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1)

白石,내가슴속에지워지지않는이름

―子夜여사의회고-

    (1)

    나는시인백석과1936년가을함흥에서만났다

그의나이26세

내가스물둘이었다

어느우연한자리였었는데

그는첫대면인나를대뜸자기옆에와서앉으라고했다

그리곤자기의술잔을꼭나에게건네었다

속으로나는잔뜩겁에질려있었지만

그의행동거지에는조금의흐트러짐도없었다

자리가파하고헤어질무렵

그는"오늘부터당신은이제내마누라요"하고단정적으로말했다

그말을듣는순간나의의식은거의아득해지면서바닥모를심연속으로빠져들어가는듯했다

그것이내가슴속에서아직도지워지지않고있는애틋한슬픔의시작이었다

그날이후우리는급속히가까워졌다

함흥교사시절그는하숙을했고

나도하숙생활을했다

영생학교는반룡산밑에있었고

그의하숙은학교에서한오리쯤떨어진함흥근교의중리(中里)라는곳에있었다

그때나는함흥의히라다백화점에볼일이있어서갔었던것이다

그의첫인상은외국사람같이키가크고허여멀쑥한느낌이었는데

야릇하게사람을끄는매력이있었다

그는회색계통의수수하고품이넉넉한양복을입었는데

그후에도이런색깔의옷을즐겨입었다

지금생각해보면불과스물댓밖에안된청년이

어찌그리도거침없이’마누라’란말을썼었는지..

그가주로나의하숙으로왔었는데때때로그는만주가서살자는말을불쑥했다

그럴때마다그는내손목을들여다보며장난스럽게

"어이구,요런손목을하고그바람찬만주땅을어찌가서살겠나."했는데

나는그말이뜨끔하긴했지만별로대수롭지않게여겼다

그는늦은밤이면반드시내하숙까지바래다주었다

그때하숙집부근길목에사진관이있었는데

그곳진열대에는젊고예쁜여자의사진이걸려있었다

그는그앞에만오면일부러고개를돌리고지나갔다

마치’당신밖의아무여자도나는싫소’라는뜻을나에게보여주려는듯이..

어느날내가서점에들렀다가『당시(唐詩)선집』하나를사왔는데

백석은그책을한참읽고나더니문득나에게’子夜(자야)’란호를지어주었다

나는그날이후로백석의’자야’가되었고

이호는아마지금도세상에서우리둘만이알고있는이름일것이다

‘자야’란무론당나라시인이백의「자야오가(子夜吳歌)」란시제목에서따온것이다

이시는중국동진의한여인’자야’라는이가

변경으로수자리하러간남편과의생이별을서러워하는민요풍의노래이다

"長安一片月/萬戶 衣聲/秋風吹不盡/總是玉關情/何日平胡虜/良人罷遠征"

나의이깊은외로움도그때백석이이’자야’란호를나에게붙여주었을때부터

이미결정되고마련된운명이었던것일까

아니면그는아직도그의원정(遠征)이끝나지않아서돌아오지못하고있는것일까

1937년늦가을이었다

그는어느날《여성》잡지한권을들고싱글싱글웃으며찾아왔다

그는책을뒤적뒤적하더니한곳을펼쳐코밑에쑥들이밀었다

보니그의이름으로발표된「바다」라는제목의시였다

작품의아래쪽에는한남자가바지주머니에두손을넣고

빈백사장에서우두커니바다를향해서있는그림이있었던것같다

그시를읽다가문득

"지중지중물가를거닐면

당신이이야기를하는것만같구려

당신이이야기를귾는것만같구려"

라는대목이눈에띄었다

그래서나는대뜸말꼬투리를잡아"내가끊긴무얼끊어요?"했더니그는

"밤낮날더러장가들라고했잖았소!"

"당신머리속에서는지금도나를떠나라하고있지?"

"왜내말이잘못되었소?"라며

연거푸정색을하고빠른말로말했다

사실나로서도그런말하는것이무척싫었지만

나는그에게장가들기를권하곤했다

그럴적마다그는묵묵히고개를숙이고듣고만있었다

백석의어머니는그때쉰이넘어서손자없는것을늘허전하게여겼다고한다

겨울방학이되어백석은서울그의부모슬하에가서여러날있다오게되었다

불과며칠을서로떨어져있을뿐이었지만

그는하루가멀다하고함흥으로줄곧편지를써보내었다

매일일정한시간이되면어김없이신문이배달되어오는것처럼

편지글은다정다감한문체였으며

‘오늘은누굴만나고……무엇을하고……어떻게지냈소……’라는식의

하루의일과를모두깨알같이써서보내오는것이었다

그런데하루는그편지가뚝끊어지더니

열흘정도소식이없었다

몹시궁금히여기고있던어느날그가에고도없이불쑥나타났다

부모가하도맞선을보라해서강잉히맞선을보았다는것과

그게가책이되어편지를못내었노라는내력을말했다

그는평소부모의말씀을퍽두렵게여기는듯했다

나와함께살면서도부모가새악시선을보라하면

그는그것을도저히거역할수없는사람이었다

그러나나는그의이런성품을알면서도자꾸만울화가치밀었다

어찌이럴수가있는가

말할수없이분하고서운했다

나는속으로

‘흥,그대가총각이라지……

야,정말어마어마하구나……

그래,내가피해줄께……’라는생각을하면서도

허전한마음이못내사라지지않았다

뒤에알고보니그는편지가끊어진그열흘동안맞선만본게아니라

초례(醮禮)까지치렀던모양이다

그리고그는장가든지사흘만에집을나와함흥의나에게로달려왔던것이다

각시의얼굴을한번도쳐다보지않았다고한다

하지만나는그의행위가너무도야속스러운생각이들어

그가학교에출근하는걸보고

그길로이불이랑짐보따리를꾸려서

낮11시기차를타고서울로아주내려와버렸다

1937년이저물어가던무렵이었다

그몇달뒤인

이듬해봄

어느주말오후였을것이다

그때나는청진동에서11간짜리아주작은집을구해살고있었는데

사동(使動)이웬쪽지를들고찾아왔다

펴보니백석이보낸메모였다

"몇달만에이렇게찾아온사람을허물하지마시고나있는데로속히와주시오."

사동에게물어보니

그는지금우편국앞제일은행부근의한오뎅집에있다고했다

내가슴은사뭇그리움으로두근거려왔다

부리나케그의앞에가서말없이고개를숙이고있노라니

그는다시금지난해의사건을진심으로사과하는것이었다

나는그가나를찾아준것만으로도눈물이날만큼반갑고기뻤지만

그의이말을듣고나서는그가무작정좋아지고

또한우쭐거려오는기분을감출수가없었다

이렇게해서우리는다시만났다

그동안쌓인모든含怨(함원)은눈녹듯이사라졌다

이튿날그는출근하기위해밤차로함흥으로떠났고

나는서울에남았다

우리는서로떨어져있었지만절대로갈라설수없는

하나임을새삼느꼈다

그해초여름

서울에서는전선(全鮮)고교대항축구대회가열렸는데

백석은함흥영생고보축구부학생들을인솔하고서울에나타났다

약한주일가량의출장인것같았는데

그는오던첫날만학생들을연습장에데려다주고는

줄곧나의청진동집에서기거하다시피했다

내가"학교아이들은안돌보고왜자꾸여기만계셔요?"라고재촉도했지만

그는들은척도하지않았다

인솔교사를잃어버린학생들은모처럼상경한기분에들떠

떼를지어유흥장으로몰려다녔다

이들중몇몇이서울의학생지도하동단속교사에적발되었고

교사는학생들을힐문하기시작했다

"어느학교학생이야?"

"함흥영생고보입니다."

"서울은무슨일로왔지?"

"축구시합에출전하러왔습니다"

"인솔교사는어디갔어?"

"몰라요,저희들두오던날운동장에서한번뵌후론다시못만난걸요."

일이이렇게되자

함흥영생학교는온통벌집쑤신듯하였고

특히고참교사들의노여움은대단하였다

당시영생학원이사장으로있던이모씨는

평소학교일에매우열성적이었던백석을퍽좋게생각하고있었지만

이번일은다른교사들보기에도그냥넘어갈순없는일이라해서

같은영생학원계열의여학교로전보발령을시켰다

그난감한경황을무릅쓰고

백석은다시함흥으로돌아가영생여고보에서한학기인가를근무했다

방학때다시서울에왔었는데

그때이미함흥으로돌아갈생각을안했던것같다

그는사표를써서우편으로부쳤다

그런며칠뒤에조선일보출판부옛직장에서나와달라는연락이왔고

이로부터백석의서울생활은다시시작되었다

함흥영생학교시절

아동문학가강소천과목사김관석이백석에게영어를배웠다

지난날함흥에서거주한적이있는시인이기형은

그무렵백석이’함흥최고의멋쟁이’라는소문을들었다

백석은한평범한교사에불과했지만

이미시집『사슴』을내어문학적명성이높았던터라

그는함흥의문학지망생들의시뿐만아니라

습작소설까지도자상하고꼼꼼하게지도해주었다고한다

-[창작과비평]1988年복간호-

이동순편『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1987)이발간된직후1930년대의후반3년간을백석과함께지낸바있는자야여사가출판사측에연락을해왔다.이글은이동순시인이자야여사를세차례방문하고나서그의구술을토대로하여쓴백석에관한회고담이다.백석의꾸밈없는인간적품성과자상하고섬세한마음씨,30년대문우들과의교우기등과함께반백년을넘어서까지이어지고있는자야여사의백석에대한끊이지않는그리움이담긴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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