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언덕

벌거숭이민둥산에서
아래로치달으면서
밭고랑에쳐박히듯자빠져서하늘을
올려다보면
고얀히눈물이나곤하던저녁
집집마다의굴뚝에서
밥을짓는저녁연기가
마을전체를포근히감싸고
매큰한연기냄새가허기를재촉하던
어스름저녁
벌써너댓은이세상에없고
초가지붕도없고
신작로도없고
저녁연기도없고
껌정고무신도없고
흙담장아래사금파리도없고
구들장이끓던아랫목도없고
강남에서날아왔던제비도없고
사랑방에서오간을띠시던
할아부지도안계시고
인두로화롯불을다독이시던
할무니도안계시고
방죽거리부터대취하셔서
비틀걸음을하시며
아부지가들어서시면
희뽀얗던흙마당
다어디로갔나?
눈감으면지금도
초가지붕이보이는
저기저
그리운고향

대구에사는초동친구경환이가

저녁판에

전화가걸려왔습니다

해마다아부지제사에

올라오면서

제삿밥을먹으러넘어오라는

전갈을넣어

해마다나와진협이를부르곤합니다

어둔밤길을어슴어슴짚어서

고향마을로넘어가

칠흑같은어둠속에서

고향친구얼굴을더듬듯어루만져봅니다

악수하고또보고

끌어안고또악수하고

일년에딱한차례올라오는

초동친구가반가워

얼싸안고얼굴을봅니다

아..이게왠일입니까

얼굴이말이아닙니다

붓기에부석거리는얼굴에

처음어둠속에서는살이오른줄로만알았습니다

얼굴좋아졌다고너스레를떨었는데

그게아니었습니다

젊은날

중동근로자로나가서

돈을조금더벌어보고자

기한연장에또연장을하며일을하다가

허리를다쳐굴신도못하던세월이

친구의반평생이었습니다

마누라를따라처가가있는

낯선타관땅대구로내려가살아간지

어언20년이다돼갑니다

술한잔들어가면

충청도사투리보다경상도사투리가

반넘게섞여서지불거리는데

안쓰러운마음이술잔가득합니다

저녁이른시간에

제삿상에향을사르고

친구아부지께예를공손히하여

절을올리고는

뒷방으로건너와주안상을마주합니다

고향동네에서

함께자란우리셋은

뒷방에앉아주안상을마주하고

일년만의회포를풀곤하는데

대구에서부터회를두접시가득떠서가져온

푸짐한주안상에그만

저녁으로김치공장트럭으로야간배송

근무가야하는진협이가그만자리를깔고앉아

술이얼콰해졌습니다

두친구가고얀히눈물바람이됩니다

한친구는

병마와싸우느라한평생이다허비된

맥없는세월에한이맺혀

눈물바람

한친구는얼마전

어머니를여의고는술만취하면

불효만쌓인눈물바람입니다

왠방바닥은쩔쩔끓게불을들이밀어

그래잖아도술이올라눈물짓는

두친구의이마빡에

힘줄더욱불뚝솟게합니다

오십중반을넘어가는나이에

누군들곡절을아니겪고넘어온세월이있답디까

생각사록

참으로허망한세월이아닐수가없습니다

셋이앉아술마시는뒷방에는

안식구도곁에없고

자식들도없어꺼리낌이없습니다

친구아부지제삿날

뒷방에서

주안상마주하고앉은풍경

네설음

내설음에

그만막걸리에대취하였습니다

오랜만에참편안한마음으로

고향마을뒷방에서

둥근주안상을놓고둘러앉아

한숨섞인회한으로

막걸리목넘이하는소리가

논배미도랑물흐르는소리가납니다

어슴프레취한눈으로

방안을둘러보니

그렇게편안할수가없습니다

두친구각자

올가을에딸들을여윈다고날을잡았답니다

사돈될양반들과상견례한이야기가

또길어집니다

초동친구들의불콰한얼굴

이마에힘줄더욱불거지고

갑자기말들이없어졌습니다

갑자기병원용어들이나열됩니다

협심증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불면증

간경화

두친구가

이제껏혼자숨기듯지고왔던삶의멍에를

맘껏내려서풀어놓습니다

친구들이

지불거리는소리를

아뜩히듣다가퍼뜩정신을차려봅니다

아..이뭔소리입니까

야속히세월이흘러가는

소리가아닙니까

또막걸리목넘이소리

가뭄에물꼬대듯

또랑물내려가는소리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