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랑

그래..내게도풋사랑이있었지?

그게언제드라?

맞아,초등학교적였어.

말꼬랑지같이걸을때마다찰랑대는말총머리
2학년아홉살짜리소녀였어.

서울에서전학왔다는그계집아이는

참으로뽀얗고앙징스러웠더랬어.

난그아이가또래계집아이들과

깡총거리며고무줄놀이를하는모양을

멍청히바라보기만하는숙기없는촌놈였어.

나는동무들이고무줄을끊어달아나곤하는것이

그쯤에서는하나도즐겁지않았어.

그아이는속눈썹이유달리길었어.

눈은또얼마나예뻤다구?

나는아침이면그아이를만나려고

책보를쌌던거같애.

어느날은필통을빼놓고학교에온날도있었어.

몽당연필만들었던필통였지만

걸으면달그락!~달그락!~양철소리가

꽤나시끄러웠던필통였는데

그아이가전학오고난뒤로는

도통그양철소리가안들렸어.

쬐끄만내참새가슴에서들리는콩닥이는
심장소리만크게들렸더랬어.

난결심했어.

그아이의관심을끌어보려고

처음으로남의물건에손을대기로말이야.

작은누야의가느다란검정색실핀였어.

두개를주먹에꼭말아쥐고는

핀을못찾아쩔쩔매는작은누야를모르는

척냉정히외면하고는학교길로달음박쳤어.

그날은구구단의5×단을외우는날이였어.

난평소구구단은자신이있었어.

권오정선생님이아버지와친구사이라서

우리집에자주오셔서아버지와막걸리를자주마시기때문에

난아버지께꾸중을안들으려고열심히공부했어.

특히5단은5씩더하기만해서특히나쉬운단였어.

헌데그아인끝까지못외우고얼굴이사과빛으로볼그스레했어.
고개를푹숙이며울먹울먹하는

그아이가어찌나가여웠는지몰라.

내차례가왔어.

난일부러중간에서멈칫거리며뒷머리만극적댔어.

나도그아이와마찬가지로나머지공부를해야했고

유리창도닦아야했어.

아침도안먹고머리핀만챙겨달아나다시피온
배는꼬르륵!~거렸지만

그게뭐대수야?

난내게할당된유리창을후딱!닦아치우고

그아이의유리창으로갔어.

그아이는반도못닦고힘들어했어.

난내소매깃으로입김을호호불어가며쓱쓱!~닦아나갔어.

그아이는눈만크게뜨고바라만봤어.

나는옷소매가시커멓게돼서

분명엄니에게혼꾸녁이날껄번연히알면서도
양소매를다동원해서닦아줬어.

내내그아이에게건내줄머리핀은한쪽
주먹에다꼭쥔채로말이야.

하지만안받으면어쩌나

자기도있다고도로내밀면또어쩌나.

고민만하다가시간만갔어.

선생님이유리창검사를오셨어.

그아이는당연히합격을받았어.

내차례가왔어.

난합격대신꿀밤을맞았어.

그아이는책보자기가아닌예쁜가방을들고다녔어.

드르륵!~교실문을나가는그아이에게잠깐!~하는소리가

목구녕에서나오려다말았어.

참으로야속했어.

얼른잽싸게닦아놓고다시검사를받았어.

책보를옆구리에끼고냅다학교뒤언덕길을뛰어올라가
마르택이쪽을바라봤어.

벌써그아이는수실말로갈라지는논둑길로접어들었어.

괜히눈물이핑하니돌았어.

마구달렸어.

갈림길에서더앞으로나아가질못하고

마르택이쪽만멍하니바라봤어.

땀에쩔은손아귀에서실핀이스르르..삐져나와

풀섶에떨어졌어.

그게내풋사랑의기억이야.

끝내머리실핀을전해주지도못하고

그아이는며칠후엄마가있다는서울로다시전학간다고했어.

마르택이는그아이외갓집였데.

나는그아이가교탁앞에서작별인사를할때

애꿎은책상구석댕이만손톱으로막긁어댔어.

그게그아이와의전부였어.

채두어달도못되는짧은스쳐지남.

그것이전부였어.

내가슴속에잠시머물다가바람이스쳐지나가듯떠난

그아이를종종생각하곤했어.

나중에중학교에올라가서교과서에서<소나기>를배우며

며칠을내내그아이를생각했어.

몇번을읽었는지몰라.

쇠꼴을먹이러나가서도읽고
고봉장둥높은봉우리꼭대기까지올라가읽기도했더랬어.

얼굴이뽀얗고말총머리찰랑거리던그아이.

채익지않은풋사과같은풋사랑.

그아이이름은김순란이야.

지금도

영영

소식을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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