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꽃피는 아침 달 뜨는 저녁

음력춘삼월을옛어른들은[花朝月夕]이라하여

일년중가장아름다운때라하여

"꽃피는아침달뜨는저녁"이라고했다.

춘삼월은꽃피는계절임은물론

모든동물들이긴긴겨울의동면에서깨어나활동하는계절이며

간간히꽃을시샘하는꽃샘바람도불곤한다.

그꽃샘바람과함께일년농사를시작할즈음이면

동네일꾼들에게주인이용돈을두둑히주고

하루동안을그들만의흥청거릴수있는날이있었다.

이른봄이면

긴긴겨울동안을동네사랑채에서

새끼도꼬고가마니도짜고나이롱뽕(화투)을치던일꾼들이

올해의농사를시작하기전에하루를잘노는백중날이있다.
일종의"일꾼의날"인셈이다.

집에는"송삼이"라는일꾼이있었다.

몇해동안을꾸준히눌러앉아일한덕분으로

해마다품삯을모아장가갈밑천을꾸려서나갔다.

선한눈매가퉁방울마냥툭불거져나온아저씨였다.

그날은아침일찍일어난송삼이아저씨가

엄니께서만든홑바지저고리를입고

할아버지가계신사랑방앞을서성이며

킁.킁,콧소리를내면서종종걸음을쳤다.

꼭우리가소풍가는날에괜스레들떠서왔다갔다하듯했다.

아침상을물리신할아버지께서는

쌈지에서지폐를몇장꺼내주시며

막걸리너무많이먹지말고잘놀다오라고당부를하셨다.

성질급한일꾼들은읍내장터를나가기도전에

방죽거리에있는주막집에서

아침나절부터술에취해서해롱해롱하니게슴츠레한눈으로

신작로를갈지(之)자로비틀거리며휘젓고다녔다.

다른날같으면마을어른들께혼구멍이날법한일임에도
그날만큼은허허..하며웃어넘겨주셨다.

마을의허드렛일을하면서소염일을보는만수아버지는

꽹과리며징,장고,북,등을내다가마을일꾼들에게

벅구모자를씌우고스스로대장이돼서는

마을앞샘가를시작으로샘이있는집집마다를돌면서풍물을놀았다.

벅구잽이의신명나는모습은구경하기좋았는데

멀리서풍물소리만들려오면무서운게있었다.

풍물패의맨앞에선깃대위에꽂힌꿩깃털이너무도무서워서

풍물패가집안으로들어오면쫓기듯뒷곁으로광으로숨어들곤했었다.

읍내장터가다른장날과는분위기가달랐다.

온장터가왁짜하니온통먹자판같이흥청거렸다.

다리밑개천가의약장사가제일인기가많았다.

사람들이너무많아작은키의내까치발은어림도없었다.

어른들바짓가랑이사이로고개를디밀면서

앞쪽으로나가앉으면약장수아저씨가

"쉬~애들은가라집에가서따끈따끈한짠지국에밥말아먹거라."하며쫓았다.

꼬맹이들의호기심은예쁜옷과리본까지매단원숭이새끼였다.

어찌나사람같은짓꺼리를하는지

약장수의떠벌이말은하나도귀에안들어왔다.

가끔씩"뱀"을"비얌"이라고소리치는말이잠시귓전을스쳐갈뿐

원숭이의몸짓만을쫓아눈망울만굴려댔다.

사람으로둘러싸인양지쪽에서

어미원숭이가새끼원숭이의등에서이를잡는모습은너무도정겹고신기했다.

뿐이랴?약장수의말끝마다에온팔을휘두르듯하며

박수치는원숭이의폼따구니는구경하는사람들의배꼽을잡게만들었다.

입으로불을내뿜는무시무시한아저씨도있었고

허리가활처럼휘여져서뒤로땅을짚는우리또래의여자애도있었는데

매끼니마다밥에식초를타서먹어서뼈가저렇게됐다고했다.

머리를빡빡깎은차력사의묘기와

알콜유리병속의뱀도구경하며지내고보면배가고팠다.

짜장면한그릇얻어먹고장을한바퀴돌아기웃거리다

해가뉘엿뉘엿해질즈음이면

20리신작로길을진달래,창꽃,개나리를꺾어설라므네

달구지마차꽁무니에꽂아놓고서

그꽃이흔들거리는모양을바라보면서

으스스추워지는산구비를돌아

어둑어둑한집마당에들어섰다.

술에만취가된송삼이아저씨의코고는소리가

천장까지높아가는저녁

마을에는저녁연기가깔렸다.

꽃내음이바람에실려와서는

봄밤이깊어가는

평온하고화목한초가마을로은은히퍼져나갔다.

어깨위에무등타고바라보던꽃피는고향마을이며
서울구경시켜준다고양쪽귀와턱을잡고끌어올려주며
하루왼종일가야말두어마디정도였던

말수가통없이마냥사람좋게만소처럼웃기만했던송삼이아저씨.

가난하지만마음만은따스한사람들이모여살던

저유년의고향초가마을어귀를서성이면서

다시는돌아오지못할

그시절을그리워하는꽃피는호시절.

이제호호백발팔순노인으로늙으셨을

송삼이아저씨의안부를묻는다.

아..송삼이아저씨의튼실한어깨쭉지위에다시올라앉아

꿈속같이아련하던

저유년의초가마을을찾아가고싶다.

꽃피는아침

달뜨는저녁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