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석평전
BY glassy777 ON 5. 27, 2009
이틀밤과삼일낮을
지리산의품에서지내기위해
새벽3시에해드랜턴을켜고
캄캄한성삼재를오르기위해출발하는
당신뒤를묵묵히지켜주며따르고있었소.
오체투지라는책에심취하여
하루에삼백이십배를매일같이하는당신.
체력의근간이단단해지는그무엇으로인하여
지리산종주를하자는당신의제안을받아들여
당신을따라길을나서며기실일말의염려가없었던것은아니었소.
낮은관목숲을지나며
사위가칠흑같이어두운중에
하늘의별들이갑자기머리위로낮아지며
쏟아질듯빼곡히빛나는성삼재산마루.
초생달이뉘엇하게걸리었고
아래로보이는사바세계의저붉은도시의불빛이
남원쯤이아닐까생각하며별똥같이꼬리에꼬리를잇는
산꾼들의헤드랜턴불빛을따라
성삼재밤길을당신과내생각이나란히넘고있었소.
노고단쯤에서부염해지는
동녘하늘여명의빛이
땀으로범벅되고숨이턱에차오르는
당신가슴과내가슴에환희로비춰들고있었소.
산새들이아직잠에서깨어나지못한소리로
산객들이오르는숲길마다에서
지리산의품으로안겨드는당신과나를반겨주었소.
저아래구름을보오.
우리가지나온산잔등이에비춰드는새벽의산빛을보오.
반야봉이어디메고
피아골깊은골짜구니가어디인지
그것이중하지않소.
저깊은밤을깨치고묵묵히걸어온
저길에서의단상들이별빛같이수많았다는것.
반야봉넘어넘어
어디쯤에화엄사가있어
밤불예소리가
당신과내가슴에들려왔던가?
날이밝아걸어넘는산길에서
주체치못하게쏟아지는잠이
당신과내발길을휘청이게하였소.
숲속반석바위곁에나란히누워
토막잠으로눈을붙이는찰라에자장가를불러주던그새는
피안으로드는팔색조였소.
자박자박걸어가는산꾼들의발자국소리는
구름에달가듯달관의경지로드는
신선들의짚신끄니는소리에다름아니었소.
다시깨어일어나비몽사몽걷다가
문득우리앞에나타난샘.
당신의이름자인정선비와똑같은선비샘이었잖소.
얼마나신기하고시원하고반가웠나모르오.
그옛날장터목까지지리산장을보러넘던선비들이
목을축이고넘어가던샘터가아니었나생각했소.
달디달아서머리끝까지쭈뼛서도록차디찬샘물이
철철넘치던후덕한지리산.
산을다니다보면옹달샘하나없는가난한산이있고
이리석간수를하루왼종일산꾼들에게보시하는
후덕한산이있소.
후덕한사람의그무엇을닮았소.
그리고선비샘이름의당신을닮았더랬소.
우리부부를아까부터한참을지켜보던다람쥐한마리.
절기를따라가지못하여
초봄의산목련이이제사피어나는지리산자락.
매서운긴겨울을견디고피어난인동초에견주리오.
화단에곱게핀양귀비에비견되겠소.
그래서더욱아름다운산목련.
햇볕이강렬하다가산안개가덮쳐오듯올라오는산장에서
고생한당신의발바닥을지압하면서
노고단의고단한산능선을생각하였소.
우리지나온인생길도저와같았으리니…
그리고지리산상상봉에낙락장송같은청빈한마음으로
구름같이살아온우리한생애를생각하는깊고깊은사념으로들었소.
석상같이앉아무연히내려다보는지리산.
당신과나
저아래로낮아지는下心으로만살아가리니..
이윽고저물어가는산자락을부여안고돌같이앉아있노라니…
우리가그토록핏물이배어들듯걸어온족적이
장엄토록저물어가는지리산한자락에
묻혀가고있었소.
그리고는몸을뉘어쉴
너른어머니품같은세석평전이
우리앞에펼쳐지며맞아주었소.
지리산에서맞이하는두번째밤이
우리의품겨드랑이사이로잦아드는
세석산장에서의밤.
너무도아름다운세석평전에안겨드는잠자리에서
뜬금없이지나온산능선마다마다에서린듯하여
우리를닮은한생애가고얀히서러웠소.
깊은산속을헤매이다가조난을당해고립되었다가
가까스로어머니젖가슴품안으로파고드는
어린아이같은心中으로
산구비산능선길을열다섯시간을걸어넘어그예끈당도한
우리에세석평전의밤은고요히깊어갔소.
아,세석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