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앞 그집

樂安이었다.

세상에서제일편한마을에들어

뒷짐을지고한가로운마음으로

이집담장과저집골목쟁이를돌아나가노라니

마음이樂安이었다.

양지쪽마당가에서

오수를즐기던개한마리

객을보자게으른걸음으로

아무도없는집안을어슬렁거리며

주인을대신하여집을지킨다.

단촐한살림살이

고요한뜨락.

세상을살아감에더무엇이필요하리오.

온나라가겨울로접어들어얼어붙었는데

이곳낙안읍성

성문앞그집의채마밭에는

따순봄날이었다.

성곽을둘러치고

그안에들어앉은편안한초가마을.

뒷산이마을을안아들어

어머니품속같은낙안읍성.

텃밭에앉아

따사로운기운과편안에든마음을

갈무리하였다.

이렇게먼길을달려와

하룻밤을묵어가는여행길에서

나와조우하는길나그네心事.

가을걷이를나가셨을까.

아무도없는툇마루에

다딤이돌위늙은호박너댓덩이.

어디서본풍경이었을까?

눈감고앉아

마룻장을타고올라오는따스한온기가

몸안으로퍼져나아가는감촉을느껴본다.

아,그랬어.

오십여년저편의幼年의뜨락

내고향집마루였어.

할아부지께서사랑방에서오간을띠시다가

가끔씩놋재떨이에장죽을치시며

내뱉으시던바튼기침소리.

마당한가운데서초가지붕에얹을

용마름을엮던저너미아저씨의

큼,큼,대시던헛기침소리.

헛간채에이엉을얹으며

사다리를오르내리며막걸리를마셔대던

울집일꾼송삼이아저씨의

쿨럭,쿨럭,기침소리.

일손을마치고집안구석까지

싸리빗자루로깨끗이쓸어내면

지푸리기한올없이

정갈하던집안.

안방에누워눈만깜박거리던내귓가로

점점크게들려오던

괘종시계소리.

동네에사람하나없는듯

고요한초가마을.

뒤란장독대를여닫는엄니의손길에서

뱃속에서꼬르륵,

입안에마른침이돌았다.

눈감아기대고앉은봉창아래

유년의고샅길을거닐다가눈을뜨니

성문앞그집이었다.

호리병에안주얹은사기그릇하나.

안해가연거푸따라주는동동주잔이

목에걸림도없이술술넘어갔다.

이래서술이라던가.

경첩이낡아덜컥거리고

눈가로고실고실올라오는취기.

안해와의

가뭇해지는閑談.

상위로그득해지는밥상.

취기어리던눈이커지면서

밥상에다가앉아

무엇먼저수저가가야하나

비벼서먹어야하는지

된장찌개와이벙저벙겅거니들을

맛으로곰씹어가며먹어야하는지

밥상앞에앉아

배부르지않은포식.

행복한밥상.

초가지붕위에

잎을떨군박들이

옹송거리는풍경.

처마아래에

바가지로쓸요량으로

말리는조롱박.

초가지붕넘어

홍시만남은감나무.

그넘어山.

그리고

구름한점없는하늘.

부엌자싯물자박지안에서

보리밥톨몇알갱이들어박혀

동동물위에뜨던수세미.

아부지가실에꿰여

바람이잘드나드는마루위

서까래에매달아꼬득꼬득말리던수세미가

돌담위에서해바라기를하는

한가한골목쟁이를돌아나왔다.

철없을일이다.

사람으로태어나

철없던시절이언제었던고.

눈물없던시절이언제이던고.

철없는동백꽃이피어

길가던나그네들의발걸음을붙잡는동백나무.

나를보시와요.

나를돌아다보시와요.

그리바삐간들세월에엉켜넘어지기뿐더하시겠사와요.

나와잠시노닐다가시와요.

잠시나와앉아

옛노래나한소절부르시와요.

[동백아가씨]와함께

그리움에지쳐서

울다가지치드라도

잠시앉았다머물러가시와요.

철없이피어난꽃이라고

손가락질일랑하질마시옵소서.

樂安에서철없이피어나

落安을해야할

짧디짧은서러운한철.

철없이피어난

나와노닐다가시옵소서.

머뭇대며떠나지못하는발길.

여기낙안읍성에서

왼종일을

골목쟁이만돌고돌아

해루해를보냈으면좋겠는데

길나그네갈길은

구만리먼먼길.

서쪽창아래에

저녁햇살이비스듬이눕고

아쉬운마음은천리장천에닿는데…

차마떨어지질못하는발걸음.

저녁해거름에

초가지붕들이낮아지고..

봉당으로눕는裸木

감나무그림자.

엄니는어디가셨나?

헛간앞에지게

느릿한저녁해가한짐인데..

아부지는어디가셨을까?

할아부지께서

건너마을에출타가셨다돌아오시는길.

할무니께서

산모퉁이마을로마실가셨다돌아오시는저녁길.

유년의고샅길을함께걸어가던…

아,그립고그리운

성문앞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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