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둑

며칠전휴일아침나절

한가함으로베란다마루에앉아있으려니

엄니께서주방식탁위에서무엇인가를

주섬주섬챙겨서소곳쟁이에

쟁여넣으시는것이보여

다가가보니

안해가가게에서가져온

오천원권과천원권지폐몇장이

사라져버렸다

순간당혹스러웠다

생전에이러시는양반이아니셨는데

며느리에게물어보시지않고

조금의망설임도없이

저러시다니…

덜컥,걱정이앞서는자식의마음을

아시는지모르시는지

천연덕스러운표정으로

태평하시었다

용돈을드리면

어디다깊숙히감춰놓으시고는

정작당신이못찾으시니

맨날용돈이모자라시나보다

어느때는찾아드리려방안을죄뒤지면

당신앉아계시는옥메트밑이나

속옷챙겨넣어드린서랍장

외씨버선끄트머리에

꼭꼭숨켜놓으시고

엉뚱한나만의심하시곤하시길벌써세번째

당신마음도이젠찾지를못하여

팔십년세월저편

깊숙한곳에숨겨두셨다

오늘식탁머리에서

"어제우경애비가용돈주고간돈이이만환이비여"

"봉투에서꺼내시는거옆에서보니까맞더만유"

"그려?"

"잘세여봐유"

"헌데참이상하지"

"왜유?"

"모아둔돈들이또몽땅없어졌어"

"……"

"애비가내방에들어와훔쳐간거아녀?"

"???"

"암만생각혀두애비아님훔쳐갈사람이읎어"

"왜에미는의심안하시구저만의심허시는지모르겠네유"

"아?에미는큰가게를해서돈을많이불구애비는사무실에만댕기잖어"

"그래두그렇지우티키엄니자식인디도둑으로물어유."

"그럼집안에애비와애미뿐인디누가훔쳐갔겠어"

"저두엄니보다돈많은데뭐하러엄니돈을훔쳐유.훔치길…"

"……"

"엄니는에미만이뻐하시구애비만미워하셔유"

"그러니우티혀"

졸지에당신용돈도둑으로몰린아침

엄니나름의이상한알리바이까지

들이미시는통에꼼짝없는도둑아들이되었다

잃어버린것이어찌당신용돈뿐이시랴

요즘들어자꾸잃어가시는옛날의총기는다어디로갔단말인가

처녀적마을훈장이셨던외할아버지께나

또는마실온마을아낙들께

그긴긴장화홍련전이나춘향전과

이수일과심순애까지

줄줄줄꿰어외워서들려주셨다는당신의총기

이젠고향마을에몇안남으신

당신연배의엄니분들도

몰라보시고

고향집헐린자리에가서도

당최어딘지가늠을통못하시는당신

당신이내내자랑하시던

그맑던총기는어디다두셨는고

이젠

당신의나이조차자꾸틀리시고

정신이희미해지며혼미함으로드시는당신

당신께도둑으로몰려

현관에서출근인사를드리는데

고얀히마음이짠하여

서있으려니

헐,헐,헐,해맑갛게웃으시는당신

금새도둑누명을씌운일조차잊으신

당신모습앞에

마음먹먹히애끈한마음이되어

출근해서도일손이안잡혀

책상위서류더미가

하나가되었다가

둘이되었다가한다

그래도이세상에한분뿐인

내마음의기둥이신당신

엄니,

당신의세월과용돈까지훔쳐간

이못난아들을어찌하면좋을까유

사무실앞화단에핀백일홍꽃이

흐릿해지는시야가득붉게흔들린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