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바다 (8편)

그녀는아까부터뭔가를자꾸손에서폈다접었다를하고있었다.
넌즈시넘겨다보니다시들어거무테테한풀꽃반지를무슨소중
한보석반지라도되는양손수건에고이겹쳐넣어두곤자꾸
꺼내보고있었다.

해수욕장송림뒤언덕에있는그녀의집이멀리내려다보이는
산마루중턱에까지배웅을했다.

그때까지서로가한마디의대화도없이산길을묵묵히걸었다.

풀내움은코끝에알싸하고

그녀의기진한발걸음은못내
아쉬운듯기운하나없고

가까이서아주가까이에서
나른하고도구성진뻐꾸기소리들렸다.

그녀는저만치걸어가다

뒤돌아보고손흔들며힘없이웃고
어여가라는내손짓에고개를주억이며느릿느릿걸어가는뒷
모습위로저만치바다가보였다.

힘없이걸어가는그녀의머리위로는하얀낮달이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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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았던편지이고
주인을찾지못하여맨날슬퍼보이는편지인것같아
같이보냅니다.
……………………………………………

월광의도시바다를보면서
내마음은온통아저씨얘기에만젖었습니다.

새삼스럽게물소릴연모하면서
잠못이룰줄누가알았었나요
무얼생각하세요?
아저씬이해변의월광을보신적이있나요?

높은파도가출렁거리는해운대의아침바다에서도
여기저기모래바닥에드러누운
사람들의고뇌어린(?)얼굴들을대했고
따사롭게쏟아지는햇살속에서살갗이
아프도록그을렸고난될수있는대로
동료들과자주웃을수있는기회를잡으려
바닷물에서물싸움,등등을많이했어요.

모르실꺼예요.
**이가얼만큼아저씨를그리워하는줄….

요즈음은
앉으나서나누우나
맨날맨날아저씨생각만해요.

보고싶어요.
멀리있으면좋을것같아서먼곳을달려왔지만
멀리일수록더욱더보고싶어요.

**이의이계절은
영혼마저감당키어려운계절입니다.
언제나비.
언제나비일뿐입니다.

하지만
노랑나비가훨훨날았고살그락거리는잔디스치는
바람소리도들었고
너무맑아눈을감아야했던봄날들의
이야기가나에겐가장고귀한추억으로
남아있는것으로서만족하려합니다.

건강하세요.
굉장히보고싶어편지했어요.

-그녀의이별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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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제비꽃.

그녀를생각하면떠오르는꽃이름이다.

그초봄에같이앉았던그때그자리를추억하며이별을
이야기하러그곳백화산중턱을그녀와다시찾았다.

그때는꽃샘추위가시샘을하던초봄였고다시찾은
초여름의계절은산과들이푸르름을더해가는신록의
계절이됐다.

세월.

아직추위가가시지않은봄날.
목련꽃이한창만개할그즈음일요일이었다.

부대에서외출증을끊어넉넉한시간을마련하였다.
진지하게상급부대로의전출을이야기했다.그리고
그간의호의와따뜻한배려에대하여진심어린감사를
표시했다.삭막한군대생활에따뜻함을불어넣어준
것과다시인연이닿으면만나게될것이라는이야기를
띄엄띄엄했다.찻잔만내려다보며아무런대꾸없이
앉았는그녀에게무슨말을어찌해야하는지당황스러워
지기까지했다.

그렇게다방을나와식사를마치고T읍을
빙둘러싸고있는백화산쪽으로난골목쟁이로접어들었다.
하천을따라조금올라가노라니옛스러운분위기가
그윽한한옥이있고그담장너머로하얀목련이청초하게
핀길을걸었다.가던길을멈추고한참을기웃거리며
담장안을넘겨다봤다.아마도그집의후원쪽인듯했다.
툇마루며쪽대문은비바람으로풍화된듯잿빛으로퇴락하
여만지면금방이라도부서지며떨어져나갈것만같았다.
그낡은처마며용마루가오히려그윽한분위기를한껏
자아내게했고그분위기에목련꽃이더없이잘어우러져
보였다.

언젠가목련꽃을보면팝콘이연상된다던그녀의말을
떠올리며백화산쪽으로올라갔다.

산전체가바위로이뤄진그산은산세가가히환상적이었다.
무슨커다란원형극장에앉은듯이상하고묘한분위기를
자아냈다.산정상에는군레이다기지가있어민간인통제
구역이라서오르진못하고산허리쯤에서앉아읍내를내려다
보고앉았다.

그곳.

백화산중턱잔디가수북히자란그자리엔무릎사이로
제비꽃이군락을이루듯지천으로피어있었다.

"여!~~~여기우리전무친구들이무척많네?."
"……"

너스레를떠는내유머에옅은미소를지어보였다.
그웃음뒤엔슬픔이감춰져있었다.옷에다제비꽃을
꽂고서나란히앉아바라본T읍은봄날아지랑이속에아른
대고있었다.

"사장님."
"음?"
"아니예요."
"싱겁기는"
"저…"
"?.."
"……."
"뭔얘긴데그리뜸을들이나?"
"저..혹말예요."
"음?"
"아니..아니에요.우리노래해요."

♬~바위고개언덕을혼자넘자니~
옛님이그리워눈물납니다~~..♪

그녀의청아한목소리는바람에실려산에들에멀리
멀리울려퍼져나갔다.

그녀의노래가어찌나애잔하게들리는지애상(哀想)에
잠기어한참을침묵으로앉아있었다.그녀를보니눈가
에이슬같은눈물이촉촉하게고여있었다.

엊저녁에전화로그녀에게이달안으로대대본부작전과로
인사발령이날것같다는언질을넌지시줬었다.

지금의중대장이대대에서대위계급중서열상최고참이
었다.자연공석이돼있던작전관으로중대장이올라가게됐다.
중대장이나에게같이일좀하자며파견형식으로같이올라
가게될것임을알렸다.

그날은이런저런이유로마음속에아쉬움을가득담고서
만나게됐었다.

그녀.오전까지는애써명랑을가장하며떠들곤했는데
오후가되고부터는말수가줄어들며우울해하곤했다.

"언제시간내서무용이네집에함놀러가요."
"갑자기왠무용이네?"
"그애들이사장님을엄청보고싶어할거예요."
"그렇찮아도인사나드리고떠날까했는데."

다음일요일에초임때근무하던그초소도들러볼겸무용이
집에도인사할겸그날다시만나기로약속하며돌아왔다.
돌아오는버스에서그녀는내내창밖만바라볼뿐한마디
말도없었다.

차창밖으론이곳으로처음전출올때송림사이로간간히
보이곤하던바다가스쳐지나가고있었다.

무용이네집에가는날은온산의뻐꾸기소리가
가는곳마다이산저산을날아다니며구슬프게
울어댔다.

지금도그녀와의이별을생각하면그날의뻐꾸기
소리가들리는듯하다.

–OO리차부에서만났다.

버스시간을놓쳐버려퇴근하는방위병의오토바이
를얻어타고나갔다.

오토바이가신작로등성이를넘어서며차부쪽을보니
그녀는차부에서한참을떨어진밭머리쪽으로나와
고개를숙인채서있었다.

처음전출오면서개인군장을메고걸어가던그자갈길을
그녀와말없이걸어갔다.

마을이끝나고산모롱이만돌면무용이네동네였다.
그밭등성이에서잠시앉아쉬었다.

"일찍나왔구먼."
"……"
"이곳은처음이지?"
"……"
"이길이내가전출오면서맨먼저밟았던길이지."
"….."
"그때가엊그제인듯한데…."

그녀는돌아서서멀리바다쪽수평선만말없이
바라보며서있었다.

일어서서보니저아래로무용이네빨간기와집이
보였다.

앞대문은별반사용하지않고항상텃밭쪽뒷문으로
드나들었다.

여전하게집뒷산숲쪽에서나는무수한참새소리가
집안에가득하게들렸고담장밖오동나무는가지가
벌써마당안까지드리워져가고있었다.

담장에잇대어심어놓은나무가많이자란듯했고
마당가득하게늘어놓은화분과분재(盆栽)에는그릇
마다푸른이끼를소담스레담고있었다.

무용이아버님이놀라며반겼다.

"어이구!어쩐일이데연락없이?"
"별고없으셨데요?"
"나야뭐."
"아주머니는어디가셨나봅니다?"
"응.잠깐볼일있어서OO리에나갔지."
"별반변한게없네요."
"얼마나됐깐디?"

(‘이처자는누구냐?’)
(‘예!그냥..’)

"애들은공부잘하고요?"
"자네떠나고갈칠놈이있어야지."

이런저런얘기를나누다커피한잔하고일어섰다.

"왜?좀쉬었다가지."
"바다에좀나갔다가가면서들르지요."
"그려점심때면애덜엄마올거구먼."

바다로나갔다.

너른해안백사장을보니가슴이탁트였다.
줄곧말없이뒤에처져걷고있는그녀에게
분위기를바꿔볼요량으로뜀뛰기를제의했다.

"저기보이는바위동굴까지누가먼저가나시합!"
"……"
"요~잇~땅!"

뛰면서보니그녀는저만치뒤에서걸어오고있었다.
힘하나없는걸음이측은했다.

동굴앞에서서그녀를바라다봤다.

발끝만내려보며걸어오는그녀는저만치서걸음을
멈추고이쪽을바라다봤다.

나는애써외면하며봉우리세개가우뚝한암벽위의
하늘을올려다봤다.

어느결에가까히다가온그녀가낮게속삭였다.

"슬퍼요.흑!~"
"무슨.."

썰물로텅빈백사장을걸었다.

물결이저만치멀리부터왔다가저만치달아나
버리며물결무늬고운모래톱을만들고있었다.

그긴긴백사장.

나란히발자욱을남기며끝간데없이걸어나갔다.
뒤를돌아보니봉우리세개가아스라히멀어졌고
두발자욱만평행선을그리며따라오고있었다.

그발자욱을밀물이서서히차오면서지워가고있었다.

"노래좀불러주세요."
"?.."
"그냥아무노래나.."

♬~바닷가에~모래알~처럼수~많은~

사람중에만난~그사람~~….!

얼결에부른다는게그만그노래가나왔다.

그녀는내노래가채끝나기도전에모래밭에
쭈그리고앉아얼굴을감쌌다.

아주소리내어엉!~엉!~어린아이마냥울었다.
한번터진울음은오래도록끝나지않았다.

아무도없는그넓은백사장에앉아처연(悽然)
토록철철울었다.

–살며시손을잡아일으켰다.
오던길이아닌여울목쪽으로돌아나갔다.

뒤에선바닷물이만조시간에맞춰쏴아!~쫘아!~
소리내며밀려오고있었다.

아무도없는철이른텅빈바닷가의파도는
그렇게저혼자낮은해조음을내며밀려왔다가
또저만치밀려가고있었다.

–눈이부어오른그녀는마을로가지못하고
먼저차부에가있겠다하여혼자서무용이네
집에들렀다.

푸짐한점심상을받고도식사를마다하고일어서며
그냥나오려니아주머니가못내서운해하며
어쩔줄을몰라하셨다.

"인저못보간디?"
"언제시간나면놀러오겠습니다."
"그려제대전에꼭한번놀러와."
"그러지요.그럼안녕히들계십시오."
"잘가아~~~꼭한번와야혀?"

산모롱이를돌아서며뒤를보니아주머니가
텃밭머리에까지나와소매로눈가를훔치고계셨다.

그좋았던동네.훈훈했던人情들.

눈부신자갈길을걸어가며하늘을쳐다봤다.
파란하늘이끝나는틀모시산자락에서는구성진
뻐꾸기소리가들려왔다.

메아리치듯벌판저편마을회관뒷산에서도
뻐꾸기소리가구성지게도들렸다.

귀는자꾸먹먹해져가고…

-글:좋은날全炳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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