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 – 노천명 –
나는얼굴에분칠을하고
초립에쾌자를걸친조라치들이
날라리를부는저녁이면
다홍치마두르고나는향단이가된다.
이라하여장터어느넓은마당을빌어
램프불을돋운포장속에선
내남성(男聲)이십분굴욕되다.
산넘어지나온저동리엔
은반지를사주고싶은
고운처녀도있었건만
다음날이면떠남을짓는
처녀야!
나는짚시의피였다.
내일은또어느동리로들어간다냐.
우리들의도구를실은
노새의뒤를따라
산딸기의이슬을털며
길에오르는새벽은
구경꾼을모으는날라리소리처럼
슬픔과기쁨이섞여핀다.
밤이새면장거리에풀어야할황앗짐
별빛잡고길을물어가야할팔십리란다
나귀목에짤랑짤랑향수피는방울소리
구름잡고도는신세발길이섧다.
경상도라전라도라충청도에강원도
외양간나귀몰아조바심몇십년이냐
길동무에입을빌어더듬어본추억속에
말만들은옛고향의처녀를본다.
황혼들면주섬주섬다음장을손꼽아
선잠깨인베갯머리세월은주마등이냐
동쪽에서잔을들고서쪽에서사랑푸념
울고가자당나귀야방울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