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부친이37세때,모친이24세때낳은귀한첫아들이었다.백석본명은백기행(夔行).기연(基衍)으로도불렸다.필명은백석(白石,白奭)인데주로백석(白石)으로활동했다.어머니는아들의장수를빌려고강,바위,나무따위에치성을드렸다.유년시절의백석은‘호박떼기’(말타기와비슷한놀이),‘제비손이구손이’를하며자랐다.유년의백석이누구와어울렸고어떤풍광속에서자랐는지는첫시집이자유일한시집‘사슴’(1936년)에수록된‘여우난곬족’을통해어느정도드러난다.
“명절날나는엄매아배따라우리집개는나를따라진할머니진할아버지가있는큰집으로가면//얼굴에별자국이솜솜난말수와같이눈도껌벅거리는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벌하나건너집엔복숭아나무가많은신리(新里)고무의딸李녀작은李녀//열여섯에사십이넘은홀아비의후처가된포족족하니성이잘나는살빛이매감탕같은입술과젖꼭지는더까만예수쟁이마을가까이사는토산(土山)고무고무고무의딸承녀아들承동이”(‘여우난곬족’일부)
‘여우난곬족’에는수원백씨집성촌인익성동의일가들이마치족보를들여다보듯상세하게나열돼있다.백석에게는한명의큰아버지와두명의작은아버지,그리고네명의고모가있었다.그가운데서도고모들의식솔은질펀했다.산너머해안가덕언면중봉동에사는홍정표에게시집간큰고모는남편이서른한살에요절해과부로살았다.이씨집안으로시집간둘째고모는얼굴이곰보에다말조차더듬었다.영변근처토산에사는승두현에게시집간셋째고모,그리고김훈호에게시집간막내고모의식솔들을하나하나거명하며백석은그들이야말로여우가나오는골짜기에사는족속이라고유년시절을회상하고있는것이다.큰집이있는곳이바로여우난골이고명절날그곳에모인친척이여우난곬족이었던것이다.
게다가아버지가경성과같은타관에가서몇날이고몇달이고돌아오지않는밤이면예닐곱살백석은여우난골이라는깊은산골의짐승소리와바람소리에놀라어머니가깔아놓은이불속으로자지러들곤했다.어머니를대신해먹을것도챙겨주고옛이야기도들려주던막내고모가시집간것도이때쯤이었으니어린백석은밤이무서웠고또한고적했다.
“아배는타관가서오지않고산비탈외따른집에엄매와나와단둘이서누가죽이는듯이무서운밤집뒤로는어늬산골짜기에서소를잡아먹는노나리꾼들이도적놈들같이쿵쿵거리며다닌다.(중략)또이러한밤같은때시집갈처녀막내고무가고개너머큰집으로치장감을가지고와서엄매와둘이소기름에쌍심지의불을밝히고밤이들도록바느질을하는밤”(‘고야(古夜)’일부)
그렇다고백석의아버지가타관으로만떠돈것은아니었다.아버지의손을잡은채오리잡는덫을놓으러개울이며논으로갔고,장날에는아버지를쫓아장터에가던소년백석이었다.“오리치를놓으러아배는논으로내려간지오래다/오리는동비탈에그림자를떨어뜨리며날아가고나는동말랭이에서강아지처럼아배를부르며울다가/시악이나서는등뒤개울물에아배의신짝과버선목과대님오리를모두던져버린다//장날아침에앞행길로엄지따라지나가는망아지를내라고나는조르면/아배는행길을향해서커다란소리로/-매지야오너라/-매지야오너라”(‘오리망아지토끼’일부)
오리덫을놓으러논으로내려간사이에오리가논둑비탈에서날아가버린것을목격한소년은오리를놓친것이아버지탓이라는듯공연히심술이나있다.장날에장꾼들의행렬이지나갈때어미말을따라가는망아지가보이자아버지에게망아지를사달라고떼를쓴다.그런어린아들을달래려고아버지는“매지(망아지의평북사투리)야오너라”라고큰소리로외쳤던것이다.
아버지와아들의친밀도가소박한부자유친의영상으로바싹당겨져오는대목이아닐수없다.여우난곬족의일원으로유년을보낸백석이인근오산소학교에입학하기전에체험한농촌공동체의유산은시집‘사슴’에수록된‘모닥불’에서절정을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