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간 자리

아부지,

요즈음에읽는책이

옛날에읽었던[감옥으로부터의사색]입니다.

그책을다시손에잡은이유는작가와아부지와의옥중서신을

다시한번되짚어읽고혜량하고싶어서였습니다.

아부지와의20년저편의기억.

사랑이지나간자리를

세세한촉수를세워더듬어봅니다.

제게는약주만과하셨던아부지부터시작하여

이렇게아부지나이쯤에서서는

다시금생각을가다듬어봅니다.

뜻대로세상과소통치못하셨던

울분으로점철된견고한벽앞에

풍류객이태백아닌

무지렁이酒태식이었을뿐인당신의자괴감.

스스로도추스리기힘들었던아부지로써

자식에게끝내못다한아부지의자리.

아부지,

당신생전에제가편지한장드렸었나요.

아니었나요.

20년이훨씬넘어버린기억저편에는

죄송케도없었습니다.

생전에약주를과하신연유로자식들에게아부지자리를인정받지

못하시고자식들과데면데면하셨을뿐입니다.

제기억에도조부모님의사랑은지극하기이를데가없었으나

유감스럽게도아부지와의부자지간의정은기억에통남아있질못합니다.

제가중학교까까머리어린학생이었습니다.

방죽말喪家에서과방일을밤샘하시고돌아오신

당신점퍼안주머니에서손바닥만한옥편을꺼내제게내미셨습니다.

어린저는어리둥절하여

누군가쓰던옥편을받아들었습니다.

입에서단술냄새푹,푹,풍기면서

당신께서서당에서천자문을떼시면서

질그릇陶

당나라唐

에서더는나아가질못하여훈장님께회초리를자주맞으셨다는

지난이야기를내게하셨습니다.

아들이한문공부에서만큼은당신같질않기를바라셨던마음.

그마음에서과방구석에서뒹굴어댕기는옥편을품에안고

그밤길을더듬어건너오셨습니다.

아부지란무엇이었습니까.

이늦은밤중에깨어일어다시금책장을넘기며

20년저편의아부지께

눈물섞인깊은회한으로편지를올립니다.

책에서어느산장지기의글을읽었습니다.

"노고단산장에처음가서내가호롱불을만들어현관에달아놨어요.

근데작은호롱불빛이말이야,멀리화엄사입구에서도보여.

등불이라는게그렇더라고.

어둠속에서헤매던사람들이그걸보고찾아오는거야.

길게밝혀준다고그걸장명등이라고하지.”

장명등불빛같이흔들리던

아부지의희미한父子지간의사랑.

나는어떻게장명등같은아부지가되어야하는지를생각합니다.

노고단과화엄사사이

지리산피아골의깊은골짜기.

그굴곡된구비구비를지나

한숨진멀리에서도

길을잡아주는장명등.

시월초엿새

칠흑같은이밤中.

읍내를지나멀리고향마을높은봉우리쪽을건너다봅니다.

멀리에있는불빛.

그불빛은하나가되었다가

둘이되었다가

희뿌옇게멀어집니다.

사랑이지나간자리에서

눈물섞인깊은회한으로이렇게서성입니다.

닿을수없는불빛같이

멀고먼곳에계시는당신.

아부지,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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