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 (1)

낮달

쉬잊으리라


그러나잊히지않으리라

가다오다돌아보는어깨너머로


그날밤보다남은연정의조각

지워도지지않은마음의어룽

정운(이영도)는

재색을고루갖춘규수로출가하여

딸하나를낳고홀로되어

1946년10월통영여중가사교사로부임했다.

해방이되자고향에돌아와

통영여중국어교사가된

청마의첫눈에

정운은깊은물그림자로자리잡기시작했다.

일제하의방황과고독으로지쳐돌아온

남보다피가뜨거운서른여덟살의청마는

스물아홉의청상정운을만나면서

걷잡을수없는사랑의불길이치솟았다.

유교적가풍의

전통적규범을깨뜨릴수없는정운이기에

마음의빗장을굳게걸고

청마의사랑이들어설틈을주지않았다.

청마는하루가멀다하고

편지를쓰고시를썼다.

날마다배달되는편지와

청마의사랑시편들에

마침내빙산처럼까딱않던

정운의마음이녹기시작했다.

청마가정운에게보낸편지들은모두그대로시였다.

내가언제그대를사랑한다던?

그러나얼굴을부벼들고만싶은알뜰함이

아아병인양오슬오슬드는지고

덧없는목숨이여

소망일랑아예갖지않으매

요지경같이요지경같이높게낮게불타는

나의노래여,뉘우침이여

나의구원인정향!

절망인정향!

나의영혼의전부가당신에게만있는나의정향!

오늘이날이나의낙명(落命)의날이된달지라도

아깝지않을정향

-1952년6월2일당신의마(馬)

끝이보이지않던유치환의사랑은

갑작스런죽음으로끝이났다.

1967년2월13일저녁

부산에서교통사고로붓을영영놓게된것이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받느니보다행복하나니라

오늘도나는너에게편지를쓰나니

그리운이여그러면안녕!

설령이것이이세상마지막인사가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나는진정행복하였네라

-<사랑했으므로나는행복하였네라>中에서-

그리움

오늘은바람이불고

나의마음은울고있다

일찍이너와거닐고바라보던

그하늘아래거리언마는

아무리찾으려도없는얼굴이여

바람센오늘도더욱더그리워

진종일헛되이나의마음은

공중의깃발처럼울고만있나니

오오,너는어드메꽃같이숨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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