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3)
BY glassy777 ON 3. 14, 2012
―子夜여사의회고-
(3)
백석은사람을만나그가먼저주도해서교제를이끌어간다거나
누구를새로사귈수없는사람이었다
인간백석이나그의시에홀딱반해버린사람이
아주그에게제스스로엎어져오기전에는
도무지사교의능력이라곤없는사람이다
얼른보기에무심한편이었다고나할까
그래서그는그누구에게도특별한친밀감을표시하는법이없었다
그러한중에서도함대훈,허준,정근양,그리고이름이생각나지않는
조○○는비교적가까이지내던친구였다
도쿄외국어학교노어과를나온일보(一步)함대훈은
황해도풍천출생의노문학자로서소설도몇편썼다
그는조선일보출판부주임으로있었으며
편집국장을지낸함상훈과는형제지간이었는데
괄괄한성격에다대단한호주(豪酒)였다
당시그는청운동에살았는데
우리의청진동집에가장자주놀러왔던백석의친구였다
나중에는그가아무때건불쏙찾아오는것이너무싫어서
내가백석에게"함대훈씨가싫어요"라고말하면
"그는당신이좋다고하던걸"하면서
꼭친구와나를함께두둔하곤했다
그래도줄곧내가못마땅한얼굴로
"함씨가괜히그러는게아니에요?"하면
"아냐,그는정말당신이좋대"라고정색을하며말했다
함대훈은그때무슨잡지를만들던
최남주라는이의여동생최옥희와열애에빠져있었다
평안도용천출신의소설가허준은1935년10월조선일보에
시「모체(母體)」를발표하면서백석과비슷한시기에문단에나왔는데
이듬해《조광》지에「탁류」란단편소설을쓴후아주소설쪽으로돌아섰다
백석과는같은직장에있으면서
서로의심지(心志)가꽤잘들어맞았던것같다
그는낙원동에살면서자주왔었는데
매우큰체격으로다정다감한성격이었으며술을좋아했다
백석이허씨의이름을제목으로삼은시까지쓴걸보면
그와남다른우정이있었는지도모른다
의사로서문필생활을겸하던정근양
그는앞서도말한바처럼백석과조선일보장학생동기였고
청진동집에도수시로드나들었는데
나중에백석이만주로떠났을때
정도서울을떠나북지(北支)산서성임분현이라는곳에가서병원을한다는소문을들었다
또한사람의친구는
서울의어느중학영어선생을하던조○○였다
그는우리집에서놀다밤이늦어돌아갈때면
그때마다우리를앞에세워놓고
"그대들둘은어찌그리도잘어울리는한쌍인고……"하면서부러운듯말했다
사실백석과나는서로다른기질때문에오히려잘맞았는지모른다
한쪽이뾰족한성품이면다른한쪽은좀둥글둥글한것이인간관계의조화가아닐까
그밖에백석과평소가까이지냈던이는문학평론가백철이있다
그는백석보다네살위였지만동향선배로서친밀하게지냈고
함흥영생학원에도한때같이있었다
1935년시집『사슴』이나온직후
서울태서관에서가진출판기념회발기인명단의이름들은
몇몇을빼곤대부분백석과조선일보에함께몸을담고있던문인화가들이었다
또그들은대개백석의시를남달리좋아했던사람들이다
안석영(安夕影)은서울토박이로본명이석주(碩柱)였다
일찍이1921년나도향(羅稻香)의동아일보연재소설『환희』의삽화를그렸던그는
한국삽화계의선구자이다
30년대중반안씨는조선일보학예부장을지냈는데
워낙잘생긴얼굴에다재다능하여
나중에는언론계를떠나전적으로영화에만몰두하였다
백석보다는11년위였는데
서로각별히따르고위하였다
김규택(金圭澤)은웅초(熊超)란호를가졌던분으로
일본가와바타미술학교를나와역시조선일보에서삽화를그리던화가였다
일본호세이대학불문과를나온여천(黎泉)이원조(李源朝)는
경북안동사람으로시인이육사(李陸史)의아우였는데
그때조선일보기자로있었다
언제나한복차림이던그는늘자신이양반고장사람임을자랑삼아말했고
그것을날마다들어온사람들은
"여보,그양반타령좀작작허우"하며싫은소리를하였다
깔깔한샌님같던그도일단술이취하면
주사(酒邪)가대단해서모두들슬금슬금뺑소니치는모습이었다
함경도출신의시인편석천(片石村)김기림은백석보다4년위였는데
그도일찍부터조선일보기자로있었다
『사슴』시집이출간되자마자즉시서평을써줄정도로그는백석의시를좋아했다
정현웅은1931년선전(鮮展)에서작품「여인상」이특선으로뽑힌서양화가로서
당시백석과함께《여성》지의일을보고있었다
그는어느잡지의삽화로백석의프로필을그리면서
"미스터백석은바로내오른쪽옆에서
심각한표정으로사진을오리기도하고와리스케도하고있다
그래서나는밤낮미스터백석의심각한얼굴만보게된다
미스터백석은서반아사람도같고필리핀사람도같다
미스터백석에게서반아투우사의옷을입히면꼭어울릴것이라고생각한다."라는삽화의말을썼다
한편백석이평소에문학적재능을자주칭찬하던사람이있었는데
그는아동문학가강소천이다
용률(龍律)로함남고원태생인그는백석보다불과3년밑이었으나
만학으로서백석에게직접문학을배운제자였다
1939년서울명동입구미도파건너편에’제일다방’이라고있었다
이다방은당시경성일보학예부에있던일본인기자기쿠지(菊池)아내가경영하던곳으로
이른바재경(在京)문인예술가들의아지트였다
언제어느때건가보면낯익은문인몇몇은꼭눈에띄었다
공작새의꼬리깃으로장식한세련된실내장식에다
이름있는유화도여러점운치있게걸려있는꽤분위기있는다방이었다
한번은그곳으로오라는전갈이와서가보니
백석은함대훈,백철등과함께담소를나누고있었다
그렇지않아도어정쩡하게합석이되었는데자리에앉자마자양인은
번갈아가며나의얼굴이예쁘다드니어떻다느니라는말을자꾸거듭하여
면전에서몹시난처했던기억이난다
그때백석은혼자웃고만있었다.
나중에백석이만주로떠난후에길에서허준,정근양을만난적이있는데그들도
"김(金)은어째갈수록예뻐져?"
"백석이장가를두번씩이나들고도곧장도망나온까닭을인제야알겠구먼."이라고
큰소리로떠들어그때도부끄러움에얼굴이화끈달아오른적이있다
1939년유월어느아침이었다고생각된다
백석은그날충청도진천으로한주일가량출장을다녀오겠노라고했다
나는그순간여자의육감으로그가먼젓번처럼필시장가들러가는것이라고짐작했다
그는약속한한주일이지나고보름이넘어도돌아오지않았다
그러나나는그가이번에도좀늦어지긴하겠지만틀림없이돌아오리라고확신했다
왜냐하면자신의마음에달갑지않은것에대한그의차디찬성질
그리고나를향한열정을무엇보다도잘알고있었으니까
그때청진동집에서조선일보까지는불과얼마되지않는거리였지만
나는찾아가기는커녕전화한번조차걸지않았다
점차매섭게타오르는내가슴속의독(毒)과
또한나의자존심이그것을허락하지않았던것이다
이런나의성격을백석은어느정도알고있었고
또몹시초조하게까지생각했을것이다
나는그가없는빈방에혼자남아서무척공허한심정이들었고
내가슴속의공허감은차츰매몰찬복수심으로활활불타오르기시작했다
그러나그매몰찬복수라는게도대체어떤모습인가
기껏해야연전에내가몰래함흥을빠져나오던것처럼
나는그에게서한동안멀리떠나있고자했던것뿐이다
마음속에는여전히그를사랑하는마음이가득한채로..
웬만한살림을대충챙겨서나는명륜동언덕으로숨어버렸다
지금의성대뒤쪽이었는데
1930녀대후반그곳부근의앵두나무,능금나무,배나무따위를심어놓은과수원이많았고
주택들도드문드문서있는변두리에불과했다
지난달부통령을지냈던장면(張勉)씨의집이바로길건너편에있었다
어느석양무렵이었는데
집뒤로난골목길에서누가"자야"하고부르는소리가들렸다
어찌된일일까?
그는내가잠적한이곳을모를텐데
(그가어떻게나의거처를찾아내었는지나는지금도그것을불가사의로생각한다.)
‘자야’를부를수있는사람은백석뿐일텐데
부르는소리는두번세번거듭들렸다
나는눈을감고잠시망설이다가
‘에라,어찌되었건나가놓고보자’하고중얼거리며황급히나갔더니
그가석양을등지고퀭한얼굴로서있는것이었다
이렇게해서우리는두달만에다시만났다
나는그때까지도무척독이나있었지만
막상얼굴을대하는순간다시금만나게된것만으로도좋아서
마음이실이풀리듯스르르풀려버렸다
그러나나는백석의부모가못내원망스러워졌고
또예의그독한마음은불쑥불쑥치밀었다
그는본시마음이여린사람이었다
이번에도그는족두리를풀어내린지며칠되지도않은새색시를내버려두고집을나온것이다
내가알기로백석이사모관대하고장가를든것은두번이다
그러나그는그때마다부모가정해준배필을마다하고나에게로되돌아왔다
1939년동지달이었을것이다
나는중국의북경,소주(蘇州),항주(杭州)상해등지를거쳐한달만에야돌아왔다
떠날때나의행선을백석에게알리지않았다
다녀와서도나는그에게여행이야기를한마디도꺼내지않았고
그또한묻지않았다
하지만그는내가알리지도않고중국을다녀온처사에대해상당히화가나있는것같았다
그래도나는여전히앵돌아진속으로
‘당신께선지금저때문에화나시게해서송구스럽지만
당신도제가겪은고통을한번쯤겪어보셔야해요’라고생각했다
우리는날이갈수록그저묵묵해지기만했고
서로의일과를화제로떠올리지도않았으며
이런우리들사이는심상찮은긴장으로팽팽해졌다
하루는그가보낸메신저가왔다
왕십리역대합실구내다방으로나오라는것이다
그때의왕십리란보잘것없는초가와들판뿐인아주시골이었는데
동대문에서전차를타고종점인왕십리까지가서내리면
사방에서거름썩는냄새가물씬풍겨왔다
사람들의눈을피하려고그변두리먼곳까지나오라했던것같다
내가자리에앉자마자그는대뜸자기와함께만주에가지않겠느냐고했다
사실이러한권유는함흥시절부터심심찮게들어오던터라조금도놀라운것은아니었다
그러나그날따라그의표정은너무도심각한듯여겨져서
나는적지않이당황하였다
나는그때확실한대답을하지않았다
그런일이있은지얼마후에
그는만주신경(新京)으로훌쩍떠나버렸다
나에게단한마디의그어떤기별도남겨두지않은채..
-[창작과비평]1988年복간호-
이동순편『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1987)이발간된직후1930년대의후반3년간을백석과함께지낸바있는자야여사가출판사측에연락을해왔다.이글은이동순시인이자야여사를세차례방문하고나서그의구술을토대로하여쓴백석에관한회고담이다.백석의꾸밈없는인간적품성과자상하고섬세한마음씨,30년대문우들과의교우기등과함께반백년을넘어서까지이어지고있는자야여사의백석에대한끊이지않는그리움이담긴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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