé 감독의 영화, Une vie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영화화 한것이다. 스마트폰이 커피를 뽑아내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같은 19세기의 여자의 일생,  ‘여자의 일생’이 영화화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세기에 한 여자가 살아 가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표현해낸 것같다. 그 전에 나왔던 영화보다 한여자의 애환이 아들에 대한 애환까지 곁들여진 것같은 영화.  내용을 알고 보았기때문인지 이해가 가능했었지만 만약에 소설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더라면 약간은 혼동이 왔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내용을 영상으로 처리했다.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연기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내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미국 영화들이 감동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이면 프랑스 영화들은 대부분 현실을 객관적으로 표현해 놓아서  감동은 없지만 현실을 깨닫게 하는 장점이 있다. 아주 시적인 영화이다.

IRIS – 프랑스 영화

131351.jpg-r_1280_720-f_jpg-q_x-xxyxx 아침이 즐거웠다. 언제나처럼 일때문에 프랑스인들과 함께 했었는데 회계사 일을 한다는 프랑스인이 나에게 만유로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사실 몇년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내가 너무 돈을 밝히지 않았던 것이 문제인가 보다 하면서 수다를 떨었었는데 내 주위의 있는 사람들이 나때문에 마구 웃는 거였다.  수줍기로 말하면 지나쳐서 문제였는데 언제 내가 이렇게 발전했지? 그리고 나중에 한 프랑스 여자가 나때문에 즐거웠다고 일이 끝나자 마자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 기분으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사실,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서 IRIS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빠리에서 일어나는 형사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측을 불허하는 사건의 전개, 그리고 형사들이 당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영화였다. 또 프랑스 형사들은 단순히 범인을 빨리 잡는데 주력하지 않고 의문을 품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영화였다. 몽마르뜨 언덕의 큰 대문 집에서 일어나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세계, 나는 아직도 사실은 너무 보기 흉한 장면들이 나오는 영화에서는 눈과 귀를 가리는 바보같은 면이 있었는데 오늘은 끝까지 마음 먹고 지켜 보았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 구성 이 잘 되어 있으면서도 무언지 모를 정의가 실현된 것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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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욕망과 돈 이야기라고 함축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가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영화화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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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nier train pour Busan ( 부산행 마지막 열차) – 영화

093948.jpg-r_1280_720-f_jpg-q_x-xxyxx한국 영화 ‘부산행 마지막 열차’가 빠리에 왔다.

사실 먼저번에 영화관에 갔을때 이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너무 무서울 것같아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정으로 그 제안에 응했다. 의외로 영화관이 꽉 찼다. 보통때 영화를 보러가면 영화관이 거의 비어 있는 상태인데  한국 영화 상영에 프랑스인 관객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객석을 꽉 채우고 말았다.

이혼한 아빠가 엄마가 보고싶어서 부산으로 가겠다는 아이를 동행하고 가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인데 꿈에 볼까 두렵기까지한 괴물들의 등장에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간이 내내 불편했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영화를 지켜보는 것같았는데 그것은 단지 외면적으로 등장하는 흉한 몰골의 사람들에 압도된 것뿐이다. 저러한 규모의 인력을 동원해서 연기 시킬려면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을 거라는 점에서 감독의 용기를 조금 높이 살 수 있을 것같았다.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현세태를 전염병으로 은유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영화의 분장실력이 뛰어나게 발달했다는 점이 인정이 되었다. 나는 시종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영화를 관람했는데 옆의 프랑스 친구는 웃으면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그 친구 하는 말이 ‘이런 영화인줄 몰랐다’였다. 아마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사실만 알고 가자고 했던가보다. 내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관객들이 많이 몰렸다는 사실에 뿌듯했었다.

하지만 이런식의 영화들이 해외에 많이 나오면 늘 한국은 폭력이나 아주 비극적인 드라마의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인식되어 처음부터 한국을 얕보게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영화를  해외로 수출할때는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깊이 있는 사건들을 인간의 정신력으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들을 시나리오로 하고  영화 촬영소품들은 최고의 품질을 가진, 그리고 한국적인 미를 가진 소품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상을 탔다고 하는 한국 영화 작품들은 외국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비극들이 많았다. 아니 비극이라 표현할때는 조금 문학적 느낌이라도 있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내가 느낀 바는 철저한 무지로부터 시작되는 불행들이었기때문에 그 작품들이 상을 탔다고 해도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매우 예의바르기때문에 남의 약점을 꼭 찝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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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Date ( 첫번째 데이트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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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는 많은 영화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관은 Les Halles에 있는 영화관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날때마다 이 영화관을 즐겨 찾는다. 어제 오후에 오랫만에 영화관을 찾았는데  ‘First Date’라는 제목의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단번에 현미국 대통령 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웅변 능력을 모르지는 않았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요소로서 그의 웅변 능력을 미쉘 오바마가 미리 알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똑똑하고 현명한 여자, 미쉘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 여자였다는 것이 잘 드러나는 영화이다. 혼혈아로 태어나서 두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오바마도 역시 혼혈아로 태어나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사람으로서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다고 한다.  백인인 여자와 결혼해서 오바마가 태어났지만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버드를 중퇴한  이후 일정한 직장을 가져보지 못하고 46세에 요절했다. 오바마는 그아버지가 평생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었다는 열등감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었던 것같다. 미쉘은 그런 오바마의 열등감을 아주 잘 위로해주었다.  가끔 난, 아프리카 흑인들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한남자의 성공뒤에는 한여자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서양 세계에서는 조금 달랐었다. 이 이야기를 펼치자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이만 줄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결국 오바마가 성공하기 위하여 오바마의 아버지가 문화 충격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인종간의 갈등, 문화충격의 갈등… 그런 것들은 어쩌면 한세대만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는 위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어쨋든 미쉘 오바마가 아주 괜찮은 여자였다는 결론으로 난, 이 영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사진들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새로 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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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90로댕 박물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모자 쓴 아가씨’의 조각상이다. 로댕의 작품과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을 살펴보다보면 그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소재가 돌이기때문에 조각하는 것이 어려웠을텐데도 어떤 조각 작품은 입고 있는 드레스의 레이스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조각하고 있다. 맨 아래층에는 로댕이 살아 있을 당시의 비데오가 상영되고 있는데 화면이 좋지는 않지만 그의 풍채를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지만 로댕도 무언지 모르지만 무척 불행했던 남자같은 인상이다.  그 불행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불행해야 예술이 되고 흥미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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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상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거울을 통해서 보는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아 있을때 이렇게 자기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서 자신을 한번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아도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면서 얼핏 본 조각상이지만 너무나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조각을 만들고 난 이후에 그의 영혼이 저 조각상 속으로 숨어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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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조각상도 얼굴표정의 섬세함을 너무나 잘 표현해 놓았다.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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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각상들은 발자크의 얼굴표정과 서 있는 자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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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조각품은 ‘ IRIS’라는 타이틀로 ‘신의 메시지’를 뜻한다고 하는데

여자의 음부를 조각해 놓아서 당시 상당한 스캔달을 일으켰었고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그만큼 끌어 모으기도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면

꾸르베의 ‘origine du monde’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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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718월 중순, 본격적인 여름날씨가 시작될거라는 일기예보 진행자의 말대로 토요일 오후는 쨍쨍한 햇살 아래 무더위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댕박물관으로 들어선다. 평상시같으면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몰리겠지만 최근에 일어난 테러사태로 인해 박물관 안은 한산했다. 여름의 뜨거운 햇빛만이 정원 쨍쨍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중고등 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숱하게 들어온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24살이나 연상인 로댕을 사랑했던 까미유 끌로델… 그와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로댕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아래 사진들은 로댕 박물관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내부의 사진들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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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산 상속자로 알려졌던 Grande Mademoiselle, Anne marie louise d’orléan

anne_marie_louise_dorlean-2요즘 신문을 보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논란이 많다. 17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산 상속자로 태어나서 무릇 유럽 각국의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안느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의 일화가 어제 프랑스 방송에서 소개되었다.

안느 마리는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많은 유산을 상속 받는 상속자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유산이 남편보다도 자녀에게 상속되었던가보다. 안느 마리는 루이14세의 부모에게서 길러진다.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루이 14세의 엄마는 루이 14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안느 마리에게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아이와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안느 마리는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루이 14세와 결혼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은 그녀의 소원을 이루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43살이 되었을때 자신보다 6살 연하의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재산을 탐낸 주위 사람들의 방해로 곤란을 겪었고 루이 14세는 그 연하의 남자를 성에 가둔다. 안느 마리는 자신의 재산 일부를 루이 14세의 아들에게 주는 조건으로 그 남자를 구해내고 비밀리에 결혼도 했다고 하지만 오래가지 않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1693년에 자궁관계 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안느 마리 루이즈는 외모가 이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엄청난 재산이 무릇 왕자들이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던 이유였던 것이다. 20세기에 노벨 문학상을 탔던 프랑스아 모리악의 소설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많은 재산을 상속할 상속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남편을 독살하려고 시도했다가 들키지만 친정 아버지가 돈으로 마무리하고 시집 식구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영화화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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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룩셈부르크 공원에 있는 안느 마리 루이즈의 동상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

IN3F7747프랑스에서는 늘 밤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텔레비젼 방송들이 괜찮은 편이다. 어제 밤, 우연히 텔레비젼을 켰는데 음악과 문학을 어울려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천재 피아니스 François rené Duchâble가 초대되었다. 그는 1952년생이다. 단 한권의 책으로 유명해졌다는 금발의 여류작가와 연예인이 같이 초대되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서곡’부터 연주되면서 시작되었다. 피아노 선반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의 손놀림, 그리고 제목만 대면 즉시로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그를 보면서 저만큼 연주하기 위하여 어쩌면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피아노 연주에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13살에 프랑스의 콘세르바뚜아르에서 최고의 연주상을 획득했고 2003년에 은퇴를 선언했던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빈틈없이 움직이는 건반위의 그의 손놀림과는 다르게 그는 눈에 엄청난 슬픔을 담고 있어 눈물이 금새라도 넘쳐내릴것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감성이 사춘기 아이처럼 풍부한 것일까?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몇곡 연주한뒤에 초대된 여류 작가가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  늘 카오(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쇼팽을 연주해 달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피아니스트는 쇼팽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2003년에 은퇴한다고 했는데 그는 왜? 다시 나온 것일까? 천재이기때문일까? 서양인들의 복잡한 생각을 다 가늠할 수 없는 아시아인인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천재의 삶도 결코 평탄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재능을 타고난만큼 내면으로 느끼는 고통은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결국은 평범한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생각이 미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저렇게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럽기는 하다. 생각해보니 한국에는 뽕짝을 들으면서 함께 공감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때 우리 한국인은 분명히 이성보다는 흥이 발달한… 그래서 신나는 민족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