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 -법정-

수연스님!그는정다운도반이요,선지식이었다.자비가무엇인가를입으로말하지않고몸
소행동으로보여준그런사람이었다.길가에무심히피어있는이름모를풀꽃이때로는우리
의발길을멈추게하듯이,그는사소한일로써나를감동케했던것이다.

수연스님!그는말이없었다.항시조용한미소를머금고있을뿐,묻는말에나대답을하였
다.그러한그를15년이지난지금도잊을수가없다.아니잊혀지지않는얼굴이다.

1959년겨울,나는지리산쌍계사탑전에서혼자안거를하려고준비를하고있었다.준비래야
삼동안거중에먹을식량과땔나무,그리고약간의김장이었다.모시고있던은사효봉선사가그
해겨울네팔에서열리는세계불교도대회에참석차떠나셨기때문에나는혼자서지낼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음력시월초순하동악양이라는농가에가서탁발을했다.한닷해한걸로겨울철양식이
되기에는넉넉했었다.탁발을끝내고돌아오니텅비어있어야할암자에저녁연기가피어오르
고있었다.

걸망을내려놓고부엌으로가보았다.낯선스님이한분불을지피고있는것이다.나그네스
님은누덕누덕기운옷에해맑은얼굴,조용한미소를머금고합장을했다.그때그와나는결연
이되었던것이다.사람은그렇게순간적으로맺어질수있는모양이다.피차가출가한사문이
기때문에더욱그랬다.

지리산으로겨울을나러왔다는그의말을듣고나는반가웠다.혼자서안거하기란자유로울
것같지만,정진하는데는장애가많다.더구나출가가연천한그때의나로서는혼자지내다가는
잘못게을러질염려가있었기때문이다.

시월보름동안거에접어드는결제일에우리는몇가지일을두고합의를해야만했었다.그
는모든일을내뜻에따르겠다고했다.하지만정진하는데는주객이있을수없다.단둘이지
내는생활일지라도둘의뜻이하나로묶여야만원만히지낼수있는것이다.그는전혀자기뜻
을세우지않았다.그대로수순하겠다는것이다.

육신의나이는나보다한살모자랐지만,출가는그가한해더빨랐다.그는학교교육은많이
받은것같지않았으나천성이차분한인품이었다.어디가고향이며어째서출가했는지서로가
묻지않는것이승가의예절임을아는우리들은지나온자취같은것은알수가없다.그리고
알필요도없는것이다.

다만그사람의언행이나억양으로미루어교양과출신지를짐작할따름이다.그는나처럼호
남사투리를쓰고있었다.그리고소화기능이안좋은것같았다.

나는공양주(밥짓는소임)를하고그는국과찬을만드는채공을보기로했다.국을끊이고
찬을만드는그의솜씨는보통이아니었다.시원치않은감일지라도그의손을거치면감로미가
되었다.나는법당과정랑의청소를하고그는큰방과부엌을맡기로했다.그리고우리는하루
한끼만먹고참선만을하기로했었다.

그때우리는초발심한풋내기사문들이라계율에대해서는시퍼랬고바깥일에팔림이없이정
진만을열심히하려고했다.

그해겨울안거를우리는무사히마칠수있었다.그뒤에안일이지만아무런장애없이순
일하게안거를보내기란결코쉬운일이아니었다.

이듬해정월보름은안거가끝나는해제일.해제가되면함께행각을떠나여기저기절구경
을다니자고우리는그해제절을앞두고마냥부풀어있었다.

그런데해제전날부터나는시름시름앓기시작했다.며칠전에찬물로목욕한여독인가했더
니,열이오르고구미가뚝끊어졌다.그리고자꾸만오한이드는것이었다.해제는되었어도
길을떠날수가없었다.

산에서앓으면답답하기짝이없다.사문은성할때도늘혼자지만앓게되면그런사실이구
체적으로감촉된다.약이있는것도아니고가까이에의료기관도없다.그저앓을만큼앓다가
낫기를바랄뿐이다.그리고그때우리는철저하게무소유였다.밤이면헛소리를친다는내머
리맡에서그는줄곧앉아있었다.목이마르다고하면물을끓여오고,이마에찬물수건을갈아
주느라고자지않았다.

그러던어느날아침,그는잠깐아랫마을에다녀오겠다고나가더니한낮이되어도돌아오지
않았다.해가기울어도감감소식이었다.쑤어둔죽을저녁까지먹었다.나는몹시궁금했다.
밤열시가까이되어부엌에서인기척이났다.그새나는잠이들었던모양이다.그가방문
을열고들어올때그의손에는약사발이들려있었다.너무늦었다고하면서약을마시라는것
이다.이때의일을나는잊을수가없다.그의헌신적인정성에나는어린애처럼울어버리고말
았다.그때그는말없이내손을꼬옥쥐어주었다.

암자에서가장가까운약국이래야40여리밖에있는구례읍이다.그무렵의교통수단이라고는
구례장날에만장꾼을싣고다니는트럭이있었을뿐.그러니까그날은장날도아니었다.그는
장장80리길을걸어서다녀온것이다.

서로가돈한푼없는처지임을알고있었다.그는구례까지걸어가탁발을하였으리라.그돈
으로약을지어온것이다.머나먼밤길을걸어와약을달였던것이다.

자비가무엇인가를나는평생처음온심신으로절절하게느낄수있었다.그리고도반의정
이어떤것인지도비로소체험할수있었던것이다.그토록간절한정성에낫지않을병이어디
있을까.다리가좀휘청거리긴했지만,그다음날로나는기동하게되었다.

그때우리가거처하던암자에서5리남짓깊숙이올라가면폭포곁에토굴을짓고참선하는노
장스님한분이계셨다.노장님이무순볼일로동구밖에다녀올라치면으레우리들처소에들르
곤했다.그때마다노장님이메고온걸망은노장님보다먼저토굴에가있었다.그가아무말도
없이져다주기때문이었다.그는이렇듯무슨일이고그가할만한일이면말없이선뜻해버리
는것이었다.

한동안우리는만나지못한채각기운수의길을걸었었다.서신왕래마저없으니어디서지
내는지소로가알길이없었다.운수들사이는무소식이희소식으로통했다.
세상에서보면어떻게그리무심할수있느냐하겠지만,서로가공부하는데방해를끼치지않
도록배려하고있는것이다.

인정이많으면도심이성글다는옛선사들의말을빌릴것도없이,집착은우리를부자유하게
만든다.해탈이란고로부터벗어난자유자재의경지를말한다.그런데그고의원인은다른데
있지않고집착에있는것이다.물건에대한집착보다도인정에대한집착은몇곱절더질긴
것이다.출가는그러한집착의집에서떠남을뜻한다.그러기때문에출가한사문들은어느모로
보면비정하리만큼금속성에가깝다.

그러나그러한냉기는어디까지나긍정의열기로향하는부정의기류다.긍정의지평에선보
살의자비는봄볕처럼따사로운것이다.

내가해인사로들어가퇴설선원에서안거하던여름,들려오는풍문에그는오대산.상원사에서
기도를하고있다고했다.여름살림이끝나면그를찾아가보리라마음먹고있었더니,그가먼저
나를찾아왔었다.지리산에서헤어진뒤다시만나게된우리는서로반기었다.그는예의조용
한미소를머금고내손을꼬옥쥐었다.함께있을때보다안색이못했다.앓았느냐고물으니
소화가잘안된다고했다.그럼약을먹어야하지않겠느냐했더니괜찮다고했다.그가퇴설
당에온후로섬돌위에는전에없이변화가일기시작했다.여남은켤레되는고무신이한결같
이하얗게닦이어가지런히놓여있곤했었다.물론그의밀행이었다.

스님들이빨려고옷가지를벗어놓으면어느새말끔히빨아풀먹여다려놓는것이었다.이러한
그를보고스님들은’자비보살’이라불렀다.

그는공양을형편없이적게하였다.물론이제는우리도삼시세끼를스님들과함께먹고지
냈었다.한날나는사무실에말하고그를억지로데리고대구로나갔었다.

아무래도그의소화기가심상치않았다.진찰을받고약을써야할것같았다.

버스안에서였다.그는호주머니에서주머니칼을꺼내더니창틀에서빠지려는나사못두개
를죄어놓았다.무심히보고있던나는속으로감동했다.그는이렇듯사소한일로나를흔들어
놓는것이다.그는내것이네남의것이네하는분별이없는것같았다.어쩌면모든것을자기
것이라생각했는지모른다.그러기때문은사실은하나도자기소유가아닐수도있는것이다.
그는실로이세상의주인이될만한사람이었다.

그해겨울우리는해인사에서함께지내게되었다.그의건강을걱정한스님들은그를자유롭
게지내도록딴방을쓰라고했다.그러나그는대중과똑같이큰방에서정진하고울력(작업)에
도빠지는일이없었다.

그러다가반살림(안거기간의절반)이지날무렵해서그는더버틸수가없도록약해졌다.
치료를위해서는산중보다시처가편리하다.진주에있는포교당으로그를데리고갔었다.

거기에묵으면서치료를받도록하기위해서였다.사흘이지나자그는나더러살림중이니어서
돌아가라고했다.그의병세가많이회복된것을보니친분이있는포교당주지스님과신도한
분에게간호를부탁했다.그가하도나를걱정하는바람에나는일주일만에귀사하고말았다.

두고온그가마음에걸렸었다.전해오는소식에는많은차도가있다고했지만.그겨울가야
산에은눈이많이내렸었다.한주일남짓교통이두절될만큼내려쌓였었다.밤이면이골짝
저골짝에서나무넘어지는소리가요란했다.아름드리소나무가눈에꺽인것이다.

그고집스럽고정정한소나무들이한송이두송이쌓이는눈의무게에못이겨꺾이고마는
것이다.

모진비바람에도끄덕않던나무들이부드러운것앞에꺾이는묘리를산에서는역력히볼수
있었다.

꺾여진나무를져들이다가나는바른쪽손목을삐고말았다.한동안침을맞는둥애를먹었
었다.한날나는조그만소포를하나받았었다.펼쳐보니파스가들어있었다.

어떻게알았는지그가사보낸것이다.말이없는그는사연도띄우지않은채였다.
나는슬픈그의최후를되새기고싶지않다.그가떠난뒤분명히그는나의한분신이었음을
알것같았다.

함께있던날짜는일년도못되지만그는많은가르침을남겨주고갔다.그어떤선사보다도,
다문이경사보다도내게는진정한도반이요,밝은선지식이었다.

구도의길에서’안다’는것은’행’에비할때얼마나보잘것없는것인가.사람이타인에게영
향을끼치는것은지식이나말에의해서가아님을그는깨우쳐주었다.맑은시선과조용한미
소의따뜻한손과그리고말이없는행동에의해서혼과혼이마주치는것임을그는몸소보인
것이다.

수연!그이름처럼그는자기둘레를항상맑게씻어주었다.평상심이진리임을행동으로보였
다.그가성내는일을나는한번도본적이없다.그는한말로해서자비의화신이었다.
그를생각할때마다사람은오래사는것이문제가아니다.어떻게사느냐가문제인것이다.

(신동아,1970.4.)

그겨울가야산에은눈이많이내렸었다.한주일남짓교통이두절될만큼내려쌓였었다.밤이면이골짝
저골짝에서나무넘어지는소리가요란했다.아름드리소나무가눈에꺽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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