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4)
BY glassy777 ON 3. 15, 2012
―子夜여사의회고-
(4)
돌이켜보면그의만주행은함흥에서부터계획해오던것이었고
또그가재차서울로와서옛직장을다시나가고
한해를머무른것도결국은나때문에
내가마음에걸려서였던것같다
나아니었으면
그는진작함흥에서만주로곧장떠나갔으리라
그가만주땅으로떠날수밖에없었던또다른깊은속뜻을
내얕은여자의소견으로어찌감히짐작인들했으랴만
그는내가자기권유대로쉽게만주로따라오리라고생각했던것같다
시「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에서이런대목을본다
눈은푹푹나리고
나는나타샤를생각하고
나타샤가아니올리없다
언제벌써내속에고조곤히와이야기한다
산골로가는것은세상한테지는것이아니다
세상같은건더러워버리는것이다
만약에내가그때만주로함께갔더라면어찌되었을까
아마도진작그곳생활이지겨워진나의성화에못이겨
우리는다시서울로돌아와함께살았을것이다
그를만주에서온갖고생을하게하고
생활고에시달리게한것도나였고
국토가둘로쪼개어져그를다시는북에서서울로돌아올수없게만든것도
모두내가미욱했던탓이다
만주신경시절백석과같은집에서살았다는
작가송지영(宋志英)씨의술회로는
백석이그때만큼은고향의부모에게매달약간의송금을할수있을정도로
수입이괜찮았다고한다
그무렵항상검정두루마기를입고다녔는데
송씨가"그옷,서울의김이보냈구려"하고농을걸면
백석은갑자기쓸쓸한표정이되었다고한다
한편그이후백석은실직상태가되어서
만주의이곳저곳을전전하며몹시도고달픈생활을하게되었던가보다
그가이렇게도모진고생을했었다는생각을하면
온통가슴이미어지는듯하다
그시절만주의쓸쓸한하숙방에서쓴것으로보이는
그의시「흰바람벽이있어」를통해
나는필시나의모습으로짐작되는부분을발견하고소스라치게놀란다
이때가해방직전이었고
이루말할수없는생활의외로움과고달픔은
그의마지막시「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낱낱이그렁그렁박혀있다
깊은밤에그의전집을끌어안고이시를혼자목이메어읽어가노라면
주체할길없이솟구쳐오는뜨거운눈물을나는참지못한다
이시에서그의맑고고결한정신은이미세속을훨씬떠나있는듯하다
"낮이나밤이나나는나혼자도너무많은것같이생각하며……"
"내뜻이며힘으로나를이끌어가는것이힘든일인것을생각하고……"라는
이대목에이르러서는
흡사그가눈앞에당장되살아온듯한환상에사로잡힌다
이말속에는평소의그의성품
현실에임하던그의모습같은것이그대로생생하게스며있다
그와헤어지고어느덧50년세월이흘러갔다
시간이란게도무지실감이나지않는다
내가이날이때까지온갖곡절을겪으며살아온것도
헤아려보면모두가백석에대한연민때문이었고
또그를향한반발심이물끓듯끓어넘친탓이아닌가한다
그때그를따라만주로가지않았던실책으로
내가그를비운(悲運)에빠뜨렸고
나또한서럽게살아왔다
어찌모든것을이대로마감해버릴수있단말인가
나는지금도젊은그시절의백석을자주꿈에서본다
그는나의방문을열고나가면서아주천연덕스럽게
"마누라!나나잠깐나갔다오리다"하고말한다
한참뒤에그는다시들어오면서
"여보!나다녀왔소!"라고말한다
어떻게이럴수가있는가
세월을반백년이나흘러보내었는데도
내나이어언일흔셋
홍안은사라지고머리는파뿌리가되었지만
지난날백석과함께살던그시절의추억은
아직도내생애의전부라해도과언이아니다
그만큼우리들의마음은추호도이해로얽혀있지않았고
오직순수그것이었다
그와헤어진뒤의텅빈세월을살아오면서나는차츰말이어눌해지고
내가슴속의찰랑찰랑한그리움들은남이아무리쏟으려해도결코쏟기지않던
요지부동의물병과같았다
그러나뜻밖에도그의시전집이발간되었다는소식은
지금껏물병에선수십년동안고였던서러움이저절로콸콸쏟아져나온다
사실10여년전부터나는
그의전집을내손으로엮어보려고틈날때마다
흑석동살던백철씨와의논해왔었다
그무렵
백철은어느신문칼럼에서시인백석을일컬어
"한국시사에서소월다음가는귀재"라고말했었다
하지만그는그후병을얻어나의포부를도와주지도못하게타계해버렸다
이미그의전집이세상에나왔으니무슨여한이있겠는가
-[창작과비평]1988年복간호-
이동순편『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1987)이발간된직후1930년대의후반3년간을백석과함께지낸바있는자야여사가출판사측에연락을해왔다.이글은이동순시인이자야여사를세차례방문하고나서그의구술을토대로하여쓴백석에관한회고담이다.백석의꾸밈없는인간적품성과자상하고섬세한마음씨,30년대문우들과의교우기등과함께반백년을넘어서까지이어지고있는자야여사의백석에대한끊이지않는그리움이담긴글이다.
Share the post "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