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2)
BY glassy777 ON 3. 13, 2012
―子夜여사의회고-
(2)
백석과나는
앞서말한나의청진동집에서살림을차렸다
함흥시절은그가교사의신분으로남의이목도있고했기에
그가나의하숙으로와서함께지내다돌아가는것이고작이었다
그러나이젠아무데도구애받지않아서좋았다
마당한뼘없는작은한옥이었지만안방건넌방
그리고쪽마루에딸린작은찬방(饌房)이하나있어서
우리들에겐그지없이단란한보금자리였다
그의시「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나오는
"아내와같이살던집"은바로이청진동집을말한것이다
몇해전에나는친구와이집을일부러찾아가보았는데
뜻밖에도그곳은꼬리곰탕을전문으로한다는식당으로바뀌어져있었다
나는식당안방에들어가음식을시켜놓고
옛청진동시절의추억에젖었던적이있다
그시절우리둘은참으로행복하였다
워낙서로만족하였고
아무런빈틈이없었으며
오직서로에게만관심을가졌기때문에
그밖의아무런것에도무심해질수밖에없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는늘나의기분을즐겁게해주려고세심한배려를했던것같다
그는나의어떤일에도절대간섭을하지않았으며
불편도주지않았다
말그대로단정한젠틀맨이었고
매사에열정적이었다
비록밖에서화난일이있었어도
혼자가만히참고있는경우가많았기때문에
나는그가언제화를내고있었는지조차모를때가많았다
그만큼그는자신의감정을밖으로내색하지않았다
말수도적었고
어떤경우에도남의결점을화제로떠올리는법이없었다
이런그의성격을까다로운편이라고할까
물한방울종이한장조차누구에세신세를끼치지않으려고했으며
또한비굴한모습을보이는걸가장싫어했다
그때청진동집에는늘와서부엌일을보고
잔심부름도해주는찬모가있었는데
나는그가찬모에게무엇을시키는모습을한번도본일이없다
그러나그처럼말수가적던백석도
일단시에관한화제로옮겨지면갑자기눈빛을반짝거리며많은이야기를했다
그는요절한일본작가아꾸다까와(芥川龍之介)의이야기를자주들려주었고
또다른일본문인들의이야기도재미있게했던것같다
내가문학을모르니다만웃기만하고들을뿐
절대아는척하지않았다
(부끄러운말이지만나는그무렵《삼천리(三千里)》지에
두어편의수필을필명으로발표한적이있다
종로네거리한청빌딩부근에서과일파는상인들의밤풍경을쓴것인데
나의글이실린책이나오던그날은하루종일함박눈이펑펑왔다)
일본의문인들을화제로떠올리긴했지만
그는일본말쓰는것을몹시싫어했다
일찍이일본유학도다녀왔으니일본말도잘했을것이나
그는일본말을써야할때
거기에바꿔쓸수있는우리말을애써생각하는것같았다
보통담화때는주로표준말을썻지만
그의억양은짙은평안도말씨였다
무슨일로기분이상했거나친구들과담소를나눌때
그는야릇한고향사투리를일부러강하게쓰는습관이있었다
한예를들면
천정을’턴정’정거장을’덩거장’,정주를’덩주’,질겁을’디겁’,아랫목을구태여’아르궅’따위로
쓰는식이었다
그의식사공궤(供饋)는매우수월한편이었다
아무것이나가리지않고잘들었지만
육류보다는나물반찬을비교적더좋아했다
한번은함께시내나들이갔다가돌아오는길에푸줏간앞을지나는데
그는갑자기얼굴을찡그리며외면하는것이었다
그까닭을물었더니
"시뻘건고깃덩어리를어떻게똑바로쳐다볼수있어?"하고말했다
정말그는푸줏간을제일질색했다
함께살면서보니그에겐이처럼드러나보이는이상한습관이여럿있었다
이를테면집안방의창문을여닫을때도
그는잠금쇠만지기를피하여손이잘닿지않는창문틀의위쪽이나
아래쪽을겨우밀어서여닫곤했다
한번은함께전차를타고어디를가던길이었다
전차가길모퉁이를돌때갑자기몸이한쪽으로기우뚱쏠렸다
그때까지머리위의손잡이를불결하다며
아무것도잡지않고그냥서있던그는손가락을
꼿꼿이세워창유리에갖다대면서몸의중심을유지했다
또오랜만에놀러온친구와악수하고난뒤에는
곧그가눈치채지않게수도간으로나와꼭비누로손을씻곤했다
보다못한내가몇차례그러지말라고하면서
수건을달랄때일부러안주곤했더니
그뒤그습관만큼은조금고쳐진것같았다
그는각별히즐기는취미나오락은없었다
술을좋아하기는했으나경음가(鯨飮家)는아니었고오히려애주형에가까웠다
책으로는모리악의『예수전』,중국작가변윤(邊潤)의『요불이전(了不以前)』을즐겨보았으며
심심할때면잡지《문에춘추》를보거나일본시집을뒤적거릴정도였다
그의목소리는참다정스럽고부드러웠으며
청으로서도괜찮은편이었으나
내가아는한그가노래하는모습을나는한번도본적이없다
집에빅터상표의고급유성기가하나있었지만
한번도거기에손대는걸못보았고
가요·창극같은데도무관심했다
그무렵《조광》지가요청해온설문란에다
그가자신의취미를’西道唱(서도창)’과’타이프라이팅’이라쓴것을보았는데
이’서도창’이직접부르는걸말하는것인지
소리꾼의노래를듣는걸말한것인지분명하지않다
그는다만말없이묵묵한표정으로나를바라보았고
그러다가는잡지보고
시집보고……하였을뿐이다
그의본명이백기행(白夔行)으로알려져있지만
그무렵청진동으로그에게부쳐져오던편지의겉봉에는
‘백기연(白基衍)’으로씌어있었던기억이떠오른다
나는그가몹시기뻐하던모습을꼭한번본적이있다
언젠가내가시내본정(명동의일제때이름)부근엘나갔다가
상점의쇼윈도에서넥타이하나를보았다
그것은옅은검은색바탕에다홍빛빗금줄무늬가잔잔하게박힌것이었다
얼핏그것이백석에게매우잘어울릴것이라는생각이들어
무심코사와서드렸더니그의얼굴표정에는기뻐하는빛이역력했다
이튿날그는내가사온넥타이를매고출근했는데
저녁때와서는
"여보,오늘××를만났는데이넥타이참좋데"라고했다
그는그뒤여러날동안줄곧그넥타이만매었고
퇴근후에는예의그말을꼭되풀이하는것이었다
나는속으로’어제그소리오늘또하네.어쩌면그게그렇게도좋을까’했지만
내심그말이듣기에즐거웠다
이넥타이이야기는「내가이렇게외면하고」라는시에서
"언제나꼭같은넥타이를매고고흔사람을사랑"한다는말로
그대로옮겨놓고있다
-[창작과비평]1988年복간호-
이동순편『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1987)이발간된직후1930년대의후반3년간을백석과함께지낸바있는자야여사가출판사측에연락을해왔다.이글은이동순시인이자야여사를세차례방문하고나서그의구술을토대로하여쓴백석에관한회고담이다.백석의꾸밈없는인간적품성과자상하고섬세한마음씨,30년대문우들과의교우기등과함께반백년을넘어서까지이어지고있는자야여사의백석에대한끊이지않는그리움이담긴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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