點景에서

나는산골을찾아가서가재를잡아오리라

한나절들판의

강냉잇대이파리빛나는밭두덩을지나서

산머리에조으는구름을바라보고

이모처럼하루의반날을

내만의외로움에휘파람불며다녀오리라

-유치환님의<點景에서>中-

글:조예린(시인)

식목일공휴일을힘입어오랜만에고향방면의기차표를끊었다.기차가이르지못하는곳,부산이나마산언저리에내려서도한참을시외버스속에남은여정을꾸려넣어야하는곳.그런곳에내고향통영은있다.살(肉)의한자락을지그시물속에담그고파도도없는절미(絶微)의바다를안정한그림처럼껴안고있는고장.그땅이그리움인줄을고향을떠나고서야나는알았다.

일곱시간여의여독에도불구하고통영에닿자마자시장으로직행했다.펄펄살아뛰는횟거리몇마리,고향집에사들고들어가야했다.중앙시장앞에서택시문을열자확!갯냄새가몰려들었다.결코비리지않은싱싱하고깨끗한바다비린내에내가이토록감격하는것은기실이여행의시작과끝이청마의바다,그푸른통영바다에맞닿아있기때문일게다.기차속에서부터내내안고있던통영바다에대한부채의식이썩지않은바다냄새를확인하는순간고향에대한자부심으로행복하게환치되었던것이다.그렇다.나는이곳통영에[깃발]의바다를만나러왔다.지상에매여있을수밖에없는운명의푯대끝에서백로의깃죽지같이애달픈그의영혼이온몸으로열망했던그푸른海原은과연무엇이었을까?

고향집에짐을부려놓고갓다듬은놀래미를넣어쑥국을끓인다.늙으신어머니는횟감을꺼내어정성스럽게포를떠놓는다.오랜만에맛보는펄펄산통영의맛이다.

늦은점심을끝내고얼마전개관했다는청마문학관을찾아집을나섰다.통영시청의문화관광과를통해정량동863-1번지라는주소하나를달랑들고자신있게길을나섰는데의외로다리품을한참이나팔아야했다.내가빤히아는그정량동일것인데,정량동일대를돌아다니며아무리물어보아도확실하게아는사람이없었다.그만지쳐서무작정택시를잡았다.택시기사는채3분도안되는시간안에해안도로를짧게돌아수십개의층계가하늘끝까지이어진어느골목안에나를내려놓았다.산등성이한면을그대로깎아만든듯한가파른층계의끝에는하얀풍향계가돌아가고있었다.알고보니통영기상대였다.그층계의중간쯤왼편으로생소한초가지붕과새로지은듯한말쑥한건물한채가눈에들어왔다.청마문학관일터였다.

아래서보았던초가는문학관개관과함께복원해놓은청마의생가였다.원래청마생가는태평동522번지소재였으나도시계획상도로에편입되는바람에바다가내려다보이는이곳망일봉(望日峰)에당시의생가를복원,청마삶터및문학관으로개관하게되었다는것이다.생가에는’柳藥局’이라는당호가붙어있었다.처마밑에주렁주렁매달린약재포대들이한약방을하시던당시부친의이력을고스란히말해주고있었다.소박하게정돈된문학관내부에는’유약국’으로서의청마친가의면모(성장기의청마)와시인으로서의청마,또한교사로서의청마의삶의자취들이새롭게살아숨쉬고있었다.입구에붙은소개문을보니2000년2월14일이개관일로적혀있었다.두달도채못된시간이거니와주민들의무심함을탓할일도아닌것이었다.

그런데,이곳에서나는전혀뜻밖의만남을선사받았다.나이외의유일한방문객으로60대후반쯤의두여사를만난것이다.처음엔그저무심할양이었는데가만히헤아리니그만한연배의여인들로서이런시각에이런딱딱한(?)문학관같은데를그것도애정이가득담긴눈길로돌아보고있다는것이예사로운일로보이지않았다.

어디서오셨느냐고자연스럽게이야기를건네다보니놀랍게도그들은청마생전의제자들이라는것이다.은행장이었던아버지를따라40년대말부터50년대초6년간을이곳통영에살면서청마에게직접시를배우고시조시인이영도에게시조와자수를배웠다는것이다.지금은서울에살지만통영을잊지못해1년에한두번씩은꼭내려온다는말까지를듣고나는그들에게차대접을하겠다고제의했다.

친구사이인줄알았는데알고보니그들은자매지간이었다.두분중언니되는李여사는통영여고재학시절2년간이나청마를담임으로모셨다고한다.더구나반장이었던여사는청마에대한개인적인기억을더많이소유하고있었다.휴일날아침이면담임의지엄한분부를받들고반장은노트와필기구를챙겨서는미륵산등산행로를따라나선다.나도익히알고있는그등산로.산발치의용화사쪽으로완만하게난아름드리참나무숲길이거나산중턱의미륵사로향하는소롯한산로를따라용화사를끼고돌아나오는천년의솔숲길.그길위에서시인은문득말하는것이다―받아적어라,시가술술나온다.그러면이충직한반장은시인담임선생님이불러주는시구를받아적어서는다음날아침정리하여바치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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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이런일도있었다고한다.그해3학년중간고사(?)때(3학년이라해야한학급,30여명뿐이었지만)학급전체가동맹하여백지답안을제출한사건이벌어졌다고한다.이일은의외로학교측의강력대처로인해3학년전체에정학처분이내려지고말았다.담임인청마가교장에게책임추궁을받은것은당연한일이었다.학생들은낭패감을맛보게되었고다음날등교하는대신반장인이여사의집으로모여들었다.모두풀이죽어서앞으로의상황에대해숙고하고있는데뒤에서삐그득,문이열렸다.그문틈에얼굴을빼꼼들이밀고하나도심각하지않은,전혀범상한목소리로누군가이렇게묻는것이었다."느그들―뭐하노∼오?"이이야기를하면서이여사는만족하게웃었다.그리고덧붙이는말.시인이니까그게가능했지시인이아니라면그런상황에서누가그럴수있겠어요?

이쯤에서나는슬며시시조시인이영도이야기를꺼낸다.당시통영에서함께교사생활을하면서시조시인김상옥등과함께어떤문학적교류가있었을법도하기때문이다.특별히시조시인이영도는청마에게각별한사람이었다는것,물론그각별함이그척박한시대에한송이비밀스런꽃송이다운’시’의공유로말미암은것임이자명한바지만,두시인이서로에게미친시적영감은매우특별한것이라는것을이전부터느껴왔기때문이었다.

그것은두분만이아시겠지요,언니이여사의말이다.그러자동생되는여사가소녀같이까만눈을반짝이며얘기했다.이영도시인은그때30대초반쯤됐었는데딸하나를둔미망인이었어요.저는이영도시인에게시조와자수를배웠었는데선생님이차―암이뻤어요.언제나한복을곱게입고머리는이렇∼게올림머리를하고진짜,나비처럼무게가느껴지지않을것같은사람이었어요.동생의이야기를가만히들으며이따금씩고개를끄덕끄덕하던이여사가조심스레말문을연다.행여스승에게누를끼치는발언을하게될까저어하면서도그의표정은벌써아련해진다.

여고3학년봄,바야흐로졸업여행시즌이되었다.그때시골학교에서는수학여행인솔교사로서담임외한명의교사가더수행할수있도록되어있었다고한다.하루는청마가교실에들어와서는"얘들아,느그들여행누구랑가고싶노?"하더라는것이다.그러자뒤쪽의물정일찍알고덩치큰처자들이"두말하면잔소리제,이영도!"하였다는것이다.그봄,흐드러지게벚꽃이핀옥천의한낮을여사는잊을수없다고한다.아니더정확히는,그흐드러진벚꽃그늘을나란히걸어내려오던두시인의모습을지금도잊을수가없다고한다.청마의표정이얼마나행복해보이던지를…….문득내마음속에청마시한구절이떠올랐다.

……세상의고달픈바람결에시달리고나부끼어/더욱더의지삼고피어헝클어진/인정의꽃밭에서/너와나의애틋한연분도/한방울연련한진홍빛양귀비꽃인지도모른다.//(…중략…)//설령이것이이세상마지막인사가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나는진정행복하였네라.
―[행복]부분

일제말기라는극한시대상황과해방공간의격동,또한한국전쟁과전쟁이후의폐허라는불행한현대사속에서뜨거운생명의지를통해살아있음의허무에도전하고그것과처절히맞싸워이기려했던생명파시인유치환.우리현대시사에남성화자의굵직한목소리를각인해놓은시인.나는여기서청마야말로진정한생명파시인이아닐수없음을천명해본다.’생명’에대한열애란참으로’인간’에대한열애가아니겠는가?그가그토록치욕임일레라!하며함몰되지않으려고통스러워했던애련이란결국어쩔수없이몸부림쳐지는’인간’에대한그리움이아니었겠는가?청마는진정,절제된영혼과육체로인간에대한들끓는그리움에오열할줄아는시인이었던것이다…….

생전의시인에대한이런저런사담들이여전히가슴에질척한대로나는걸어서남망산(南望山)으로향했다.갈래머리계집아이적부터숱하게오르내리며지나치는눈길로보아왔던[깃발]시비를찾아가는길이었다.남망공원들머리부터에는동백꽃이또한미쳐있었다.무엇인지,아지못할서름같은것이조근조근나를채근하는바람에영벤치위에주저앉을판인데문득웃음꼬리하나가마음을획,나꿔채었다.그것은청마에대한내선입견에크게충격을주는정보였다.청마의성격이나외모에대해특기할만한점은없는가물으니두분여사의대답이시인의목소리가참특이했다는것이다.왜요?어땠는데요?하고되물으니더듬더듬설명할말을찾지못하다가는,뭐라고마땅히표현할수가없어요.그러니까,꼭갈매기소리같았어요.그래서학생들사이에별명도’갈매기’였어요.하여튼진짜,꼭그랬어요,호호…하는것이었다.갈매기우는소리라?가파른남망공원을오르면서나는곰곰갈매기가어떻게울던가를기억해내려하였다.그것은전혀남자의목소리가아니다.그렇다고하나또그것은전혀여자의목소리도아니다.어쩌면나는단한번도갈매기우는소리를귀기울여들어보지못했던것같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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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망공원에세워진[旗ㅅ발]은참으로오래묵은시비였다.1972년도에세워졌으니30년가까이를이곳통영의바다언덕위에서나부꼈던셈이다.시비뒤쪽을돌아해풍을맞받으니여전히철렁,가슴이내려앉는다.저아름다운서정의바다.저눈부시게푸른해원이어찌’그리움’의한표상이아니될수있었겠는가!

오로지맑고곧은理念의標ㅅ대끝에
哀愁는白鷺처럼날개를펴다.

아아누구던가
이렇게슬프고도애달픈마음을
맨처음공중에달줄을안그는.

―[旗ㅅ발]전문(조선문단,1936.1)

어느새아득히놀이진다.은빛으로가만히눈을뜨는바다.그바다는이제내가슴속에빛나는’인식의바다’를낳는다.매여있으므로결코달려갈수없음에도불구하고온영혼의울부짖음으로펄럭거려질수밖에없는깃발의그리움.그그리움이손짓하고있는海原은인식의바다속에서푸르게잠자는청산호의꿈이다.그것은일제강점하에서요원하게만보이는잃어버린주권일수도있고,평생정련할지라도영원히이를수없을것만같은이데아(이념)의세계일수도있다.다시그것은결코안을수없는사랑하는사람의그리운가슴일수도있는것이다.은빛으로열리던바다의실눈이가물감긴다.시름으로일찍잠들려는것일까?아니다.혹시통영바다는늘상꿈을꾸고있는것이아닐까?통영바다에파도가없는탓은그래서가아닐까?어머니통영바다는그래서예술가를낳는것일까?날마다꿈꾸는시인을잉태하는것일까……?

다음날,마지막일정으로거제시에있다는청마의무덤을찾았다.거제시둔덕면방하리.청마의8대조부터살았다는이곳방하리는청마의뿌리가있는곳이다.길을물어어렵게묘소를찾았는데저만치사람그림자가어른거린다.아하,오늘이한식절이니가문에서성묘를왔나보구나싶어다가가보니무덤앞에정성스런젯상이놓이고삼사십명의무리가모여있다.알고보니거제시의’동랑·청마기념사업회’회원들이었다.1997년4월5일양산시백운묘지에서모친의무덤이있는이곳지전당골선산에유골을이장,매년한식날마다성묘제를지내고있다는것이다.모친의무덤앞에는청마가생전에지어바쳤을사모비가세워져있었다.’아들청마유치환’이란글귀가가슴을찡하게했다.그파슬파슬한목숨의불꽃을어디다태워버리고싸늘한재만을여기남겼는가!

마을을돌아나오다보니들어갈땐마음이급해미처못보았는데들머리에낯선시비하나가서있었다.[거제도둔덕골]이란생소한청마의작품이었다.작품을가만히읽어내려가는데별안간아윽,아윽,울음우는소리!소음이라곤흐드러진벚꽃들이실바람에다투어희롱하는소리밖에없는이시골들판의청보리밭사이에서그것은몹시충격적인음향이었다.눈을들어주위를살피니여느마을의개천이나처럼코앞까지들어온바다한자락위에갈매기두마리가오리처럼동동떠앉아있었다.무어라형언할수없는곡조하나가더엉∼심금위에그때울었다.가슴이선득,하여뒤를돌아보는데한낮의현기같은햇빛무더기가와락쏟아졌다.울수밖에,도리가없었다.

-한국경제신문[한국문단비사]에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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