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아침

등짝이고실고실하니

이불밖으로나가기가싫었다.

문밖에선할아버지가밤새내린눈을치우시는

싸리빗자루소리가

잠결인듯아득히들려왔다.

일어나야하는데

벌써코끝이시렸다.

엊저녁엔쩔쩔끓던방였는데

윗목에놓아둔할머니의자리끼를보니

그릇위로얼음이소복히올라허옇게꽁꽁얼어있었다.

눈은며칠동안계속내려서쓸고쓸어도한도끝도없었다.

어제만도오후내내삼태기로

마당귀퉁이로쓸어모은눈을

바깥마당도랑으로내다치우느라혼났는데..

엄니가들어오시니바깥의찬바람냄새와함께

엄니몸에서구수한밥냄새가풍겼다.

갑자기배에서꼬르륵~하는소리가나는가했는데

엄니의매정한손길은

솜이불을확들추며이불을개켜댔다.

얼른일어나서잽싸게옷을입고

아랫목에앉아두손을엉덩짝밑으로밀쳐넣었다.

방문쪽유리로언듯밖을보니

토담위로눈이수북히쌓여있었다.

방문으로아침햇살이볼그족족하니

환하게창호지로가득했다.

작은누이와창호지에침발라뚫어놓은구멍으로

희뽀얗게햇살이일직선으로방바닥위로쏟아졌다.

할머니가들고들어오시는질화로에서

후끈한장작냄새가났다.

동그란화로깔개를잽싸게집어다가밑에놓았다.

두손을화로위에얹으니

할머니의따뜻한손이내손을감싸왔다.

청국장투가리를행주에둘러싸서급하게들여오시는

엄니가열어제껴놓은방문으로

밤새하얀세상으로바뀐바깥이보였다.

할머니는화로중간을파고장투가리를얹어놓고

인두로주위를다독이시며

또그예의슬픈가락의콧노래를하셨다.

그소리는행성(상여)떠날때

요령소리와함께만수아버지가늘어놓던

눈물이나올것같던슬픈노래가락과닮아있었다.

슬그머니윗방으로올라가아버지머리맡에놓여있던

UN표성냥개피를가져다가장투가리속의깍두기를꼭찔러건져냈다.

어석이면서도그뜨거운맛을

할머니는무슨맛으로먹느냐며눈을곱게흘키셨다.

할머니가쇠죽가마솥에서바가지로퍼올린

뜨신물을봉당에놓아두고얼른나오라고재촉하는데

꼼짝도하기가싫었다.

속내의바람으로잔뜩목을움추리고종종걸음으로나가세수를하는데

할머니의억센손아귀는사정없이목으로물을찍어댔다.

까마귀가지나다가사촌이라고하겠다나?

으..추워서싫은데.

뽀득뽀득~소리가얼굴이며목에서나도록때를밀어대시는

할머니의손아귀에서놓여나며
고개를쳐드니

앞마당미류나무위로까마귀가아닌까치만날아와울어댔다.

잽싸게마루로튀어올라문고리를잡으니

철컥손이달라붙었다.

속내의끝으로문고리를감싸쥐고방문을열고들어서니

후끈한기운이얼굴로끼쳐왔다.

오늘은할아버지께서어쩐일인지안방으로건너오셔서조반을드셨다.


할아버지가제일좋아하시는음식은

며칠전제사상에올랐던조기생선였지만

난노란달걀찜이제일좋았다.

어쩌다가헛간닭장에서달걀을꺼내오면

항상할아버지상에만올랐다.

입에서살살녹는달걀찜을먹노라니

작은누이는빈숫가락을입에물고물끄러미바라봤다.

투가리밑바닥에누른달걀누룽지까지닥,닥긁어먹었다.

그고소한맛이라니..

흐..누가여자로태어나랬나머?..

눈이내키를넘게높이쌓였다.

마루에나가건너마을사이의논배미를보니

논인지밭인지구분없이밋밋한것이

그냥넓은운동장같이펑퍼짐했다.

아침상이나가고

마을길이막혀마실을못가신
할아버지는아랫목에서화투로오간을띠셨고

그옆에서배를쭉깔고방학책을펼쳤다.

할머니가배추꼬랭이를놋양푼에들여오셨다.


뜨신방에서차가운배추꼬랭이를먹으니

졸음이살살쏟아졌다.


방학책글씨가흐릿했는가싶었는데

고개를쳐드니

볼따구니에서흐른침에방학책이젖어있었다.

아무도없는방에는
똑딱거리는시계소리만가득했다.

겨울햇살이퍼지는아침.

담장너머로
닭우는소리만
게으르게
길게길게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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