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바다 (4편)

아무런연관도

말한마디조차나눠본적도없는주검앞에서

까닭모를이슬픔은뭐더란말인가.

아직도가시지않은

지난봄날의사랑과이별이

가슴밑바닥심연깊은곳에서

울컥울컥끄들려서치밀고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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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겨울의추위는참으로여느해보다매서웠다.군훈련소에
서맞은겨울은이제껏내상식속의겨울의추위를휠씬넘어선
혹독함을보여주었다.

안개가유난히지독했던작은읍단위군사도시에서의

신병교육훈련은그냥피교육자의이상도이하도아닌남들이하
는것만큼나또한견디며지냈다.제일고통받은일은물사정
이안좋아세탁과목욕을제대로못했다는기억만있다.

그렇게훈련을마치고근무할부대를찾아각각전방과후방으로
뿔뿔히헤어지며나는근무지T읍으로왔다.00사단00연대해안0대대

그곳에서다시서해바다가차창으로간간히보이는해안으로근무할

부대를찾아혼자서가야했다.동기들은이제뿔뿔히흩어져버리고

최종근무지로그바다가보이는아름다운해변가초소로배치받았다.

그렇게시작한초년병시절은얼마후중대교육계행정병으로또
다시거기서대대본부정보작전과로전출명령에의해떠나기까지는
참으로조용하고차분한나날을보냈다.

6개월여의그곳의날들은지금도내머리에각인되어남아가끔씩
떠올리곤한다.그작은막사(작년봄저녁에갑작스레그곳이생
각나밤중으로차를몰아가보니없어지고신식양옥으로바뀌
어서운했었음)는앞쪽으론저만치마을까지논과밭으로이어져
있고뒤로는얕으막한송림으로모래둔덕이있었다.어쩐일인
지내게는진지근무를시키지않고상황실근무만시켰다.

자연히모든고참병사들이밤새워진지경계를마치고새벽녁에
철수하면아침조식을먹고는모두가취침에들어간한낮의오전
시간은홀로고요에뭏힌초소앞뜰을서성이기도하고잠깐씩
둔덕너머의바다에나가그맑은바닷물에손과발을담가보기도
했다.

그초소앞자갈위로쏟아지던눈부신햇살에실눈을뜨고바라보
던모내기하는들판과이산저산으로옮겨다니며구성지게울어
대던뻐꾸기소리를들으며하염없이앉았을때아득하게들려오던

밤새워고기잡이를끝내고포구로돌아가는뗏마선에서크게확성기
로틀어대던옛날의유행가소리가왠지모를나른함에젖게했다.

김소월님의"엄마야누나야강변살자"라는싯구에붙인동요
노래가더도없이어울리는분위기에젖어서지냈다.

내무반에굴러다니는헌책나부랭이도문학성을떠나꽤나진지하
게읽어보기도하고군대에서는금기시하는일기도다시금몰래

쓰기시작했다.

오후가되면방위병들의교대근무식이있었다.그곳지역의특성
상그곳의해안지형에익숙한그지역출신의입영대상자는거의
모두가현역아닌전투방위로근무하게돼있었다.현역인우리는
그들과차이를두려고현역사병들에게일계급특진?시켜서자대에
배치를했다.방위병들이24시간격일제로출퇴근근무하는관계로

근무교대식은본의아니게취침중인고참병대신으로내가맡아하는

때가많았다.그시간이면간단한점호(조회)를마치고각자의장기자랑
이펼쳐지곤했다.

기타를튕기며노래잘하는신이병이거의독판무대였고입담좋은
편이병(그곳은편씨집성촌임)의걸직한이야기는항상배꼽을잡
게만들었다.방위사병들과친근한사이가돼가면서그들의배려
는인정에넘치는것들이였다.몰래도시락과맛진반찬을싸
오기도하고햇김을몇톳씩슬며시가져다주곤했다.또한여분이
라며당시EBS교육방송으로생활영어를들으며공부를하던내게

군막사지붕에다가구리를감은안테나를만들어설치해주는가하면

카세트녹음기(그당시는귀한기계였음)를갖다주고다른사람
은테이프를가져오곤했다.극구말려도그들은그런것들을놓고
갔다.시골인심의후덕함이좋았다.사람이좋았다.그순박
한인간미가너무도좋았다.

그봄의한철을그렇게보내며여름이성큼다가섰다.그곳의여름은

다른지방보다좀이르게해수욕장개장준비로분주하게찾아왔다.

그해여름은철이른바닷가에서부터술렁이며일찍찾아왔다.마
을에서는해수욕장개장추진위원회인가뭔가를구성한다,시멘트
철근을산다,천막을친다,송림에모여주민들이갑론을박을벌
이며며칠을보냈다.가끔민간인이초소에까지와막걸리나먹으러
오라는전갈이왔지만대민접촉의안전사고를우려해서참석은하
지않았다.

그렇게여름이저만치오는가할때내게마을이장으로부터자기
집아이들의과외공부를해줄수없느냐는간곡한제의가들어왔다.

최고참의결정은대민관계의원활함에좋을것이란판단에회의를
갖고중대장까지허락을했다.그때부터모두가경계근무에나가면

비공식적이지만아이들이군초소에책가방을가져와서잠깐씩내게

과외공부를하고가는날이시작됐다.

이젠서산에서건설회사의어엿한30대사장님이된무용이와동생

무민이그리고취학전의야들야들예쁘던꼬마계집아이혜선이

이렇게셋이가내제자겸동무가되었다.

일요일이면아이들과백사장에나가자전거도타고모래사장에금
을그어놓고아이들이알려주는대로게임을하기도하며하루를
보내기도하며동심에파뭏혀지냈다.그러는사이본격적인
피서철이되면서백사장에는관광버스가드나들고원색의물결이
보이기시작했다.그러면서뜻하지않은새임무가내게할당
됐다.초소앞을지나는관광버스에올라검문을하라는임무
였다.고참병들이옷도다려주고구두도닦아주고법석들을떠
는것이어리둥절했다.철모며탄띠를제일새것으로갈아서
착용하고처음으로버스에올라해안통제시간이며불빛이바다
로나가면않되는것등야간군경계의주의사항과협조를당부
하고돌아내려오려니난데없는박수와환호성으로수고가많다
며음료수며,과자며,라면상자등속을내려주고악수를청하는

것이얼떨떨하니정신이하나도없었다.그러니까일종의우회적인

군위문품이되어내무반모두의짭짤한사제부식조달을하는

셈이되었다.

그여름의한철은조용하던초소를온통들쑤셔놓은듯하며지나
고있었다.어느여고생의"등대지기"와"밤배"란노래를달이서편으로
기울며온바다가달빛은색물결로가득한그윽한분위기에서들어도

보았고"수선화"라는노래도그때처음으로들어보고배워도봤다.

그여름의끝에다녀간여고생으로부터시와그림이예쁜서신을
받기도하고애들과외공부에대한보답으로과분한생일상차림을
받곤할즈음중대본부교육계의일을보라는인사명령을받았다.

모두가아쉬워하는(특히꼬마제자들)전송을받으며산모퉁이로돌
아설때무용이어머니께서눈물을훔치시며바라보시며바향을해

주시는옆에서한참동안손흔들어주던그애들이잊혀지지않는다.

중대본부.

그곳에는나의가슴아픈사랑이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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