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씨의 詩

(1)

밤이면
산이누웠다간
물자리에
노상가만치않는
마음을뉘어보지만
댓잎에베인
가슴의상처는
여전하더라
상주를꿰는
삼번국도변
초라한연못하나


산을담아
키우고있었다

(2)


떠나온자리가
아득할수록
배낭속것들을
한개한개
버리는짓이
똑이별연습같아
메이는목구멍에다
술불을지폈구나

-소주로간을본
맥주몇잔에
금새흐느적거리는
경상북도점촌
조국아
너도마침
취하고싶던차아니더냐

(3)


정리할건
인생은못되더라
촉촉히내리는
구름부스러기를
아무리
맞으며걸어도
가슴에수용되지않는
엑스터시를
어찌말로할까

정리할건
역사도아니더라
생긴대로
길에다놔두면
아무때
아무거시가지나가다가
그사금파리줏어
맞추어보고
다시뒤에올
아무거시보라고
생긴대로놓고가는윤회가
역사아니더냐
걸어보면아느니
내조만간
다시문경새재를넘을터

(4)


마음먹는대로
족적이변하는게
하도재미있어
속을채우니
발자국이쪼잔해지고
속을비우니
발자국이커지더라
하늘이뚫렸나
아침부터
동동주가쏟아진다

-나는
바람의아들
미륵의얼굴씻기러
월악으로드는길이다
시방..

1997년8월11일


고장안난명줄붙들고하루하루탈없이살아갈수있는것만으로도
난지금얼마나행복한지모르겠다.

개털이가얼마안남은것같다.피골이상접한육신에황달까지겹쳐서눈과전신이
샛노랗게타들어가면서놈은울고있었다.

갈퀴발같은놈의손을맞잡고이미초읽기에들어간죽음의시계소리를체감하면서
난놈과의좋왔던추억을일깨우려고안깐힘썼다.

"바빴어요,그동안……?"

놈의누님이현관문을열고나오는등뒤에서물었다.

내가옹졸했었다.죽음을목전에둔친구와감정놀음을하다니…….
회한의건상만하나더늘고말았다.

개똥밭에굴러도이승이낫다고는속단할수없지만자꾸가슴이메어온다.

수요일쯤입원시켜보려고세브란스를돌아나오는뜨거운포도위로

느닷없는소나기가쏟아지기시작했다.

그래,퍼부어라!옘병,차창유리가박살나도록냅다퍼부어라!

이제곧가을이올텐데……,그삽상한바람과정겨운술맛을두고

놈은지금어디로가려하는걸까?

갤럭시호텔가라오께에서

김정호의하얀나비를구성지게불러제낄때부터개털이의눈가에
죽음의그림자가드리워지기시작했음을나는예감했던것같다.

미치겠다.

줘패서라도술을못먹게했어야했는데…….
전기회사하는상근이에게개털이방에현광등좀갈아주라고했더니

흔쾌이그러마고해서기분조왔다.

1997년8월16일


형체를가진모든건상들이

제있을자리에건강하게있다는것또한얼마나기분좋은일인가.

"광수야,나금년안에죽으면안되는데……."
그래개털아,독하게마음먹어라!

고영식내과에서보름치약을지어다주면서

그보름치나마다먹고갔으면하고기원했다.

여자가치마를입어서는안될때-

미꾸라지잡으러갈때.

남자가치마를입어야할때-

밤따러갈때.

개털이가퍼석하고웃었다.

낙엽밟는소리로…….

1997년9월10일

09:45,

가좌동세브란스-오늘개털이퇴원을시켜야되는데돈준비가안됐단다.

아무개를원망하면서눈물글썽이던

누님의얼굴이지워지질않는다.

미움도원망도사랑도모두모두버리고

평화롭고고요한얼굴로떠나야하는데
주변에서조심성이없는것같아안타깝다.

송병렬이가얼마나모금했는지걱정된다.

죽음,사랑,우정을생각해본다…….

10:30,

누구도원망하지않고평화롭게떠나기로

내뜻에동조하면서개털이놈이눈물을글썽였다.

떡이먹고싶어서추석을집에서보내야한다면서…….

놈이원하는데로콩넣은찹쌀떡과송편을사다주었더니,

송편을달라고했다.

"어유,진짜맜있다……!"

먹고싶은게좀많을까…….


복수와복통과구토로식욕마져충족시킬수없는놈이가엾다.
돈때문에놈의퇴원을미뤄야하는나도가엾다.

1997년9월11일


지금쯤계양산너머가는저구름을잡아탔을까?

그래서딱정버레만도못한우리의척박한낯짝들을내려다보면서,
"매롱!"하고혀빼물며웃고있을까!

개털이가갔다.

오늘15시30분,개털이가떠났다.

녀석,

그래도가을은남겨두고떠난것이

그렇게고맙고대견할수가없다.

그마저홉싸안고떠났다면

남은나의한동안은또얼마나지리하고암담해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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