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오는구월의교정이고요하다.
뒷짐지고향하는발길은
도서실에들어
옛날의책들을꺼내
책냄새를맡아보다가5~60년대
묵은글두권을내려펼쳐들고몇장을넘기다.
[배반의여름]이라는박완서님의작품이펼쳐진다.
40년전젊은새댁같은수줍음으로서있는박완서님의사진을한동안들여다보다가
한줄을읽어내려가다.
"그때가아마내나이일곱살때였을게다.연년생의누이동생이다섯살나던해여름."
시작되는옛날식활자체와누렇게변색되어진책귀퉁이가정겨워손으로쓰다듬다가
보듬어나와보니눈부신가을볕이
교정가득쏟아지고있었다.
도서실앞화단가에걸음을멈추고서서
또몇장을넘겨본다.
참매미소리가교정을덮을듯한소리로점점높아가는데
역설적이게도내마음은자꾸고요속으로
깊이깊이침잠되어지는
교정나무그늘아래서의책읽기.
저먼50~60년대를찾아가는여정에서
더위를잊고책을읽는데
등뒤로스멀거리는땀.
책에푹빠져들어교무실까지도걸어가질못하고
바로옆에주차된차량에앉아에어컨을틀어놓고또
12쪽의박완서님을읽어내리다.
"누이동생은장마가개고불볕이나는7월의어느날거기서빠져죽었다.
내뒤만졸졸따라다니는게성가셔서감쪽같이따돌리고나서불과
한시간도안돼서그일이일어났던것이다.
"다음해여름아버지는해질녘이면내손목을잡고언덕너머
새로생긴사립국민학교로산보가는일이잦았다."
"유난히무더운어느날이었다.거의어둑어둑해질때까지수위실에서잡담을하던
아버지가미끄럼틀까지나를데리러왔다.심한장난을한뒤라온몸이땀으로끈적끈적했다."
"아버지는등에찰싹달라붙은내티셔츠를들추고통풍을시켜주며
짜아식집에가서목욕하고자야겠다고했다."
"어쩌면내가외부에서찾던진정한늠름함
진정한남아다움을앞으론내내부에서키우지않는한그건영원히불가능한채
다만허위적거림만이있는지도모르겠다."
"내홀로느름해지기란
아,아
그건얼마나고되고도고독한작업이될것인가."
"나는고독했다.아버지의낄낄낄이내고독을더욱모질게채찍질했다."
1977년여름에쓰신박완서님의글을
내책상으로돌아와
맨끝줄을마져읽고앉았는데
눈꼬리로흘러내리는
한줄기눈물.
아,나는어떤아버지인가.
이우물속같이깊은
심연저편으로울컥,넘어오는뜨거움.
물이흘러가듯
구름이하늘을흘러가는듯한
문체와
연필로그려내듯담담히써내린
깊은마음.
근자에들어이런감동에들어본적이내게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