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새벽길


국민학교무렵

마을방앗간마당으로가설극장이종종들어오곤했다.

우리집담벼락에영화프로를붙이러오는떠꺼머리총각들이

근동에서꽤알아주던처녀인

큰누나를보려고

영화프로를다붙이고도

괜히대문을기웃거리며안채쪽을

목을길게빼고바라보다가내머리를쓰다듬으며

누나에게전해달라며영화표를손에쥐어들여보내곤했다.

누나는

할머니의감시와불호령으로야간바깥출입이엄청금기시되었는데

내도움으로뒷곁문앞에놓인신발을신고고양이걸음으로

영화보러가곤했다.

그러던어느밤.

무슨이유에선지누나는내손목을끌고천막극장을들어갔다.

그때상영되었던영화가[새벽길]이었다.

필름이자주끊겨누나무릎을베고

자다가보다가하기를몇차례

내용이뭔지도모르고

그영화를보고일어나별이총총한새벽길을걸어집에왔다.

그리고바로동네방네연애사건이벌어졌다.

뒷집혁현이형과경환이누나가밤마다몰래

연애질을한다고소문이났고

경환이아버지는술만취하면작대기를들고은환누나를쫓아다니곤했다.

그때마다우리집으로숨어들은은환누나는큰누나와

밤새두런두런이야기를나누다가

어느때는쿨쩍거리는소리가나다가

영화주제곡이었던[새벽길]을부르며

가느다란흐느낌이끊기는가하다가

또울면서코맹맹이소리가들리다가

흐느낌소리로다시바뀌어

문틈새로들려오곤했다.

그러던이듬해봄.

은환누나는낯선사람과

결혼중매로나이어린맞선을보는가싶더니

맞바로마을에결혼잔치가열렸다.

멋도모르는우리꼬맹이들은엄청신이났다.

상노인계신집집마다돼지잡은선지국그릇이돌려졌고

잔치날우리꼬맹이들도엄마손에이끌려자리를차지하고

맛난잔치국수를먹고또먹으며배터지게좋아라했다.

그잔치가끝나고은환누나는신작로에서있는도락꾸를타고

아주멀리시집을갔다.

동네어귀를돌아가다가말고울고

또뒤를돌아보며울고

또울면서갔다.

그리고얼마뒤

혁용이형이맨날술에쩔어마을길에서비틀거리며

뭐라고하늘에대고악악소리를지르다

널부러져통곡하듯울곤했는데

꼭짐승이우는소리같았다.

그후로일도안하고허구헌날을술로만살아가는모습을보며

마을어른들은혀를끌끌차곤했다.

서해바다어느섬에선가우체부를하는사람에게

시집을갔다고했다.

얼마뒤친정나들이를와서는

큰누나와내내붙어지내다갔는데

그날밤내내이새벽길이란노래가

가느다란흐느낌소리에섞여

안방에있는내귀에까지들려왔다.

그런데도

왠일인지할머니께서는큰누나를혼내지않으셨다.

그리고

그이듬해인가형용이형도이쁜각시에게장가를들었다.

얼마간정신을차리는가싶더니

어린아들을무슨병인가로잃고나서실성하듯변해

도로술태백이가됐다.

얼마뒤

각시가도망갔다고동네사람들이수군거렸다.

순일이할머니가아이를거둬키우며

혁용이형은홀로

폐가나다름없는집에방치되다시피혼자살았다.

이상하게도은환누나는애기를낳지못했다.

고아원에서아이를하나데려다가키울거라고했다.

그리고또세월이흘러

내가고등학교일학년겨울방학에집에내려가니

혁용이형이폐병을시름시름앓다

죽고말았다고했다.

은환누나는시집가고나서도

제일친했던고향친구인

큰누나와자주연락하며지내다가

서울로이사와서는큰누이집에서몇번뵙곤했다.

그러던은환누나가무슨암인가로고생한다는

소식이간간히들려오더니..

시집가던날

뒤를돌아보고또돌아보며갔듯이

이승을등지고말았다.

7년전의일이다.

영화<새벽길>은가난한애인을버리고부유한사장딸과결혼한주인공의

비극적인종말을그렸다.

요절한<남정임>이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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