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뱅이의 여름

마을앞신작로의미류나뭇잎이

바람따라반짝대며하늘대는여름이돌아왔다.

학교에서오자마자마루에다책보를던져두고

아무도없는텅빈집안을한바퀴돌아
부엌에서보리밥과고추장을내다가

마루에늘어놓고앉아썩썩비벼먹고

물동이에주둥이를대고찬물을벌컥대며마시고

이내바깥마당의조무래기패들과저수지로나갔다.

너무더워서논길을따라저수지를향해뛰면서

우리는웃옷을벗었다.

물가에아무렇게나옷가지들을던져버리곤

물속으로곤두박질쳤다.

꺅깍대며헤엄치는동무들을바라보며
천천히물속으로걸어들어갔다.

요사이난깨구락지(개구리)
헤엄을연습하는중였다.

내가서있는얕은쪽의물은금방뒤집혀져흙탕물로변했다.

몸으로물때가붙는것이싫어
슬슬안쪽으로걸어들어갔다.

그때우리보다두살위이면서꼬마대장인부영이가다가왔다.

"얌마,헤엄은물에빠져봐야배우는겨."

흐믈대는웃음으로슬슬다가오더니

한쪽팔을나꿔챘다.

안끌려가려고버텨보려했지만물속에선속수무책였다.

허우적거리며댓발짝을끌려갔나싶었는데

갑자기물이차가워지면서발밑이겅중하니허전했다.
순간당황스러운혼란이왔다.

팔다리를허우적거리며물속으로가라앉았다.

물속의희뿌연물살이보였고

콧속으로물이들었다.

몸이떠오르고황당구레한눈으로주위를바라보니아..

까르륵대며손가락질하면서

재미있어죽겠다는듯이웃어대는야속한악동들이얼핏보였다.

다시몸은아래쪽으로빠져들고저수지바닥이보였다.

‘아..내가이렇게죽는구나."
‘이일을대체어쩐대냐그래?’

다시한번수면위로떠오르면서왁왁대며소리쳤다.

팔뚝을휘저으며…

그때저만치서어른이지게에꼴을한짐가득지고지나는게눈에들어왔다.

다시물속으로꼬르륵가라앉으며깊은절망감으로허우적대며

수면위로떠오르니

억센누군가의손길이내엉덩이께를꽉움켜쥐고는물밖쪽으로밀쳐내고있었다.

물밖으로나와기진해서쓰러져누워선

내주위의동무들의웅성거림을들으며쿨쩍대며울었다.

지나던혁현이둘째형이아니면물귀신이될뻔한황당함과놀란가슴에
다리가풀리며까닭모를서러움이목까지차올랐다.

악동들은여기저기뿔뿔히흩어져앉아

혁현이형에게혼쭐이나고있는지

그꾸중소리가내게는꿈속같이아득하니멀리서들려왔다.
귀가먹먹해지며답답했다.

귓속으로물이들어가서손가락으로후벼대니찌그덕거리며골이아파왔다.

주열이가따뜻한작은돌맹이를가져다귀에대줬다.

돌을베고누워한참을있자니졸음이몰려왔다.

눈앞이붉은세상으로빠져들즈음..

햇볕이구름속으로숨으며갑자기붉은세상이검은빛세상으로바뀌었다.

으슬으슬온몸으로닭살같은소름이돋아났다.

그때누군가의입에서해부르는노래가선창으로나왔고이내합창이됐다.

해야해야~붉은해야~김치국에밥말아먹고~장구치고
나오너라~얼릉얼릉나오너라~~~

귓속에서따뜻한물이또로록굴러내렸다.

나도배시시멋적게웃으며일어나앉아따라서불렀다.

노래의효험때문였을까?

환하고따스한햇볕이저수지건너편에서물가운데를지나

우리가모여앉은둔덕까지비춰들었다.

사방이밝아지며소름이없어졌고

다시동무들의꺅꺅대는수선스러움과함께

물가에죽늘어서앉은우리들주위로화기가감돌았다.

갑자기시큼한김칫국이생각났다.

빨리집에가서김칫국에밥말아먹어야지..

집텃밭으로옥수수가익어가는

유년의

높은뱅이여름.

(길게노래로이어지는맑은동요세상에도들어보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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