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끝)

그녀는

1916년병진생으로서울에서태어났다

그녀의나이열일곱에

여창명인김수정의안내를받아

조선권번정악전습소학감을지낸

금하하규일선생의넷째양녀로들어가

이후3년간그문하에서가무를배웠다

국악사로서진안군수까지지냈던하선생은

일찍이가곡의천재박효관에게사사(師事)받아

일가를이룬구한말남창명인으로

그때이미일흔이훨씬넘은노인이었다

그녀는하선생으로부터여창가곡에

남보다뛰어나다는인정을받아

수창(首唱,여창가곡을부를때

첫곡을혼자부르는것을말함)을불렀고

춤에도소질이두드러져

‘무산향(舞山香)”검무(劍舞)’따위의정재(呈才)는물론

특히’춘앵전'(春鶯전,궁중의마당에화문석을깔고

한사람의무기(舞妓)가

그위에서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에맞추어

돗자리밖으로나가지않고추는

매우아름다운독무의이름)은

그녀를능가할사람이없었다

하규일선생은늘그녀에게

"명창은열이나는데명무(名舞)는하나가어려워"라는

말을했다고한다

그녀는수업후오래국악을중단하였다가

20여년이흐른뒤인

마흔에이르러비로소가곡의진의를깨달아

김수정과더불어

몇년간여창을불렀다

그후김수정이세상을떠난뒤에는

이난향과수년간여창을불러

근10년이상여창가곡에대한공부를다시계속하여

오늘에이르렀다

가곡은남창과여창으로부르는성악곡으로서

고려적’진작(眞勺)에서유래된노래인데

조선시대를거쳐대원군집정기에이르러

현재의26곡형식으로정착되었다

현행가곡은우조(羽調)11곡

계면조(界面調)13곡,반우반계면조(半羽半界面調)2곡인데

대금,세피리,해금,단소,양금,가야금,거문고,장구의

세악편성으로반주한다

지금도자야여사는

가슴속깊은곳에서

불현듯슬픔이나한같은것이솟구칠때

한국정악중에서’여창계면편수대엽(編數大葉)모시편’을

그윽히짚어간다

옛엄정한법도그대로

한무릎을곧추세우고

똑바로앉아두손을그위에포개어얹는다

고개는다소곳

눈을반쯤내리떠서

한지점에다꽂은듯이멈추어놓고

맑고도고요한음색으로가곡을불러간다

외로운한마리학은

창공에올라끼룩끼룩울고

장구소리는슬픔과한데어우러져

저절로반주가된다

"떵더러러쿵딱기덕쿵더떵더러러쿵더!"

모시를이리저리삼아

두루삼아감삼다가

가다가한가운데똑끊쳐지옵거든

호치단순으로홈빨며감빨아

섬섬옥수로두끝마조잡아

배뷔쳐이으리라

저모시를우리도사랑끊쳐갈제

저모시같이이으리라

어느사이에나는아내도없고

또아내와같이살던집도없어지고

그리고살뜰한부모며동생들과도멀리떨어져서

그어느바람세인쓸쓸한거리끝에헤메이었다

바로날도저물어서바람은더욱세게불고

추위는점점더해오는데

나는어느목수(木手)네집헌삿을깐

한방에들어서쥔을붙이었다

이리하여나는이습내나는춥고

누긋한방에서

낮이나밤이나나는나혼자도너무많은것같이생각하며

딜옹배기에북덕불이라도담겨오면

이것을안고손을쬐며재위에뜻없이글자를쓰기도하며

또문밖에나가지두않고자리에누워서

머리에손깍지베개를하고굴기도하면서

나는내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연하여쌔김질하는것이었다

내가슴이꽉메어올적이며

내눈에뜨거운것이핑괴일적이며

또내스스로화끈낯이붉도록부끄러울적이며

나는내슬픔과어리석음에눌리어죽을수밖에없는것을느끼는것이었다

그러나잠시뒤에나는고개를들어

허연문창을바라보든가

또눈을떠서높은천정을쳐다보는것인데

이때나는내뜻이며힘으로

나를이끌어가는것이힘든일인것을생각하고

이것들보다더크고높은것이있어서

나를마음대로굴려가는것을생각하는것인데

이렇게하여여러날이지나는동안에

내어지러운마음에는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것은차츰앙금이되어가라앉고

외로운생각만이드는때쯤해서는

더러나줏손에쌀랑쌀랑싸락눈이와서

문창을치기도하는때도있는데

나는이런저녁에는화로를더욱다가끼며

무릎을꿇어보며

어니먼산뒷옆에바우섶에따로외로이서서

어두어오는데하이야니눈을맞을때

그마른잎새에는

쌀랑쌀랑소리도나며눈을맞을

그드물다는굳고

정한갈매나무라는나무를생각하는것이었다

-백석-

이제는모든것이

저흘러가버린물결속으로사라졌다

자야여사의가슴속에

아직도고스란히남아있는

시인백석을생각하는

저깊은한도차츰앙금이되어가라앉는다

그러나한인간에게있어서

지난시절의추억을다시금돌이켜되새기는일이란

얼마나가슴쓰리고도

아름다운일인가

필자는여사의댁을나오며

문득그녀의안방벽액자속에

박제되어들어있던

한마리청람색나비의고운나래를떠올렸다

무수히많은

그리고자그마한나비들에의해둘러싸인

그커다란나비는

맑은유리판밑에서

파아란나래를활짝펴고

곧창공을날아갈듯파닥거리는것이었다

그러나그의몸은지금유리액자속에갇혀있는걸어찌하리

이루지못한꿈만

팔랑팔랑날아올라

저들판등성이너머로건너간다

지금생사조차알길없는그의님을찾아서..

-[창작과비평]1988年복간호-

아래사진은

말년의백석으로

작품활동은거의없이지낸

이북의생활로생을마감하기전

김일성뺏지를달고찍은

마지막으로전해지는백석의사진이다

북방에서

-백석-

아득한옛날에나는떠났다
부여(扶餘)를숙신(肅愼)을발해(勃海)를여진(女眞)을

요(遼)를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음산(陰山)을아무우르를숭가리를
범과사슴과너구리를배반하고
송어와메기와개구리를속이고나는떠났다

나는그때
자작나무와이깔나무의슬퍼하든것을기억한다

갈대와장풍의붙드든말도잊지않었다
오로촌이멧돌을잡어나를잔치해보내든것도
쏠론이십리길을따러나와울든것도잊지않었다

나는그때
아무이기지못할슬픔도시름도없이
다만게을리먼앞대로떠나나왔다
그리하여따사한햇귀에서하이얀옷을입고

매끄러운밥을먹고단샘을마시고낮잠을잦다

밤에는먼개소리에놀라나고
아침에는지나가는사람마다에게절을하면서도
나는나의부끄러움을알지못했다

그동안돌비는깨어지고많은은금보화는땅에묻히고

가마귀도긴족보를이루었는데
이리하야또한아득한새옛날이비롯하는때
이제는참으로이기지못할슬픔과시름에쫓겨
나는나의옛하늘로땅으로-나의태반(胎盤)으로돌아왔으나

이미해는늙고달은파리하고

바람은미치고보래구름만

혼자넋없이떠도는데

아,나의조상은,

형제는,일가친척은,정다운이웃은,

그리운것은,사랑하는것은,우러르는것은,나의자랑은,

나의힘은없다

바람과물과세월과같이지나가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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