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저편 (4)

눈앞으로

어슴프레형광등불빛이보인다

아까부터또모르는여인네가찾아왔다

내귀에대고어머니라고살갑게자꾸반복해부르며

어머니사랑해요..라고내귓속에대고이야기하는데

얼마나듣기가좋고고마운지

움직이지않는왼손때문에양팔을뻗질못해두팔로안아주질못했지만

손을내밀어그여인네어깨를토닥토닥해줬다

눈을크게뜨고좋아라하는것을보니

나를아는여인네인것도같은데

나는전혀모르는사람이니갑갑하다

그옆에는항상둘째자식이붙어있다

왜큰애는보이지않는것일까

막내아들은또어디에있는것일까

내자식들아,

내속으로어렵사리낳아기른귀한내피붙이들

…….

캄캄하니햇빛한줌들어오지않고눅눅히음습한독청에서

사흘밤낮으로감금돼서

몽둥이로맞으며혼절하길몇차례

어느순간인가

사타구니밑으로뜨듯한것이흘러내리는느낌이들었다

이게뭔일이일어난것일까

독청문을열고들어온동네아낙의외마디소리에

눈을뜨고어슴프레올려다보니

소댕이댁이다

아버님이구장일을맡아보시며

**준이와맞써싸울적에밤에몰래찾아와

그고마움을전해오던

동네에서얼굴이가장예뻐서그인간에게밤마다괴롭힘을

제일많이받는그여자다

결국나는

하혈이낭자하여어렵사리임신했던아기를잃은것이다

어찌이렇게도짐승만도못한짓꺼리를

같은하늘을이고악행을저지를수가있단말인가

몸둥이로맞아서흘리는눈물이아닌

사무치는원망이뜨겁게두볼을타고흘러내렸다

인민군트럭에실려간서방님은

군소재지국민학교운동장에집결되어

자신의의지와는상반되게소대장으로또뽑혔다고했다

끌려간무리중에

대학생이었던서방님을다른이들이지목하여

피할수없이직책을맡아야만했단다

패색이짙은전세에후퇴에후퇴를거듭하던인민군대열에서

충주에사시는당숙을만났단다

밤중에후미에따라오다가유엔군폭격이시작되거든

뒤도돌아보지말고무작정뛰어도망가라고

들키면그자리에서사살당한다고

자기는소대장이라고맨앞대열에서인민군과함께

앞에서만걸어가게되니탈출하기가여간해서쉽지않을것이라고

울먹이면서하는말이집에돌아가면부모님께자신의안부나전해달라고이야기를했더란다

그것이서방님의마지막유언이되었다

낮이면산속에서숨어있다가몇밤을걸었는지

임진강이보이는강언덕에올라서서

도강을모색하던중에비행기의폭탄세례를엄청나게받아

쑥대밭이되다시피하는와중에서방님이돌아가셨단다

그소식을전해들은시어머님은한동안혼절을하시고는

깨어나질못하시다가그만내가하혈을하자

그제서야그인간들에게놓여난나를

당신께서부축하고서낭당고개를기다시피넘어

집으로돌아온것이엊그제

전쟁통에

시어머니도총명하고기대가컸던둘째자식을잃고

나도뱃속의아기를잃었던것이다

기구한여자의생

…….

간병인여자가오더니내사타구니에서

기저귀를갈아끼워주며

왠소변을이리도많이누셨느냐고

뭐라고귀에대고소리치는데잘알아듣질못하겠다

꿈속에진저리를치면서하혈을한것이그만

소변이되어쏟아진모양이다

육니오중에잃은뱃속의아기에

슬픔에잠겨있기를두어해

다시아기가들어섰다

그아이가시방큰애비다

그밑으로삼년터울로딸

또그밑으로두해건너지금막침상맡으로다가와

나를아느냐고..왜둘째자식도몰라보느냐고

섭하다고내귀에속살거리는둘째

다른형제들과달리곰살맞고인정이많은내자식이다

……

내뱃속의아기까지몽둥이질을했던**준

어찌그이름을잊을것인고

이렇게50년세월이지나도뼈에사무치게용서가안되는

짐승의거죽을쓴인간

나중에는읍내로이사를가서첩실을두고

내둘째가태어나던해에그인간도첩에게서자식이태어났다

한쪽눈이사팔뜨기라고소문이들어온다

그악행의죄값을자식에게뻗쳐받은것이다

어쩐일로

시아버지말년에그인간이약주와고기근을사가지고

사죄를한다고집으로찾아왔지만

나는내다보지도않았다

치가떨리고다리가후들거려서부엌문턱을

넘어서질못하였다

시아버지계신사랑방에서는헛기침소리만들릴뿐

달리주안상을내오라는기별도없었다

조금앉았다가사랑방댓돌아래마당으로그인간이내려서며

사랑방을향해허리를깊이꺾어인사를하고는

그짐승만도못한독한인간이돌아간후에야

물동이를이고바깥마당으로나섰다

그인간이바깥마당에서가질않고기다렸는지

나를먼발치에서보고는중절모를벗어

가슴에대고는허리를굽히고는펼줄을몰랐다

나는우물가로가던길을뒤돌아서

대문을닫고들어왔다

눈물이쏟아졌다

대명천지에저런인간과함께숨을쉬고있다는것에

숨이콱,콱,막혔다

시아버님이돌아가시고문상을온그인간과

또마주쳐야만했다

고통스럽기짝이없는인간

우리집안을쑥대밭으로만들던파렴치한이

무슨낯으로자꾸우리집대문출입을한단말인고

세상에선한끝은없어도악한끝은있다고한다

저렇게악행을저지르고도읍내에서

떵떵거리며잘산다는사실이

도저히이해가되질않는다

하느님이계시긴하는것인고

독청에서멍석말이뭇매를견뎌내고피고름으로보름여를

눕지도앉지도못하고골병이들었던내신랑

그양반이

돌아가시던20년전의그날이눈에선하다

신체가까맣게타들어가듯자줏빛멍이전신으로나타나셨다

임종직전에육니오의그상흔이고스란히

신체에나타났던것이었다

한인간의영혼과육체를망가뜨리는악행을저질렀던

그인간도몇해전에죽었다

본처와첩실에서낳은자식간에재산싸움이붙어

칼부림까지났다고했다

그와중에뒤로쓰러져그길로죽었다고소문이들려왔다

그무섭고잔인한피가어디가겠는고

인과응보의비참한말로가아닐수없다

……

하루도빠지지않고내침상으로나를찾아와주는

고마운내둘째자식

육니오전쟁통에돌아가신

서울에서연희전문대학을다니시던

그서방님과외모며성격은물론

책을좋아해항상옆에끼고있는것까지제일많이닮은

그둘째자식과

모르는여인이매일다녀가더니만

병원에서내게개근상장을주듯이

바퀴달린내침상을두번이나옮겨지더니

출입문쪽찬바람이부는곳에서안쪽아늑한곳으로옮겨왔다

가습기인지김이피어오르는기계도그많은침상가운데

내옆에다만유일에게뿜어주는것이

여간고마울수가없다

둘째가자꾸물어온다

자식인나를왜몰라보고자꾸시선을창문과형광등만바라보느냐고

섭섭하다고하는데왜내가너를몰라보겠느냐

이제나다나은것이니

이제그만집으로나를데려다다오

집에가서내방에편히눕고싶구나

이곳은햇볕한줌쬐지도못하는구나

우리집베란다소청마루에는하루왼종일

따순바람이드나들고햇살이비춰들지않더냐

나를그곳으로데려다주너라

내쉴곳은내집이제일인데

왜이곳어둠침침한병원에다나를뉘여놓고

주렁주렁코줄에

닝겔을꽂아놓고힘들고괴롭게만하느냐

여여집으로돌아가

조석으로하느님고상아래

내오남매자식들위해매일기도를드려야만하는데

애비야,

나를집으로데려다다구

그런데항상애비곁에함께오는저여인네는

도대체누구더냐?

참으로고맙고또고마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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