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冊, 그 세 갈래 길

느림(밀란쿤데라作)

베라는벌써자고있고

나는정원쪽으로난창문을열고서

T부인과젊은기사가한밤중에성에서빠져나와나누었던여정

그잊을수없는여정을생각한다

그들은서로팔짱을낀채이야기를나누며산책하다가

잔디밭의한벤치를찾아여전히팔짱을낀채얘기를나누며나란히앉는다

달빛이가득하고

정원은테라스들로너울져세느강쪽으로내려가는데

강의속살거림이나무들의속살거림에어우러지고있다

일상의언어에서쾌락주의라는개념은향락적이거나

악한삶을위한비도덕적경향성을가리킨다

물론그것은부정확하다

에피쿠로스

이최초의위대한쾌락이론가는

행복한삶을지극히회의적으로이해했다

고통받지않는자가쾌락을맛본다고

따라서쾌락주의의근본개념은고통인셈이다

사람은고통을떨쳐버릴줄아는한에서만행복하니까

그리고

쾌락이란종종행복보다는불행을가져다주므로

에피쿠로스는다만신중하고절제된쾌락들만을요청한다

에피쿠로스의지혜의배경은우울하다

세상의비참함속에내던져진자로서인간은

자명하고확실한유일의가치는쾌락임을

아주보잘것없는것일지라도그스스로느낄수있는쾌락임을확인한다

신선한물한모금

하늘을향한시선하나

어떤애무

唐詩,그서정을찾아서

(도서출판정일)

비파의노래(백거이)

심양강기슭에서밤에손님을보내려니

단풍잎과갈대꽃이가을소리에쓸쓸하다

주인은말에서내리고손은배에오르는데

술잔들어마시려니음악소리없구나

취해도즐겁잖고쓸쓸히작별하려니

아득히강에는달이홀로잠기더라

그때문득강위에서비파소리들리니

주인은돌아갈줄모르고손도떠나지못한다

동자를산아래로보내며(김교각)

사문의길적막하니너는집이그리워

운방을이별하고구화산을내려가네

대나무난간향해죽마타길좋아하고

금지에서금모래모으길게을리했음이라

병에시냇물을담아서달을부르지못하고

사발에차를우려꽃을즐기지못하였네

잘가게자주눈물흘리지말고

이노승은안개와노을벗하며지내노니

꽃에게말을걸다(백승훈지음)

데이지꽃

찬바람이자주옷깃을여미게하는이른봄날

겨우내비어있던화단을환하게밝히는

데이지꽃처럼

마음속에꽃등을켠사람은아름답습니다

라일락꽃

그사람의이름이무엇인지

그사람의출신지가어디인지

그사람이어디에살고있는지관심을두는것도좋지만

그사람이지니고있는향기를기억하는일

그사람이지닌아름다운빛을기억하는일이

더중요하지않을까요

물레나물꽃

그대를생각하는동안

세상어디선가또꽃이피고꽃이지고

꽃이피고꽃이지는동안

난또그대를생각하고

사는일이그대를생각하는일임을

이제사조금씩깨닫습니다

당귀꽃

기다림이사랑보다더어려운일인것을

설사

돌아온다고한약속의시간이지났다해도

사랑한다면기다릴일입니다

백합

다가설수없는날들이

그리움의향기를빚습니다

손잡을수없는안타까움이애틋함을자아냅니다

당신이내게그러하듯

나또한당신에게그런사람이었으면좋겠습니다

서로다른골짜기를흘러가는물결처럼

무심함속에너무많은시간이흘렀습니다

홀로보낸시간만큼

흘려보낸세월만큼

서로에대한기억도

멀어지고흐려질수도있을거라생각했는데

그세월이

눈물을키우고

그리움의시간이었습니다

어찌아름다운날들이란

지난시간속에서만찾아지는것인지요

어찌해서지난시간속엔

아름다운날들이

보석처럼박혀있는것인지요

젊은날의혈기나객기도비껴간

인생의저물녘

내남은삶이억새꽃을닮았으면하는소망함께

날선욕망도

모난마음도

둥글고부드러워져

불어오는바람을온몸으로받아안고

춤을추는억새처럼

아름다워져야겠단마음속다짐을하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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