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 두고 온 집
제목:그곳이멀지않다
출판사:문학동네
저자:나희덕
발간"2005년5월
네가춥겠다,생각하니나도추워
문풍지를뜯지말걸그랬어
나의여름은너의겨울을헤아리지못해
너는속수무책바람을맞고있겠지
자아,받아!
싸늘하게식었을아궁이에
땔감을던져넣을테니
지금이라도불을지펴볼테니
아궁이속에잠자던나방이놀라날아오르고
아궁이속처럼네가어둡겠다,생각하니
나도어두워져
전깃불이라도켜놓고올걸그랬어
그래도이것만은기억해
불을지펴도녹지않는얼음조각처럼
나는오늘너를품고있어
눅눅한땔감에선연기가피어올라
그런데왜자꾸불이꺼지지?
봄꿩이밝은곳으로날아갈때까지.
칸나의시절
-나희덕-
난롯가에둘러앉아우리는
빨간엑스란내복을뒤집어이를잡았었지.
솔기에서빠져나가지못한이들은난로위에던져졌지.
타닥타닥튀어오르던이들,우리의생은
그보다도높이튀어오르지못하리란걸알고있었지.
황사가오면난로의불도꺼지고
볕이드는담장아래앉아눈을비볐지.
슬픔대신모래알이눈속에서서걱거렸지.
봄이와도칸나가필때까지는겨울이었지.
빨간내복을벗어던지면그자리에칸나가피어났지.
고아원뜰에칸나는붉고
우리마음은붉음도없이푸석거렸지.
이몇마리말고우리가키울수있는게있었을까.
칸나보다도작았던우리들,질긴
나일론양말들은쉽게작아지지않았지.
황사의나날들을지나열일곱혹은열여덟,
세상의구석진솔기사이로숨기위해흩어졌지.
솔기는깊어우리만날수도없었지.
마주친다해도길을잃었을때뿐이었지.
이한마리마저키울수없다는걸알게되었을때,
나일론양말들,다시그속으로들어갈수없게되었을때,
그런저녁을밝혀줄희미한불빛에게
나는묻지,네가슴에도칸나는피어있는가,라고.
네가춥겠다,생각하니나도추워
문풍지를뜯지말걸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