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쓴 편지

느티나무아래에섰습니다.

가을하늘이너무높고도높아

가을볕을가려주다가힘들었나봅니다.

가을하늘을받히려고느티나무도지팡이를짚었습니다.

나도가을을짚어

파아란하늘아래가을산을오르네요.

돌담에해살거리는가을볕좀보아요.

따사로우면서도건듯한바람이돌담장을돌아나를따라오네요.

그래

가을아,

너왔구나?

참이쁘구나.

유년의날들에서이즈음의가을녘에유일한장난감인나마리꽃이예요.

"나마리동동,파리동동,멀리멀리가며는똥물먹고죽는다.여기여기붙어라."

구전동요를부르며얼굴이맨들맨들쌔까맣게타도록이꽃을빙빙돌리면서동구밖까지내달립니다.

허면거짓말같이나마리가이이쁜꽃에붙지뭡니까?

그러면얼마나가슴뛰는환희였는지그대는아시나요?

꼬맹이가물장난을합니다.

꼬맹이에게도가을이왔어요.

"아가야,너몇살?"

"……"

꼬맹이는가을을모르나봅니다.

이가을에는누구나사랑스러운높은음자리억양으로대답을해야하는데요.

"아가야,나와함께靑山가련?"

"……"

물소리만돌돌돌,아가대신대답을합니다.

이렇게눈이부시게푸르른날에는편지를써서가을높푸른하늘에다부쳐야해요.

우표없어도돼요.

우체부아저씨빨간자전거도없어도돼요.

수취인도아무나면어때요?

그냥[가을에게]라고만쓸래요.

산에오르기전에벌써졸려요.

가을볕이눈이부셔서눈을뜨지못하겠어요.

그냥가을에게잠시쉬었다가자고

이야기를건네봐요.

바람이빙긋웃네요.

누워잘곳이어디있나요?

그냥툇마루에앉아끄덕끄덕졸다가

꽃들이어여가자고귓속에다가속삭이는소리

들리세요?

이렇게좋은날에

나맘듣는것은아니겠지요?

꽃들이산길초입에나랩으로서서

나에게가을인사를하네요.

너희들도지난여름빗속에꺾이지않고

이렇게아름답게꽃을피워냈구나.

그래

가을이구나.

산들바람이이마를쓰윽지나서들판을달려

저쪽산마루까지달려가네요.

그러더니산잔등이를넘어치올라

가을하늘구름들을가지고장난을치네요.

점잖게바람이하는짓을바라보던

보탑이가어흠,헛기침을합니다.

그래네가있어가을이더욱가을답구나.

보탑이가그려내는가을풍경또한고요롭고도아름답구나.

어마,어마.

너는누구니?

언제산비얕에서푸르름을키웠니?

네가있어산들바람이청랭하니상그러웠구나.

가을하늘하고

가을바람에게만눈길을줘서미안해.

가을아,

인사나누자.

나는가을을타는남자야.

가을만되면고얀히막슬프기도하지.

그마음을나도진정몰라.

오늘은너와산을오르려니해맑간가을하늘을닮아서

내표정이가을하늘같이해맑아지네?

다시정식으로안사할께.

가을아,

안녕?

산길마다앞서가는가을볕아,

너는어느화가화판에머물렀다가

이제사가을바람을타고예까지마중나왔느냐.

네가그려놓는가을빛.

참이쁘구나.

가을아,이건뭐니?

여기다가가을을부치면되는거니?

가을산에서있는저우체통은빨간색이아니고나무결이네?

가을편지우체국은하느님이운영하시나봐.

빨간십자가마크를그려넣었네?

하느님은못하시는일이없나봐.

오늘너와오르는가을산정상이저만치올려다뵈네?

꼭생김새가어릴적엄마가저고리고름을풀어헤쳐

단내나는젖을물려주던그젖무덤하고똑같아.

갑자기배가고파져.

고픈배를신선샘으로채우고선에

어여젖냄새따라올라가야겠어.

엄마일가는길에하얀찔레꽃.

엄마가고단한밭일을하려고호밋자루를챙겨서

머리에고추장떡을삼베수건에싸서이고

밭에가실제

어린마음에젖이고파칭얼칭얼쫓아가면

길가양시원한나무그늘에서젖을물려주곤하셨어.

너그젖냄새알아?

어린날

엄마일가시는산길을따라가면성황당이있었는데

그아래상여를가져다놓은곳집이있었어.

해넘이재밭이었어.

이맘때면그아래논배미에메뚜기가얼마나많았다구.

네가바람으로키워냈다고했쟈?

낮에도무섬증에어지러워휘청거리던그산길에도저렇게돌무더기가쌓였었어.

나도돌매끼한개를주워와살며시올려놓을제

가을바람

네가흔들어망쳐놓고달아나곤했어.

그땐참나뻤어.

하지만오늘은다용서해줄께.

나랑다시산길이나가자꾸나.

아?너와이야기를나누다보니

벌써정상에다올라왔어.

가을하늘아,

너참말로이뻐.

가을바람아,

너참싱그럽게멋져.

이제만뢰산정상에

다올라왔네요.

하늘에다수제비구름을띄워놓고

가을바람이

산아래서부터불어올라와

얼마나상긋한지몰라요.

정상이예요.

저가을을보아요.

첩첩산그너머

구름좀보아요.

나는왜저런풍경앞에서면

가슴이아름슬퍼지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아뜩해지고

누군가막그리워져요.

산아래에대고

호이,호이,메아리로이편지를실어

그리움에게부쳐야겠어요.

고을원님이가을산에게편지를써놨네요.

편지가잘못갈까봐서

주소도또박또박적어놨어요.

편지내용을읽어보세요.

이가을산이

살아서진천땅이좋고

죽어서는용인땅이좋다고

먼옛날부터전해내려온다고하네요.

고을원님은필체도참좋으셔.

가을을그윽히건너다보아요.

가을빛에는

멀리떠난그리움들이

하나씩

바람으로다가앉아요.

잠시왔다가아득히멀어지는

가을이예요.

산정상에다

정자를지어놨어요.

지나가는바람도쉬어가고

나같은산객도다리를쉬어가라고

산마루에서나를기다렸네요.

아니?

이막걸리는또왠횡재인가요?

산밤으로빚어만들었다는

밤막걸리라고하네요.

마늘쫑에고추장을찍어안주삼아

두잔을연신마셨네요.

산아래부터허기를참고올라왔는데

금방허기가면해지네요.

바로산을내려가지못하고

정상부근나무아래에잠시숨을고르고

구름으로멀어지는

가을에게다시편지를쓰네요.

이렇게좋은날에

이렇게좋은날에
그님이오신다면얼마나좋을까.
그님에게도짧은편지한줄을써봐요.
가을이라더욱그립다고
간략히적어
구름으로쓸어서더욱해맑아진
가히없이높은가을하늘에띄워봐요.

그대

시방이편지읽고계시지요?

이가을들어

더욱

보고싶어요.

흑,

다시되짚어내려오다가

아쉬움에

가을산을올려다봐요.

괜히슬퍼져서

하늘을올려다봐요.

그리운내님은어디계시나요?

잠시멈춰서서

사춘기적편지말미에소월님의시를함께적어서동봉하듯

시한귀절을가만가만적어그대에게띄워요.

해지고저물도록귀에들려요

밤들고잠들도록귀에들려요
고이도흔들리는노래가락에

내잠은그만이나깊이들어요

고적한잠자리에홀로누워도

내잠은포근히깊이들어요

그러나자다깨면임의노래는

하나도남김없이잃어버려요
들으면듣는대로임의노래는

하나도남김없이잊고말아요.

가을산에다

가을편지를띄워서

산마루를넘어가는갈바람에게전하고

산아래로내려왔어요.

가을산이하예뻐

산길을내려가다가

서있어요.

또가다가서있어요.

저창공을지나는

바람에띄운가을편지가

그대에게

닿을것을굳게믿어요.

산아래에내려와

창아래에서서

눈을감고

천리밖

그대에게달려가요.

가을산에쓴편지가

정녕그대에게전해나질까요?

가을볕이사위어가는

창호문에기대어

또아름슬퍼지는마음을

편지로

저녁창에잇대어쓰네요.

추신으로덧붙였어요.

가을산을

배를깔고엎디여

턱괴고

올려다봐요.

처마끝으로치오르는

보고싶은마음이

하늘복판을가네요.

산그림자길게깔리고

구름도집을찾아

산마루를넘어가네요.

가을이쓴편지를

끝까지다읽어주셨군요.

고마워요.

참고마워요.

가을아,

그럼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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