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밤새함박눈이소리도없이엄청나게쌓였다.

쪽유리로살짝내다보니

토담위에서바람에날린눈가루들이

마당가득빤짝,빤짝,흩날리고있다.

드디어오늘이설날!

엄니께서장에서사온나이롱양말과

타이어표검정고무신을머리맡에모셔두고잠을잤다.

엊저녁방안에서신어본그매끈한양말감촉과
보들보들한고무신의감촉이아직도남아있다.

저녁내내고무신에코를대고

얼마나냄새를맡았는지모른다.

안방에는벌써

윗마루석가래에얹혀있던커다란제사상이펼쳐있고

방금엄니가뜨신물행주걸레질을하셨는지

김이모락거렸다.

사랑에는새벽같이넘어오신저너미아저씨께서

창칼로햇밤을까서다듬고계셨다.

‘킁,큼,벼엉유니~일어나았냐?’

‘야!’
‘너인자몇딸이냐아?’

‘일곱살됐어유’

‘일곱딸?’

‘아뉴?일곱!~일곱살유’

‘응..일곱딸..’

언제나저너미아저씨는혀짧은소리를하신다.

우리할아버지한테도’컨아부지’라고부르신다.

작은누야는노랑저고리에빨강치마를입었다.

큰누야가입던옷인데도참이쁘고곱다.

내옷도엉아가입던옷인데

소매가좀긴것만빼곤내마음에쏙든다.

큰누야는서울서내려왔는데

엄청이쁘게변했다.

속눈썹엔시커먼것을발랐는데보기싫진않다.

봉당에삐딱구두는아무리봐도이상하다.

엉아는중학생교복이참멋지다.

모자에반짝이는’中’이라고쓴모표를

매일같이소매끝으로문질러서더멋있는것같다.

아버지는한복에흰두루매기를입으셨고

엄니도한복을입으시고

치마중간에아버지헌넥타이로질끈동여매시곤

종종걸음으로음식을장만하신다.

할아버지두루매기는잿빛이나는양단이다.

아버지의광목흰두루매기보다더두껍고멋있다.

할머니는아랫목화롯가에서

젖먹이동생의암죽을끓여서막먹이고계셨다.

유리대롱을타고오르락내리락하며

동생은열심히도빨고있다.

내동생도오늘이설날인거..알까..모를까?..

우리언니저고리노랑저고리
우리동생저고리색동저고리
아버지와어머니호사내시고
우리들의절받기좋아하세요

무기장태아저씨,

황샛말아저씨,

방죽말아저씨,

마르택이아저씨,

조합장아저씨,

모두안방으로건너오셨다.

안방에는어른들로꽉차서앉을자리가없었다.

웃방으로올라가니할머니가화롯가에앉아

헌떡(흰떡)첨을구워서대추두알과주셨다.

도리질했다.

있다가제사끝나면맛있는과자랑

돼지괴기(고기)를먹을거다.

마루에서할아버지의큰기침소리가났다.

이제제사가시작되나보다.

할아버지는머리에뾰족뾰족하고까만높고

이상한모자를무섭게쓰셨다.

할아버지가들어오시자

아저씨들이한꺼번에일어서니와시시!~하는

두루매기옷스치는소리가났다.

느린동작으로꿇어앉으신할아버지는

향나무토막을칼로삐져서향로에다꽂았다.

향나무가타는향냄새가참좋다.

코를벌름거리니

음식냄새와향냄새가허기를재촉했다.

몇번을절했는지모른다.

엎드려서옆을빼꼼히봤다.

엉아도나같이눈치를보면서절을하는가보다.

어른들은이마를한정없이방바닥에대고있다가

할아버지를따라서일어섰다.

‘으..언제나끝나는지..할아버지는참느리시다.

떡국과탕국이몇번을들락날락했는지

세다가까먹었다.

내눈길은아까부터젯상의수북한과자와

괴기와부침개에만갔다.

대문에는벌써애들이세배를하려고왔는지

내이름을크게부르고난리다.

마루에나갈까..말까..할아버지큰기침소리에

얼른고개를푹숙였다.

제사가끝났다.

상이치워지고

아랫목쪽으로할아버지할머니가나란히앉으셨다.

아버지와엄니부터시작으로

아저씨아주머니들이차례로할아버지께세배를올렸다.

배에선꼬로록!~소리가귀에까지들리는데

떡국부터먹고세배를하면참좋을텐데

어른들은이상해

배도안고프신가봐

난아까부터침만자꾸입안에한가득고여서

숨이찰지경인데..

드디어내차례가왔다.

난엉덩이를한껏추켜들고넙죽!~절했다.

할아버지가팔을활짝벌리시곤

무릎에와앉으라고하신다.

할아버지길다란하얀수염이자꾸코끝을간지럽힌다.

아저씨들께할아버지는도통알아듣지못할말로

일일이뭔말씀을느릿느릿던지셨다.

모두들머리를조아리고들으시느라

상도안차리시는가보다.

힝!~배고픈데..

떡국위에꿩고기가몇첨씩올라왔다.

머리통만한만두는할아버지한테드렸다.

꿩고기와쫀득하고미끈한떡첨을

한입퍼넣었다.

욕심에털이숭숭한돼지고기비계첨을

함께집어넣었다.

‘우리구여운손주는올게몇살인고?’

입안에가득한음식때문에대답을못하겠다.

아구!아구!~
손가락일곱개를펼쳐서보여드렸다.

이크!~숫가락까지여덟개?

다시얼른숫가락을놓고다시펼쳐서보여드렸다.
방안가득’허.허.허.허!~고놈..참!’

♪♬~우리집뒤뜰에는널을놓고서
상들이고잣까고호도까면서
언니하고정답게널을뛰고
나는나는좋아요참말좋아요~♪♬

동무들과우루루!~온동네를몰려다니며세배를했다.

집집마다웃는얼굴로과자를한두개씩손에쥐어주셨다.

바깥마당에는누나들이널뛰기를하고있었다.

두꺼운널판에멍석을말아서고였다.

그곳에앉아뒤뚱뒤뚱..

오뚜기같이앉아서이쪽저쪽을번갈아바라봤다.

어질어질~
눈앞이흔들렸다.

널뛰는누나들의하얀속치마가

마당가의흰눈보다더희었다.

세배하고받아넣은과자사탕이호주머니속에서녹았다.

빨간색과하늘색

그리고노랑색과초록색

무지개빛형형색색

옥춘과자는입안에서오도둑!~와삭!~잘도넘어갔다.

형들도왁짜하게떠들면서

마당한켠에서윷놀이를한다.

왜자꾸윷판은안들여다보고

누나들널뛰는이쪽만자꾸흘끗거리면서

바보같은웃음으로히쭉,히쭉~하는지모르겠다.

온동네가꽃피는봄날같이공중으로붕~뜬것같고

울긋불긋한누나들의공단치마저고리와

까르르르!~웃음소리..

까치소리..

맨날맨날설날이면참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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