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연

밤새눈내리고
아침햇살에눈가루가반짝대며날았다.

앞집옆집초가지붕위로봉곳하게덮힌눈세상에
설레는마음으로마당에나서면

삽작거리며도랑들이펀펀히눈속에덮혀졌고

샘가가는길을넉가래로낑낑대며치우고나니

마루며봉당께로붉게겨울햇살이비춰들고있었다.

소나무가수북한눈의무게를이기지못해

꺾어지는소리온마을에쩌렁쩌렁울려퍼지고

다시슬금슬금눈발이날리기시작했다.

형의땀에젖은벙거지위로

모락대는김을바라보다가는장난삼아그곳에다

눈뭉쳐서휙던지고얼른부엌으로뛰어들어왔다.

뒤쫓아온형을나무라며감싸주는엄니의행주치마에서는
겨울바람냄새가났다.

아침상의동치미종재기에는얼음이얹혔고

가마솥을행주로빙빙돌려훔칠때마다허연김이칙칙~~올랐다.

고쿠락에서일렁이는불을바라보며쪼구리고있다보니

구수한밥물넘치는냄새에배가고파왔다.

상위의겅거니를엄니몰래손가락으로집어먹다가

누룽지를동골동골뭉쳐서밥주발위에얹어놓기가바쁘게

잽싸게들고나가마루끝에앉아

야금야금돌려가며먹었다.

문창살에환히비춰오는

밝아지는안방에서빙둘러아침을먹다가

동무들이놀자고불러서마루에나가대꾸해주고들어서니

새삼스레방안으로청국장냄새가구수하니진동했다.

서둘러먹고서나가동무들과논과밭으로내달렸다.
담배밭고랑에서넘어지며눈속으로얼굴이쳐박혔다.


눈앞에펼쳐지던푸르스름한빛가득하던눈더미속의빛깔.
그빛깔의세상은포근하고도아름다웠다.

형과함께밭뚝에나가할아버지가만들어주신

방패연과가오리연을눈내리는하늘에띄워올렸다.

연을올려다보니

내몸도같이자꾸자꾸하늘로떠오르는

기묘한착시현상에빠져들었다.
정신을차리면다시땅위에서있었다.

그요술스런현상에현기증이났다.

내작은가오리연은자꾸땅으로곤두박질치고
형의방패연은수리조합저수지저쪽마을인

마루택이위에서까마득한높이로팽팽하게떠올라있었다.

연줄을끌고집까지들여와마루기둥에묶어놓고

형은으쓱이며득의만만한표정을지었다.

방패연의실타래를끝까지다풀어주고

높이높이올라간연을찾느라

이마에손대고찌푸린양미간을모으며까치발들고올려다봤다.

희뿌연눈발속에가물대는방패연줄에서는

까마득한하늘위쪽의묵직한

겨울바람의서늘한감촉이전해져왔다.

마을앞을지나가던어른들이며쪼무래기들도

가던길을멈추고올려다봤다.

점심을먹고난오후까지도눈내리는높다란하늘에는

까만점하나로높이높이

그자리에위풍당당하게떠있었다.

저녁판에잔잔하던바람이조금흔들리는가했는데

기둥의연줄이영심상치가않았다.

저너미로놀러간형을부르러뛰어가며

불안스러운마음에눈은계속방패연에시선을주았다.

형에게알리기도전에연줄이끊어져

오동산쪽보습고지쪽으로가물가물멀어지고있었다.

아쉽고안타까움에눈위에털썩주저앉아있자니

어디서연을바라보고있다가는뛰쳐나왔는지

형이저수지쪽논뚝길을전속력으로내닫고있었다.

너무많이쌓인눈속에서

무릎까지푹푹빠지며허우적대다가

이내풀이죽어돌아오는형은

자꾸멀리산등성이만뒤돌아보고또돌아보곤했다.

방패연이끊어져날아간빈연줄이마당을타고

담장을넘어서옆집헛간지붕위로길게늘어져있었고

형은괜히마루끝에앉아

손톱으로마루만빡빡긁고있었다.

연이넘어간산쪽의하늘은

이내어둑어둑한땅거미가지고있었다.

방패연이떠있던하늘중천으로는

철새들무리가V자를그리며
방패연이끊어져서사라진그오동산을넘어가고있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