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른봄

제일먼저샛노랗게

꽃을피운산수유입니다

계절이세번바뀌고는

저렇듯빈가지가휘도록

산수유열매가달려초겨울이되었습니다

덧창을열고커피한잔할라치면

운동장이빠글빠글산수유나무근처에

새소리가득하니새들의잔치가벌어지곤합니다

쉬는시간가만가만다가서나무아래서보니

새들입맛에는맞지가않는지

새소리는학교담장밖나무에서만

이리저리포롱포롱날아다니며빠글댑니다

2교시내내심심파적으로산수유열매를봉지한가득땄습니다

나무가지를이리저리잡아가며고개를젖혀

하나씩손아귀안에담는일이

결코녹록치가않았습니다

가파른경사지에발이미끄러지고

낙엽이발목까지차올라발을헛디뎌

휘청거리기를몇차례한끝에봉지한가득수확하니

손이시럽기까지하면서2교시가끝났습니다

퇴근하며현관에서개선장군전리품처럼안해에게내밀었더니

입이함박만하게벌어집니다

안해는점심약속이있어서내점심먹거리를챙겨놓고

엑기스내리는요상한장치에산수유를씻어넣고

베란다에홀로붉게꽃을피운

화분한번들여다보고는

외출을하였습니다

정오의이른퇴근으로

여유로움을만끽하다가

책을읽을까

음악을들을까

홀로행복한고민을잠시합니다

점심약속나갔던안해가급히들어왔습니다

나홀로심심해할까봐서둘렀지싶습니다

오봇하게짧은여행겸드라이브를나갈까

아님뒹굴방굴한가로움을즐길까

또다시행복한고민을둘이서잠깐하다가

날씨도꾸무레하니그냥집안에서뒹굴방굴하기로했습니다

막걸리와오미자차를거실에펼쳐놓으니

꾸무레한마음이일순환해지지뭡니까

오랜만에갖는초겨울한낮의호사입니다

안해에게거실가득쑥향기가득하게쑥뜸서비스를하고선에

막걸리한잔을합니다

낮술이라선지취기가확끼쳐옵니다

술에취하면이내무조건잠에취하는체질입니다

깊은잠에들었다가깨어일어

초겨울이지나가는창밖을무연히내다봅니다

어느덧계절은겨울분위기로바뀌었습니다

그하늘로눈구름을머금은먹장구름이흘러갑니다

세월이많이지나갔습니다

지나간세월속에

슬픔도묻어놓습니다

기쁨또한저리지나가고나면

남느니저하늘가를흐르는구름이었습니다

어느세월에서는힘에겨웠고

어느한세월에서는슬픔과기쁨이

흰구름과먹장구름이교차하듯비껴서흘러갔습니다

흰구름둥실거리는날도

천둥낙뢰비구름가득하던어두운날도

이렇게지나고야말았습니다

저구름흘러가는곳에

이제쯤에는덤덤하게세월을보내는마음을알아갑니다

희끗희끗귀밑머리에도세월이앉았습니다

이마에도골곡진세월의주름이패였습니다

어느덧산수유가다달여졌나봅니다

계절을넘기면서붉디붉었던열매가

그윽히갈색으로변하였습니다

생각컨데

푸르른가지에서

붉디붉었던젊은날도

저구름따라흘러흘러서

짙은갈색으로곰삭아내렸습니다

저구름흘러가는곳

내한생애도

이제다시저구름을따라흘러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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