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튿날 가을운동회

추석이아쉽고섭섭하니지나버렸다.

맨날추석날이됐으면좋겠다.

오늘은우리학교운동회가있는날이다.

나이롱빤쓰와난닝구만입고새고무신을신고보니

몸이훨훨~날아갈듯했다.

옆집형은곤봉에다길다란색종이를밥풀로붙여서

양쪽어깨에하나씩메고으쓱대며걸어갔다.

나도내년이면4학년이되니까곤봉체조를배울수있을게다.

엄니가5원.큰누나가10원.거금15원을빤스새끼주머니에

꼬깃꼬깃찔러넣고학교까지냅다뜀박질을했다.

내뜀박질실력은6학년동네형들도못당하는실력이라서

모두가알아줬다.

교문앞에당도하니

우리동네근철이아버지인엿장수아저씨께서지게목판에엿가락대신과자며

사탕봉지를수북하게올려놓고지게작대기를세워놓고

막풍선을불어여기저기매달고계셨다.

거기서비과사탕하고미루꾸를사고나니돈의반절이줄고말았다.

학교마당으로들어서니

플라다나쓰나무가빙둘러친운동장에는

이쪽과저쪽을가로질러만국기가펄럭였고

나무그늘을따라우리들책걸상이빙~러잇대여둘러처져있었다.

운동장에는하얀횟가루를뿌려여기저기선명한금들이상큼하게그져있고

학교담장을따라국밥집들이차일을치고는

임시로만든양철굴뚝으로

퍼런연기를뿜어내며구수한냄새를풍기고있었다.

교장실위에매달렸던대형스피커도교단옆나무위꼭대기에내다걸렸다.

"새나라의어린이"행진곡이경쾌하게아랫강거리마을까지

찌렁찌렁메아리치며멀리멀리퍼저나갔다.


각마을별로책걸상이배당된자리가있었다.

높은봉이는서편의신축교실앞쪽였다.

선생님호각소리가울리고우리는개선문앞으로모였다.

며칠동안연습한대로모두가팔다리를

높직높직하게처들곤씩씩하게운동장으로줄맞춰나갔다.

♬~퐁당!퐁당!돌을던지자~♪하는무용도하고달리기도했다.

일등을하고받아든공책에는"상"이라는글씨가

퍼런잉크로월계수잎사귀에둘러쳐찍혀있었다.

점심시간이됐다.

식구들이있는쪽에가보니뜻밖에도

할아버지께서중절모를멋나게쓰시고

문중의시제에다녀오셨다가사오신니스가칠해진

매끈하고반들거리는지팡이를짚고나오셨다.

또버지만안오셨나보다.

할머니.엄니.큰누이.

아버지만빠지고모두가오셨다.

김밥을펼쳐놓고막먹으려는데

할아버지께서내손을지긋히잡으시곤국밥집으로가셨다.

다른식구에겐같이가잔말씀도없으셨다.

진국의국밥은밥알갱이조차도흐물흐물녹아서

뚝배기가득넘쳐났다.

손잡이에동그란구멍이나있는놋숫가락으로

정신없이허겁지겁먹고나니배가빵빵하니불러왔다.

하이고!~이를우짼데있다가마라톤뛰는데출전할텐데.

햐아!~한번조오타아~

.……..

상급생형들의덤부링묘기는주먹에땀이나도록아슬아슬하게했다.

운동장가양의커다란느티나무만큼이나높이높이

어깨와어깨를밟고부들부들흔들리며

까마득하게올라간것같았다.

맨위의청군모자를쓴형이천천히일어서며두손을짝펼쳐서들었다.

운동장이떠나갈듯박수가터져나왔다.

가슴이콩닥거리며조마조마했다.

갑자기오줌이마렵고눈이부셔왔다.

밑에서는선생님들이맨위의그형만주시하며빙둘러서있었다.

순간모든소리가잦아들었다.

운동장의모든사람들이하던동작을멈추고

시선을모으는순간??..그형이폴짝~뛰는것같았다.

운동장사람들모두의입에서어??~~어,어!!!~~하는

외마디소리가튀어나왔다.

그형이발을헛짚었는지중심을못잡고굴러떨어지고있었다.

아!..으..으..나는눈을질끈감았다.

잠시후.

와!!!!!~~~하는함성이운동장가득히퍼졌고

그형은아래쪽선생님들의팔위에누워있었다.

박수가우뢰같이터졌다.

그형은기절을했는지여선생님등에업혀

교무실쪽으로급히뛰어가고있었다.

커다란공굴리기도하고

오재미로바구니터뜨리기를했다.

대바구니를마주포개서종이로겉을감싼둥근바구니가터지며

그속에서색종이가루가쏟아지며비둘기가날아올랐다.

그리고길다란광목천이척하니

아래도펼쳐져내리면서멋드러진글씨체로

"中秋佳節"이라는뜻모를한문글씨가커다랗게빨간글씨로

차르륵~펼져져내려졌다.

또박수가터져나왔다.


상급생형들의기마전은참으로신났다.

백군은모두가웃통을벗었고머리에는각각청,백띠를둘렀다.

각팀에서한사람의대장만모자를쓰고

양편이모자쟁탈전을벌였다.

이리로저리로우르르우!~~우!~~몰려다니다가맞붙어싸울때는

운동장에먼지가일어뽀얗게시야를가리기도했다.

어찌나치열한지어떤형들은위에앉은사람이거꾸로매달려

머리가땅에닿는데도

포기를않하고악착같이싸우는모습도보였다.

그러기를얼마.

반수이상이줄어든싸움에서청군이모자를빼앗겨서

승부는싱겁게끝이나고말았다.

또하나재미있던것은마을청년들끼리의이어달리기계주였다.

각마을별로나선청년들의뜀박질은꼭황소가뛰는것같았다.


운동장트랙을돌아스쳐지날때마다

땅이쿵!쿵!울리며씩씩!~!하며내는숨소리가

어찌나큰지영락없는고삐풀린황소들같았다.

히!~우리동네가꽁찌를해서얼마나창피한지모른다.

그것도반바퀴나떨어진꼴찌였다.

중간에서저너미진해형이바톤을떨구는통에

끝끝내따라잡지못하고만것이였다.

억울하고분했다.

드디어운동회끝순서로1,500M마라톤경기가시작이됐다.


나는머리에다할아버지댓님(한복바지발목부분을묶는끈)을

질끈동여매고맨발로출발선에나갔다.

선생님께서혹뛰다가형들에게밟힐지모르니

라인바깥쪽으로찬찬히끝까지기권안하고뛰면

상장을주겠노라고웃음을머금으시며대견해들하셨다.

둘러보니내가제일꼬맹이였다.

모두가형들뿐였다.

제일앞쪽으로비집고나가하얀선을밟고앞쪽을노려보며서있었다.

발바닥감촉으로느껴지는출발선상의석회분가루가

눈처럼뽀드득하니보드랍다고생각했다

……

주~운..비잇!~..땅!!!~

두근두근하던총소리가어찌나크게울리는지

깜짝놀라서주춤거리다얼떨결에떠밀리다시피앞으로냅다뛰었다.

상급생형들이어찌나억세게밀어제끼는지

이리저리밀리다보니꽁찌에서몇번째가되고말았다.

벌써선두는건너편트랙을돌고있었다.

갑자기배가살살아파오고배에서물이꿀렁이는느낌이들었다.

아까너무맛있게먹은순대국이원인였다.

헉!.헉!~

큭!!~이일을우짠대지?.

숨은턱에꽉꽉막혀오고답답해졌다.

운동장이빙빙~돌고사람들모습이흐릿했다.

누가다가와서나를안아서나가려고했다.

뿌리쳤다.

다리가풀리고일등으로뛰는형이내앞을질러갔다.

땅!!!~하는마지막바퀴를알리는총소리가먼데서들렸다.

내앞으로무수히많은형들이스쳐지나갔다.

그리고.그리고는.

그넓은운동장한가운데에아무도없이나혼자였다.


아무도없는텅빈트랙을어림잡아자꾸휘청이며꺽이는다리를

힘겹게추스리며한발..한.발..내디뎠다.

갑자기그많은사람들이모두조용한가운데문득서러웠다.

눈물이났다.

모르겠다.

슬퍼선지.

창피해선지.

나도모르겠다.

결승점이저만치흐릿하게보이는데.어??

왠결승테프가쳐져있는게희뿌연눈물사이로보였다.

누가나와선같이뛰면서내등을다독다독두드렸다.

얼핏보니담임선생님이었다.히!~

일등만끊을수있는흰테프가부드럽게허리에감겼다.

그리곤귓전에서둥둥북소리가힘차게났다.

동네풍물때쓰는북을가져온동네아저씨의힘찬북소리.

북소리.

나는쓰러졌다.

이마에맨댓님줄이흘러내렸고머릿속에서는온통망치질소리뿐.

박수소리가요란하게들리는것도같은데깊은잠에빠진듯이편안했다.

얼굴에찬물이끼쳐오는것을어렴풋이느꼈다.

아련히웅성웅성하는소리가들리며눈을떴다.

하늘은안보이고수많은얼굴들만가득했다.

큰누나가나를꼭껴안았다.

으..으..박하분냄새.

갑자기운동장에는와!~~하하!~~하는고함소리와

여자들이두손을얼굴에감싸쥐고뒷걸음질을하고들있었다.

호기심에가까스로일어나운동장을내다보니

일반부마라톤인어른들이뛰고있는데

그중한아저씨의광목빤쓰의가운데로히힛!~꼬추가덜렁거렸다.

그런데그아저씨는모르는지심각한얼굴로

열심히두바퀴하고반이나돌고나서야사람들이운동장에서끌어냈다.

온통배꼽들을잡고아수라장이됐다.

중턱말사는춘식이삼촌이라고했다.

그렇게운동회는끝나고시상식이있었다.

괜스레순대국을많이먹어서꼴찌가뭐람.힝!~

그런데이게왠일인가?

마이크에선분명3학년2반000어린이를몇차례부르는소리가났다.

어찌된일이지?.

교단앞엔상받을애들이줄서있었다.

절뚝이며뛰어가니교장선생님이두터운안경테를넘겨보시며허허!웃으셨다.

꼴찌가제일먼저상품을받다니..

그것도두툼한공책뭉치와연필곽과곡괭이한자루와양은솥단지.

히!~이종채선생님의멋진붓글씨자국이가시지않은커다란상장.

내이름자가채마르지않은글씨였다.

특별상높은교단위에서서

한참을교장선생님의손을잡고무슨칭찬인가를한참을들었다.

그가을운동회.

그오색깃발아래운동회둥둥북소리울려퍼지던운동장.

다시금그운동장으로달려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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