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짙은길.
어느구간은앞이전혀분간되지않아
주춤주춤안개입자를걷어내며
운전대잡은손아귀에힘이들어가다.
안개낀고속화도로에서비상깜빡이를켜고
가까스로국도로내려서며
기차역으로향하다.
일년만에와보는고향역광장.
평일에수능일인지라대합실은텅비었다.
기차표를끊고하릴없이창너머철길을
팔짱끼고내다보다가
안해가건네는커피를싱겁게마시다.
기차여행은언제나옅은설레임을동반한다.
해마다고향역에서시작하여종착지인제천역에내려
느릿한걸음새로역광장을가로질러
차부가있는재래시장을기웃거리다가
시내버스를타고의림지까지의하룻길나들이.
그곳으로향하는기차안의한가로운풍경은
조용하다못해나른함에빠져들게한다.
따뜻한기운이감도는가운데
아득히먼곳에서들려오는듯한
규칙적인철로위의마찰음.
철로변강마을을돌아가면서기적소리울릴때마다
안개는더욱짙어졌다.
텅빈들판과
누렇게퇴색된가로수길을
덜커덩,덜커덩미끄러지듯달리다가
역무원의졸음에겨운안내방송이
몇차례.
언제나기차를타면
이상야릇하고도묘한여수를자아낸다.
몇정거장을거쳐
어두운터널을한참을지나면서
커텐으로희뿌연실루엣을드리우고
규칙적인마찰음을자장가삼아
대부분의승객들은옅은잠속으로빠져든다.
가끔씩이름없는간이역에스르륵~정차를했다가
승객한두명을떨궈놓고
덜컹,출발하는찰라에
거북이눈같이졸린눈을슬몃뜨다가
도로눈을감으면
또다시고요한정적.
강마을이보이는강변
굽은산모퉁이를돌아가면서
길게울리는기적소리는
여행자의콧마루를시큰하게한다.
갑자기먼유년의귀퉁이를돌아
까마득히잊혀졌던얼굴들이떠올랐다가
철길이지나는먼산
산장등이로멀어지곤한다.
종착역에내려서면
낯선시골풍경속으로걸어간다.
오일장에나오신
시골어르신의자전거가지나가고
투터운쉐터를껴입으신노점의할머니는
빈코를훌쩍이며소맷단으로문지르면
차부앞가게에서연탄가스냄새가
여행자의코끝으로아련히스쳐간다.
집담장에서내려왔을까.
뒷곁모과나무를장대로흔들었을까.
텃밭에서생강을캐셨을까.
여름내울타리에올렸던넝쿨에서따셨을울타리콩한양푼.
모두가가을사랑이다.
쭈구럭가슴에무르익은손주사랑.
새벽찬바람에
손이곱아도좋으리.
몸배바지전대속에동전몇잎이면
벙그러지시는노점.
시골로향하는시내버스는텅텅비었다.
덜컹,덜컹,
바쁠것하나없는느릿한세월이함께탔다.
맑은햇살이커브를돌때마다
버스바닥을이리저리빙빙돌아나가고
여행자는옅은멀미로
가뭇하게흔들렸다.
청둥오리는토실하게살이올라
물결을헤치는소리가한결높아졌다.
호수가내려다보이는
단골집다락카페에올라
파전에동동주한동이를
권커니자시거니..
케케묵은옛이야기한소절에표주박한잔.
대처로나간아이들이야기로표주박두잔.
치매로혼란스런엄니걱정에표주박석잔.
볼그족족한얼굴에
포즈를한껏잡고섯는안해.
자그마한행복에도
만족할줄아는것.
사소한일상에서도
타인을향해
언제나부드러운미소를나눠주는
어여쁜그마음.
호수가에서서
취기어린목소리나마
가슴따뜻한詩를시낭송으로읊조리다.
무심함으로짐짓
평소에못다한마음을시에얹어
작은갚음이라도될런지모르것다.
기차시간이남아
재래시장에들어좌판에앉아
푸짐한안주겻들인낮은이야기.
순전히이런시골스럽고
한가로운분위기가좋아서
더마시지도못하는술잔을앞에놓고
지나가는사람들을바라보다가
장돌뱅이엿장수가부르는각설이타령에맞춰
발끝을까닥거려본다.
막걸리대신
오뎅국물에따순햇살을섞어마시다가
순대국밥집에들어늦은점심을에우고
시장뒷골목을하릴없이거닐면서
옅은취기를깔끔하게씻어내다.
다시되짚어돌아가는길.
뉘엿한햇살이철로위에눕고…
단풍도다지고난
저녁빛의서산마루아래
빈들판논배미.
깜박잠이들었다가
눈을뜨니
느릿한저녁해가
마을길로걸어가고있었다.
간이역에몇번을쉬었던가?
저녁빛가득한강가를돌아가며
기적소리울렸던가.
설핏
옅은잠에들었다가깨어보니
꿈인듯아득히멀어지는…
한가한날의
기차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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