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믿고어떻게살아가나/서른먹은사내가하나잠을못잔다/먼기적소리처마를스쳐가고/잠들은아내와어린것의베개맡에/밤눈이내려쌓이나보다/…/먹고산다는것/너는언제까지나를쫓아오느냐/등불을켜고일어나앉는다/담배를피워문다/쓸쓸한것이오장을씻어내린다/노신(魯迅)이여/이런밤이면그대가생각난다/온세계가눈물에젖어있는밤/상해(上海)호마로(胡馬路)어느뒷골목에서/쓸쓸히앉아지키던등불/등불이나에게속삭거린다/여기하나의상심한사람이있다/여기하나의굳세게살아온인생이있다.’/김광균‘노신(魯迅)’
시인은시를쓴다는것에대한회의(懷疑)로불면의밤을지샌다.젊은나이엔열정하나로가난을이겨냈지만나이들수록생활의짐이어깨를짓누른다.시인은노신을생각한다.노신은일본에서의학을공부하다문필로조국에기여하겠다며문인의길로들어섰다.좌·우파협공을함께받으면서도꿋꿋하게이념문학을비판했다.상업학교를나온회사원김광균은결국시작(詩作)을멈추고사업가의길로들어서무역업으로성공했다.먹고사는것에관한시인들의방황은60년뒤라고다를게없다.
‘시인되면어떻게되는거유/돈푼깨나들어오우//그래,살맛난다/원고청탁쏟아져어디줄까고민이고/평론가들,술사겠다고줄선다/그뿐이냐/베스트셀러되어봐라/연예인,우습다//하지만/오늘나는/돌아갈차비가없다.’/한명희‘등단이후’
문학지시한편고료가3만~5만원.원로들이나10만원을받는다.시집을5~6권낸중견도새시집을2000부쯤인쇄한다.다팔린다해도한권에4000~5000원이니인세로100만원이수중에떨어진다.100~300권을자기가사서나눠보는문단풍습을따르자면적자다.다른직업없이전업시인으로살기란여간고단한일이아니다.
‘―MENU―//샤를르보들레르800원/칼샌드버그800원/프란츠카프카800원//이브본느프와1,000원/에리카종1,000원//가스통바쉴라르1,200원/이하브핫산1,200원/제레미리프킨1,200원/위르겐하버마스1,200원//시를공부하겠다는/미친제자와앉아/커피를마신다/제일값싼/프란츠카프카.’/오규원‘카프카’
이커피집메뉴는세계적예술가와석학들이다.예술과철학이상품화·규격화·도구화한시대를빗댄다.그중카프카가가장싸다.시인의제자는생활인으론제일가난한시인이되려고시를공부하겠다고한다.시인은주변머리없는제자가‘미쳤다’고혀를차지만속으론기특하게여긴다.이자조적(自嘲的)시엔시인의자존심이반어법으로숨어있다.하이데거는세상에서가장죄없는일이시쓰는일이고가장죄없는사람이시인이라고했다.
‘누군가나에게물었다.시가뭐냐고/나는시인이못됨으로잘모른다고대답하였다/무교동과종로와명동과남산과/서울역앞을걸었다/저녁녘남대문시장안에서/빈대떡을먹을때생각나고있었다/그런사람들이/엄청난고생되어도/순하고명랑하고맘좋고인정이/있으므로슬기롭게사는사람들이/그런사람들이/이세상에서알파이고/고귀한인류이고/영원한광명이고/다름아닌시인이라고.’/김종삼‘누군가나에게물었다’
김종삼의시인론은거창하지않다.가진것별로없어도착하고넉넉하고따뜻하고슬기롭게열심히살아가는사람들이시인이라고말한다.무구함으로세상을떠받치고삶을밝히는풀잎기둥들이시인이라고.
‘내가다닌대학에는많은/국문학적얼굴들이있다.그중/국어학교수얼굴들이흔한말로가장/고상하고원만하고이른바정품이다/막말로그중교수답다.그다음/고전문학교수얼굴들이약간은/축늘어지거나모가나거나/그렇게조금씩비뚤어졌는데/이것도막말로정품에서그리크게/벗어나지않는다.즉교수얼굴이라해도/크게구라가아니다.건데/현대문학교수얼굴들은,딱깨놓고말해서/이건교수얼굴이아니다/짓눌려서짜부라지고/모가나서날이서있고/일그러지고찌그러져,이건참말로/영교수얼굴이아니다.건데건데/이상하게도말이다.그짜부라질대로/짜부라진현대문학적얼굴들이/진짜얼굴로다가오는거있지/대학다닐땐지긋지긋하던얼굴들이/너무너무보고싶은거있지/나이사십넘어서니까그게바로/내얼굴인거있지,문득문득그얼굴들/막껴안아주고싶은거있지/건데건데말이다/그보다더한국문학적얼굴이있는거있지/그게박재삼이나김수영같은얼굴인데/중풍병에걸려손을덜덜떠는/말라비틀어진명태같은박재삼얼굴이나/내詩에조차도침을뱉아버릴것같은/독하기가왜고추같은김수영얼굴이/진짜진짜,진짜얼굴로다가오는거있지/막,눈물나게,다가오는거있지.’/서림‘내사랑하는국문학적얼굴들’
스스로국문학교수인시인은국문학전공교수들을정품,준정품,개성품으로분류한다.그중에시인의얼굴이가장입체적이고개성적이라고우스개처럼품평한다.진짜인간적이고매력적인얼굴이라고결론짓는다.자유롭고창조적이고누가뭐래도자신만의개성이또렷한사람들이시인이라는,애교있는자찬론(自讚論)이다.
시인은맹인가수다.보이지않는세계를심안(心眼)으로꿰뚫어보고,들리지않는우주의소리를섬세하게들어낸다.보통사람이보고듣지못하는것에감응하고교감한다.그렇게해서시인은사람들일상에새로운서정의울림을불러일으킨다.
‘이태리맹인가수의노래를듣는다.눈먼가수는소리로/느티나무속잎틔우는봄비를보고미세하게가라앉는/꽃그늘도본다.바람가는길을느리게따라가거나/푸른별들이쉬어가는샘가에서생의긴그림자를/내려놓기도한다.그의소리는우주의흙냄새와물냄새를/뿜어낸다.은방울꽃하얀종을울린다.붉은점모시나비/기린초꿀을빨게한다.금강소나무껍질을더욱붉게한다/아찔하다.영혼의눈으로밝음을이기는힘!/저반짝이는눈망울앞에소리앞에/나는도저히눈을뜰수가없다.’/허형만‘맹인가수’
평론가김재홍은시인을이시대의곡비(哭婢)라고했다.초상집을돌며곡소리가끊기지않도록상주(喪主)대신곡(哭)을해주는노비라고했다.시인은뭇사람을대신해시대의아픔과슬픔을통곡하고사람들의절망과좌절,그리움과괴로움,고통과비탄을곡진하게울어준다.
‘저여자/내전생의저여자/부엌칸부뚜막에/암코양이처럼걸터앉아/막걸리한사발/꿀물마시듯꿀떡꿀떡/시퍼런김치줄기에돼지고기보쌈해/야무진입매다시는/나무비녀쪽진머리/푸르죽죽한낯빛의/눈꼬리샐쭉한/소복의저여자/조붓한어깨들썩이며/아이고아이고/진양조단조로/어수선한상가(喪家)분위기/휘어잡고있는/저여자/울음을웃음처럼/갖고노는/내전생의/저/여자.’/이명주‘곡비’
시인은사람들의눈과귀를맑게해주고가슴과머리를씻어준다.때로사람이밉고사는게힘들때한편의시는무엇보다큰위안이다.연민·진정·사랑으로열심히살아라도닥거려주는시인들이많아서그나마이시대가살만하다.좋은시에대한기다림은옛당(唐)시인을모시던시동(侍童)의마음이다.
‘주먹코인저야베옷입어마땅하니(巨鼻宜山褐)눈썹짙은주인님은글을지으셔요(龐眉入苦吟)/주인님이시를노래하지않으시면(非君唱樂府)만추의가슴앓이누가알겠나이까(誰識怨秋深).’/이하(李賀)‘시동의노래(巴童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