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지금은헐리고없는고향집.

그집의마당한귀퉁이화단언저리를그리며

그고요한고향의아침나절을생각한다.

봉당에놓인세숫대야의맑은물의일렁임이햇빛에반사돼서

마루흙벽으로비쳐들던노란투명의춤사위.

그모양을바라보며하릴없이거닐던뽀얀마당.

그마당에는꽃밭이있었다.

작지만풍성한꽃밭.

화단맨앞쪽에서이슬에촉촉한앉은뱅이같은"채송화"

술떡에숨숨들어밖혀술떡에군데군데볼그족족한무늬를놓던닭벼슬같은"맨드라미"

누이가백반에섞어손톱에옹처매주던"봉선화"

화단에서늘한기운이감돌게하는키큰"칸나"

가을이면볼따구니가득꾸르륵,꾸르륵,물고다녔던"꽈리꽃"

화단중간쯤에서보실보실대궁끝에여러송이가하얗게피던"클레오메"

자고일어나면화단밑으로어지러히떨어져서내마음을안타깝게하던갸날픈"분꽃"

화단에서담쟁이를타고층층이피어오르는"나팔꽃"
대궁타고촘촘히밖혀있는잎사귀겨드랑이마다에까만염주알을품고

누이의한복공단치마같은예쁜자태의"참나리꽃"

화단옆담장아래에엉클어지게피어어머니의쪽진머리를윤기나게해주고

학교골마루를반들반들하게해주는"아주까리"

초가지붕처마밑으로대나무발을엮어올려서한여름의뜨거운땡볕을가려주고부엌자신물통에동동뜨던"수세미"

우둘두툴한열매속의바알간잇속을가을이면살포시내미는"여주"

담쟁이너머로삐꼼히마을의한길을넘겨다보며서있는"해바라기"

이즈음의더운여름아침에

화단가그늘에멍석을내다깔고오손도손모여앉아

아침밥먹으며화단을바라보다가

수저질을멈추고멍청히들여다보면

화단속의꽃들은내마음깊숙히

아름다움이뭔지를어렴풋이느끼게했다.

나팔꽃과해바라기를바라올라가다

올려다본하늘에는제비들이어지럽게날았고

반쓰벙(반바지)아래장단지에는우둘두툴멍석자국이밖혀있었다.

아침밥먹는멍석주위로는닭들이디룩디룩,곁눈질로보리밥몇알이떨어지길기다렸고

뒷집누렁개는수채구멍으로고개만삐죽히내밀다나와눈이마주치고는쏙,들어갔다.

괜스레검정고무신짝을개구멍으로냅다던지며

"이노무똥개가아침부터어디라고?"

으쓱이며소리치니할아버지는허연수염을쓰다듬으시며

"허허!~고놈참!"하시며대견하다는듯한표정으로나를건너다보셨고

용기가백배해진나는담밑에버려진시퍼러둥둥한곰팡이가핀

먹고버린옥수수를또한번개구멍으로집어던졌다.

마당가운데의자부랑대(빨래줄받침목)에는나마리(잠자리)가쪼르륵열을지어앉았고

빨래줄위로는새벽부터먹이를물어나르느라고단한날개를쉬고앉았는제비들이

"지지배배~뽀로록!"하는맑은소리가마당가득퍼져나가고

마루위제비둥지엔노란입의제비새끼들이

바람지나는소리에도어미가먹이를가져온줄알고앙징스런입들을샛노랗게짝짝벌려대며

빠글빠글~~소란들을떨어댔다.

슬그머니일어나자부랑대에앉은나마리에게살금살금다가서서꽁댕이를잡으려고다가섰다.

손끝이바들바들떨렸다.

약아빠진나마리는아슬아슬하게엄지와검지손가락의틈새에서날아갔고

화가난나는애꿋은자부랑대만마구흔들어댔다.

층층히앉았던나마리들이놀라날아가고

빨래줄에앉았던제비들도놀라마당몇바퀴를소란스레돌고돌아날아올랐다.

심드렁해진나는샘가로가서두레박을샘속으로던져넣었다.

한참후에풍덩!~하는소리가들려오고

팽팽해진두레박끈을노깡에걸쳐가며힘겹게끌어올렸다.

뻘뻘대며끌어올린두레박물은키가작은내손에닿기도전에배위로

반쓰벙위로줄줄흘러내렸고

물기로착달라붙은옷과

차가운우물물의시린감촉에진저리를부르르!~쳤다.

갑자기오줌이마려워사타구니를감싸쥐고변소간으로뛰었다.

변소간옆의똥장군통에어른들처럼오줌을갈기고싶었다.

큰돌맹이를주워다밑에놓고올라꼬추를처들었다.

??..물과땀에착달라붙은꼬추의오줌줄기는엉뚱하게도바짓가랭이를타고

종아리께밑으로뜨듯하고도닝닝하게흘러내렸다.

"으꺄꺄!~~이일을우짠데??"

대문을닫아걸고발가벗은아랫도리를한손으로가리고앉아

찬물에조물락조물락~어설픈빨래를했다.

엄니가빨래하시면거품이잘도나던데미끈덕거리기만했다.

??..귓가를스치는벌나니는소리가났다.

혹여꼬추가다칠까싶어샘가에납작업드려

이마에주름을잔뜩잡고하늘쪽에경계태세를갖췄다.

어디서나는소리인지벌의날개짓소리는멀어졌다가까워졌다했다.

가슴은콩닥거렸다.

일전에옆집주열이네토담에서나온땡삐들에게어찌나혼났던지.

으..으..마자!~누가뻐꾸기소리를내면벌이도망간다고했지.

뻐어꾸욱!~뻐꾹!~뻑꾹!~뻒꾹!!@#$&~

으..으..가짜인지아나계속머리위를날아다니네?

살금살금까치걸음으로안방으로들어갔다.

문짝쪽유리로바깥의동정을살피다가조심조심마루로나가봤다.

봉당으로내려서며처마밑도살피고마당으로내려서며하늘을올려다보니흐으~없다.

꼬추를잔뜩움켜쥐었던사타구니에서손을뗐다.

그제사바람에가랑이사이가시원했다.

식구들은논밭으로나가시고

넓은집안에

나혼자남았다.

앞집초가지붕너머오동산위로

하얀뭉개구름이꾸역꾸역피어오르는모양을멍청히건너다봤다.

토끼를그렸다가

호랑이도그렸다가

또눈사람도시원하게뭉쳐놓곤했다.

그뭉게구름가운데로황새들이

너울너울~날아가는모양을보며눈꺼풀이무거워지기시작했다.

마루위로올라가발가벗은아랫도리그대로

혼곤한잠속으로빠져들었다.

꽃밭에서꽃들이내엉덩짝과꼬추를보며

까르르!~웃는소리가

잠결에얼핏들린것도같았다.

이렇게좋은날에

이렇게좋은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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