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마을별로책걸상이배당된자리가있었다.
높은봉이는서편의신축교실앞쪽였다.
선생님호각소리가울리고우리는개선문앞으로모였다.
며칠동안연습한대로모두가팔다리를
높직높직하게처들곤씩씩하게운동장으로줄맞춰나갔다.
♬~퐁당!퐁당!돌을던지자~♪하는무용도하고달리기도했다.
일등을하고받아든공책에는"상"이라는글씨가
퍼런잉크로월계수잎사귀에둘러쳐찍혀있었다.
점심시간이됐다.
식구들이있는쪽에가보니뜻밖에도
할아버지께서중절모를멋나게쓰시고
문중의시제에다녀오셨다가사오신니스가칠해진
매끈하고반들거리는지팡이를짚고나오셨다.
또버지만안오셨나보다.
할머니.엄니.큰누이.
아버지만빠지고모두가오셨다.
김밥을펼쳐놓고막먹으려는데
할아버지께서내손을지긋히잡으시곤국밥집으로가셨다.
다른식구에겐같이가잔말씀도없으셨다.
진국의국밥은밥알갱이조차도흐물흐물녹아서
뚝배기가득넘쳐났다.
손잡이에동그란구멍이나있는놋숫가락으로
정신없이허겁지겁먹고나니배가빵빵하니불러왔다.
하이고!~이를우짼데있다가마라톤뛰는데출전할텐데.
햐아!~한번조오타아~
.……..
상급생형들의덤부링묘기는주먹에땀이나도록아슬아슬하게했다.
운동장가양의커다란느티나무만큼이나높이높이
어깨와어깨를밟고부들부들흔들리며
까마득하게올라간것같았다.
맨위의청군모자를쓴형이천천히일어서며두손을짝펼쳐서들었다.
운동장이떠나갈듯박수가터져나왔다.
가슴이콩닥거리며조마조마했다.
갑자기오줌이마렵고눈이부셔왔다.
밑에서는선생님들이맨위의그형만주시하며빙둘러서있었다.
순간모든소리가잦아들었다.
운동장의모든사람들이하던동작을멈추고
시선을모으는순간??..그형이폴짝~뛰는것같았다.
운동장사람들모두의입에서어??~~어,어!!!~~하는
외마디소리가튀어나왔다.
그형이발을헛짚었는지중심을못잡고굴러떨어지고있었다.
아!..으..으..나는눈을질끈감았다.
잠시후.
와!!!!!~~~하는함성이운동장가득히퍼졌고
그형은아래쪽선생님들의팔위에누워있었다.
박수가우뢰같이터졌다.
그형은기절을했는지여선생님등에업혀
교무실쪽으로급히뛰어가고있었다.
커다란공굴리기도하고
오재미로바구니터뜨리기를했다.
대바구니를마주포개서종이로겉을감싼둥근바구니가터지며
그속에서색종이가루가쏟아지며비둘기가날아올랐다.
그리고길다란광목천이척하니
아래도펼쳐져내리면서멋드러진글씨체로
"中秋佳節"이라는뜻모를한문글씨가커다랗게빨간글씨로
차르륵~펼져져내려졌다.
또박수가터져나왔다.
상급생형들의기마전은참으로신났다.
백군은모두가웃통을벗었고머리에는각각청,백띠를둘렀다.
각팀에서한사람의대장만모자를쓰고
양편이모자쟁탈전을벌였다.
이리로저리로우르르우!~~우!~~몰려다니다가맞붙어싸울때는
운동장에먼지가일어뽀얗게시야를가리기도했다.
어찌나치열한지어떤형들은위에앉은사람이거꾸로매달려
머리가땅에닿는데도
포기를않하고악착같이싸우는모습도보였다.
그러기를얼마.
반수이상이줄어든싸움에서청군이모자를빼앗겨서
승부는싱겁게끝이나고말았다.
또하나재미있던것은마을청년들끼리의이어달리기계주였다.
각마을별로나선청년들의뜀박질은꼭황소가뛰는것같았다.
운동장트랙을돌아스쳐지날때마다
땅이쿵!쿵!울리며씩씩!~!하며내는숨소리가
어찌나큰지영락없는고삐풀린황소들같았다.
히!~우리동네가꽁찌를해서얼마나창피한지모른다.
그것도반바퀴나떨어진꼴찌였다.
중간에서저너미진해형이바톤을떨구는통에
끝끝내따라잡지못하고만것이였다.
억울하고분했다.
드디어운동회끝순서로1,500M마라톤경기가시작이됐다.
나는머리에다할아버지댓님(한복바지발목부분을묶는끈)을
질끈동여매고맨발로출발선에나갔다.
선생님께서혹뛰다가형들에게밟힐지모르니
라인바깥쪽으로찬찬히끝까지기권안하고뛰면
상장을주겠노라고웃음을머금으시며대견해들하셨다.
둘러보니내가제일꼬맹이였다.
모두가형들뿐였다.
제일앞쪽으로비집고나가하얀선을밟고앞쪽을노려보며서있었다.
발바닥감촉으로느껴지는출발선상의석회분가루가
눈처럼뽀드득하니보드랍다고생각했다
……
주~운..비잇!~..땅!!!~
두근두근하던총소리가어찌나크게울리는지
깜짝놀라서주춤거리다얼떨결에떠밀리다시피앞으로냅다뛰었다.
상급생형들이어찌나억세게밀어제끼는지
이리저리밀리다보니꽁찌에서몇번째가되고말았다.
벌써선두는건너편트랙을돌고있었다.
갑자기배가살살아파오고배에서물이꿀렁이는느낌이들었다.
아까너무맛있게먹은순대국이원인였다.
헉!.헉!~
큭!!~이일을우짠대지?.
숨은턱에꽉꽉막혀오고답답해졌다.
운동장이빙빙~돌고사람들모습이흐릿했다.
누가다가와서나를안아서나가려고했다.
뿌리쳤다.
다리가풀리고일등으로뛰는형이내앞을질러갔다.
땅!!!~하는마지막바퀴를알리는총소리가먼데서들렸다.
내앞으로무수히많은형들이스쳐지나갔다.
그리고.그리고는.
그넓은운동장한가운데에아무도없이나혼자였다.
아무도없는텅빈트랙을어림잡아자꾸휘청이며꺽이는다리를
힘겹게추스리며한발..한.발..내디뎠다.
갑자기그많은사람들이모두조용한가운데문득서러웠다.
눈물이났다.
모르겠다.
슬퍼선지.
창피해선지.
나도모르겠다.
결승점이저만치흐릿하게보이는데.어??
왠결승테프가쳐져있는게희뿌연눈물사이로보였다.
누가나와선같이뛰면서내등을다독다독두드렸다.
얼핏보니담임선생님이었다.히!~
일등만끊을수있는흰테프가부드럽게허리에감겼다.
그리곤귓전에서둥둥북소리가힘차게났다.
동네풍물때쓰는북을가져온동네아저씨의힘찬북소리.
북소리.
나는쓰러졌다.
이마에맨댓님줄이흘러내렸고머릿속에서는온통망치질소리뿐.
박수소리가요란하게들리는것도같은데깊은잠에빠진듯이편안했다.
얼굴에찬물이끼쳐오는것을어렴풋이느꼈다.
아련히웅성웅성하는소리가들리며눈을떴다.
하늘은안보이고수많은얼굴들만가득했다.
큰누나가나를꼭껴안았다.
으..으..박하분냄새.
갑자기운동장에는와!~~하하!~~하는고함소리와
여자들이두손을얼굴에감싸쥐고뒷걸음질을하고들있었다.
호기심에가까스로일어나운동장을내다보니
일반부마라톤인어른들이뛰고있는데
그중한아저씨의광목빤쓰의가운데로히힛!~꼬추가덜렁거렸다.
그런데그아저씨는모르는지심각한얼굴로
열심히두바퀴하고반이나돌고나서야사람들이운동장에서끌어냈다.
온통배꼽들을잡고아수라장이됐다.
중턱말사는춘식이삼촌이라고했다.
그렇게운동회는끝나고시상식이있었다.
괜스레순대국을많이먹어서꼴찌가뭐람.힝!~
그런데이게왠일인가?
마이크에선분명3학년2반000어린이를몇차례부르는소리가났다.
어찌된일이지?.
교단앞엔상받을애들이줄서있었다.
절뚝이며뛰어가니교장선생님이두터운안경테를넘겨보시며허허!웃으셨다.
꼴찌가제일먼저상품을받다니..
그것도두툼한공책뭉치와연필곽과곡괭이한자루와양은솥단지.
히!~이종채선생님의멋진붓글씨자국이가시지않은커다란상장.
내이름자가채마르지않은글씨였다.
특별상높은교단위에서서
한참을교장선생님의손을잡고무슨칭찬인가를한참을들었다.
그가을운동회.
그오색깃발아래운동회둥둥북소리울려퍼지던운동장.
다시금그운동장으로달려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