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후원

가을깊어밤새낙엽이젖은날.

백마를타고한양천리먼길을나서다.

수표교건너고청계천을건너탑골에이르러서야하늘을올려다보다.

탑골누각에쌓인세월이바람에화르르,날리다.

종로통을지나인사동초입을들어서는데어디선가들려오는거문고소리.

때늦은점심을에우러골목쟁이를이곳저곳을거닐다가

5월의보리밭가를거닐듯한맛깔스러운한정식으로하다.

인사동에와서어찌동동주를마다하겠느뇨.

얼콰하니취기어린발길로휘적휘적걸어가며눈여겨바라보는문방사우.

금빛청아하게심금으로감켜드는놋전에방짜.

푸르른기상으로청자다기에지필묵.

사랑방마다에오색찬란한매듭.

청사초롱불밝힌초례청에각시신랑원앙침.

벌과나비들판을날아듬듬한선비자태.

고요한인사동의뒷골목으로들어경인찻집찾아가니

어느시절한양선비로왔다가기약없이가버린어느시절시골선비였던고.

묵묵히세월을지켜온돌탑으로나서서그시절을이야기하는구나.

어느여인이있어저같이고고한호접란이었던고.

열정으로붉었던한시절저리가고.

희뿌연회상으로마당가장독대로깔리는옛시절.

이제는가고없는덧없는시절.

덧없는세월이저리가는구나.

노송으로누운궁궐후원의한점바람이었구나.

뒷짐지고거닐다가서고또거닐다가서니어느선비집앞마당이라.

넌즈시사랑채에앉았다가.

후원으로넘어가는세월을무연히바라보다.

어느시대어느선비로연못가에앉았으련고.

고요히가을로깊어지는마음.

이러저러깊은생각으로거니는창덕궁후원.

얕으막한산길을오르다가만나는풍경.

이가을가도록이곳에서머물러書冊이나하며지내고져

서책이무료하면대나무낚시대두리우고그리또한시절.

발길닿는골마다에만산홍엽.

마음안으로지는붉은홍안.

단풍길걸어넘어당도한어느시절의선비자취.

그온기와자취손에닿을듯거니는뜨락.

어디로갔느뇨,낙엽만가득한세월.

어느아름다운시절이있어낮은한숨짓는고.

마당가운데서슬몃돌아서서올려다보는용마루.

세월깊은낡은담장아래어느누가서성이는고.

눈을감았다뜨니창호지저편마당그건너에붉은단풍.

기진했던아뜩한세월담장을넘어가고

서늘한대청마루거문고소리.

구석진후원낙엽길에서성이다가

고갯마루를올라서니다시또펼쳐지는단풍지는낙엽길.

하늘을올려다보면홍엽이눈을막아서고

정자에앉으니소슬바람서늘타.

낙엽묵직히발길아래깊어져

어느덧늦은저녁길.

세상사는일이낙엽이구나.

아,한세상살아온길이낙엽이었구나.

휘적휘적걸어가는저길을넘어

길다란담장에서끝이나는창덕궁후원길.

어스름녘인사동으로내려와주막을찾아들다.

청국장푸나물에동동주한사발.

어릿한발길을따라오는골목쟁이끄트머리를돌아나가

사주단자福주머니에비단옷.옛선비노닐던인사동이예였더냐.

한나절잘노닐다

나이제가련다.

동동주한사발에

어릿어릿길을짚어가노니

한양선비잘계시구려.

시골선비가련다.

어허!~

백마는가자우는데

멀고먼천리길에

날이저무는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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