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 고요한 마을

(1)

한국의전통마을을찾아서

어머니의병환으로여행의자유로움에서

여의치못함으로바뀌었습니다

해서

우리의전통가옥들이모여있는초가마을로들어

낮은처마아래

봄볕가득한봉당에앉아

속눈썹으로뜨는오색무지개를헤아리면서

내유년의아득한시절로돌아가

눈에삼삼한고샅길을걷고싶었습니다

그것을대신하여

퇴근하고여태껏서책으로드는이저녁

옻골마을

한개마을

낙안읍성

성읍마을

하회마을

강골마을

양동마을

도래마을

닭실마을

원터마을

외암마을

왕곡마을

흰고무신닦아신고

마실을댕겨왔습니다

(2)

감성으로가는부도밭기행

집에서가까운칠장사에서약수를길어서식수로마십니다

물맛에서전국둘째가라면서러울정도로

기가막히도록참좋은곳입니다

그칠장사에서약수물을길어

철제당간을지나조심스레자동차저단기어를넣고

가파른언덕길을내려오다가

왼편양지녘으로가지런한부도밭

계절마다에다른느낌의모습으로

그곳에앉아계신고승들의부도

어느겨울

설해목으로꺾인소나무등걸이비스듬히누웠는데

그눈쌓인부도밭풍경이내게전해주던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부도밭은

또하나의설법전이었습니다

삶과죽음은본래둘이아니어서

삶속의죽음을바라보게하고

죽음속의삶을형형하게알아차리게하는

법문인곳이었습니다

(3)

모든것에따뜻함이숨어있다

박완서님을만나는일은늘상편안함입니다

절대어렵고난해한글귀는글의행간어디에서도없습니다

고향동네누님같이

선한미소로웃고계신당신

그겸손하게풀어내신긴이야기

푸근푸근

그의글을따라가다보니

어느새저녁이깊어

밤중으로건너갑니다

바깥중천으로는

무명의밝음으로

보름넘은하현달이

구름위를지나가겠지요?

안해와짧은겨울해에훌쩍다녀올여행지를짚어가다가떠난외암리민속마을.

추운날씨였지만마을초입에서내고향마을에온듯한푸근함에젖어들었다.

응달로살포시얼음이얼고잔설이희끗한고샅길.

양달사랑방마루와파릇한뜨락으로풀들이겨울햇발에희뽀얗다.

추운날씨에주인장께서는어디로출타하셨을까나.

대문틈으로들여다뵈는마당으로겨울햇살만따습게노닐고..

어느집처마아래로메주덩이주렁주렁장맛이들어갔다.

고요한외암리에동네사람다어디가셨을까.햇살쏟아지는마루에눈감고앉아해바라기.

오늘이읍내장날일까나?

마당깊은집에고요도깊어라.

남향받이고택에는따스한기운가득히열어제낀방과대청마루에살포시돌아나가앉는겨울날.

넓은고택솟을대문활짝열어두고문지기천서방은어디가셨을꼬.

돌아나오는담장너머해살거리는겨울햇발.이추운겨울을견디는붉은인동초한떨기.

마을초입에서달려온바람이지난가을억새를흔들며마을뒷산을오르고..

나는그뒷산아래첫집인초가집앞에서한식경을서성거렸다.

어린날철모르고뒤도돌아보지않고떠나왔던고향이었다.

조부님시조읊으시던소리낭랑하던사랑방.

어머니가김장독묻어두고아침저녁으로드나들던뒷곁으로살포시깔린고향눈.

언제든가리
마지막엔돌아가리
목화꽃이고운내고향으로
조밥이맛있는내고향으로

어제든가리

-중략-

나중엔고향가살다죽으리
메밀꽃이하아얗게피는곳
나뭇짐에함박꽃을꺾어오던총각들


-하략-

꿈이면보는낯익은동리
우거진덤불에서
찔레순꺾다나면꿈이었다.

따순유자차한잔앞에놓고

노천명의시를읽는

이어스름녘.

외암리의청랭한겨울바람이

내이마를슬몃짚어지나가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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