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새해 첫날

새해연휴를뒹굴방굴

가족여행을계획했다가

눈길에그마져도포기하고

청주로핸들을돌려극장에앉다.

[전우치]라는데[홍길동]이나매한가지.

먼야그인지

기승전결이뒤죽빡쭉하야

중간에살풋잠이드는데

큰놈한테들켜버리고서야간신히정신을수습하야

팦콘몇알과얼음콜라로입을적시다.

머..홍씨나전씨나정신쏙빼기는마찬가지였다.

34만인지43만인지관객동원했다는말에

눈과귀만어지럽히고야말았다.

우짜둔둥기분은

노면에살포시얼어붙은살얼음모냥으루다

가족들과함께했다는그하나로

기분이살짝좋았다.

눈은참이상한기운을가지고있다.

주위의풍경을고요속으로들게하기도하면서

모든삼라만상을얌전히감싸안아주니

참으로인간의본성마져순하게한다.

집앞베란다에서내려다뵈는인라인스케이트장풍경.

소나무도동양화속의벽오금학도로다.

거실의따순겨울햇살아래

주방에서설겆이하는안해의달그락거리는소리에

엄니와함께깜박졸고앉았다가

소나무가그려진벽오금학도속으로걸어들어가는데…

스산한바람이불고지나간저언덕넘어엔그리움이있을까?

내어린날의맑은영혼이있던그곳엔아련함이있을까?
날저물어땅거미지는이황량한겨울들판에
저녁연기돌아나가는내지난날의그곳엔그무엇이있을까?

내고향초가집처마끝의고드름처럼

아,아드막하게그리워지는지나간날들이여..

후미진산골짝의떡갈나무잎새마다에

이젠돌아갈수없는그리운어린시절.

비둘기집이있던이장댁네돌담길너머
저녁기러기날으는저수지너머초가지붕위로내리는겨울햇살.
어디선가들릴듯한소리

보일듯한얼굴

잡힐듯한그리움..

아!

그무엇이그리움인가.

풍금소리들리던국민핵교
웃으면한쪽볼에고운볼우물이지던살구나무우물가집의수연이누님.
구슬땀을흘리며고개넘어로지게지고
소몰고넘어가시던저넘이아저씨의티없이순박한미소..

생의수레바퀴에서

이제멀어져가는아련함이여~

봄볕이따사롭던어느날

마당한구석에서종종거리던병아리떼처럼
목련꽃화사하던그어느날처럼

높다란미류나무위울어대던말매미처럼
눈이부실만큼하얀목화꽃처럼
수실말작은예배당의종탑처럼

그렇게그렇게그리움만남아있다.

매서운북서풍이불고간운동장한구석엔

플라타너스잎이산더미만큼이나쌓여있고
바람에흔들거리는교실창문틈으로추운겨울바람이
발가락이삐죽이나온검정색나일론양말

발뒷굼치에덧데어꿰멘빨간색의양말

중학생이된형님이입던교복을늘입고다니던아이들

마루바닥에양초칠을하며보내던그추웠던겨울..

발이시려동동구르며산수문제를풀던그지긋지긋했던겨울
솔방울을보자기에싸서등교하던그시절

방앗간에서왕겨가마를지게에지고오셨던아부지

솔방울을태워서매캐했던교실.

그난로위에올려놓았던보리밥의낡은양은도시락.
깻잎과무짱아찌김치냄새가교실을진동했던그시절.
오직방학날짜만손꼽아기다렸지.

가난에찌들고삶에지친아이들의얼굴엔늘마른버즘이피어있었고

검정색낡은교복소매자락엔콧물이말라번질거리기일쑤였다.

무릎이툭튀어나온겨울내복재봉선사이사이마다엔이가굼실굼실거리고

겨울밤이면내복을벗어할무니께드리면

화롯불에톡,톡,튀던서캥이타는냄새누릇하였다.

단발머리순자머리엔늘서캥이가허옇게살림을차리고있었다.
어느햇살좋은날참빗으로훝으면한되박이나나오곤했다.

그렇게살아오던우리는어느날엔가

짧은겨울해처럼이렇게한걸음에다가와거울앞에선자신을발견하곤
짧은생의너무나빠른흐름에

설움과회한에잠길겨를도없이또그렇게흘러가고떠밀려가고있다.

지천명의중간길에접어든이제는
겨울이깊어가는산고개중턱에는

흰눈처럼날리던억새꽃도져버리고

밤기러기울며날아가고있다.

흰눈발이듬성듬성고갯길에쌓이고

저너미마을어귀오래된전나무위엔까치집이매서운겨울바람에흔들리고있었다.

문풍지우는소리에겁이많은주부는뒷간에도못가고

제엄니치맛속을파고들고있었다.

밤마다형제들이장난치던이불속무명솜이불자락엔

실밥이터져솜이뭉쳐있고

베개속이터져버린방한구석엔온통왕겨투성이었다.

멀리서부엉이소리들려오는겨울밤은그렇게그렇게

할머니의옛날얘기와사그라들어가는화롯불속에

인두로뒤적거리며노릇하게구워내신인절미냄새.

꿈길저편에서들려오는소리.

"여보,우리칠장사에나걸어넘어갔다와요,"

백호랑이가토끼를쫒다가놓쳐버리고침만삼키듯

할무니가구워주신인절미도못먹고

벽오금학도에서쫒겨나와서앉아

볼따구니에마른침흐른자국

쓰윽!~문질러보며어슴츠레둘러보는거실에는..

경인년새해

청신하고맑고따순기운이가득넘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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