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저편 (6)

바깥에는봄이왔는지

이렇게허구헌날누워만있으니

도통모르겠다

마비된왼쪽어깨쭉지가왜이리아픈지모르겠다

오늘도찾아온사람을

간병인들이둘째자식이라고자꾸불러주는데

기억에가물가물멀어지는저편으로

자꾸만지워지는모진세월

차라리이렇게잊혀져서

모든설음편히내려놓았으면좋으련마는

오늘아침에깨어보니

옆침상영감님누웠던자리가수선스럽다

내가여기들어와서

한번도자식이라고그영감을

찾아와준사람하나보질못하였다

아무도임종을지켜봐주지도못하는데

그영감은홀로

쓸쓸하게눈을감았다

어찌차마눈을감았을까

슬프다

눈가에자꾸눈물이흘러내린다

……..

내어린나이에

친정아버지가돌아가셨다

그날도동네가운데샘에서

댕기머리길게땋아서늘어뜨리고물동이를이고

똬리를머리에고이고

막삽작거리를들어서는데

친정어머니의곡소리가들려왔다

엉겹결에이고있던항아리물동이를내려뜨렸다

그러면서콧잔등에상처가났는지

정신이몽롱한가운데콧잔등에서흘러내린핏물이

내얼굴전체를덮었다

언제나의관을정갈하게갖추시고사랑방으로건너가시면

종일내글읽는소리만들려오던

그사랑채에서임종을하신것이다

동네는물론하고

건너마을과산너머여우골에서까지떠꺼머리총각들이

붓과벼루를옆에끼고이추운겨울에도

무명홑적삼하나만입고넘어와

아버님앞에조아려무릎을꿇어가며천자문을시작으로

동네서당인아버지사랑방을출입하였다

천자문을떼고는

시루떡이며백설기를만들어

책꺼리를지게에지고오는날이있는데

그날은온집안이풍족하였다

그러다가

어느해돌림병이돌면서

뜻밖에도오라버니가삼일낮밤을

뜨거운신열로끓다가

부모님을앞서

허무하게도죽음을맞고말았다

안타깝게도

그렇게평온하던집안이

물동이항아리깨지듯풍비박산이나고말았다

사십을갓넘기시며부터

동네에서학자로불리우셨던친정아버지는

깊은슬픔으로지내시는날들이많아지시며

마루에서멍하니먼산만바라보시는날들이많아지셨다

그날이후

사랑방에서서책읽으시는소리가뚝끊겼다

그렇게자식을애끈히그리시길

몇달

원인모를병으로

그만아버지께서급사를하시고말았다

수습이안되는슬픔으로

흰죽한그릇목을넘기질못하는나날에서

친정아버지장사를치르고는

그한해가채가기도전에

친정어머니마져도

세상을떠나셨다

이태도안되는짧은세월에서

닥쳐버린크나큰집안의우환으로

졸지에남동생과나는고아가되어버렸다

거의가

국민학교만가까스로보내던어려운시절에

아버지는남동생을고등학교까지보내셨다

이천에서고등학교에다니던

총명하기이를데없는남동생은

그날로학업을포기하고집으로들어와

지게를지고큰집의허드렛일을

꽝꽝해야하는일꾼신세로전락하였다

가슴이미어지는일이었지만

어른들이하시는일이라

말한마디못하였다

그이듬해

중매쟁이가드나드는가싶더니

나도모르게큰집숙모께서

혼사준비를모두마치고는

시집을가라고하셨다

고등학생에서일꾼으로전락한

불쌍한남동생하나달랑남은집을떠나

멀리시집을가야하는

이기막힌운명

한숨으로눈물이마를날없던그세월을

내어찌죽는날까지

차마잊으리오

시집가는날

연지곤지찍은볼로철철히흘러내리던눈물

애들아버지얼굴한번보지도못하고

가마꾼들을대동하고삼십리길을

새색시로넘어오던그길

그길에는민들레가

길가양으로많이도피었었지

……

옆침상의영감이들것에실려서어디론가떠나고나서는

금새아무일도없었다는분위기로

다른늙은이가

그자리로들어와침상을차지하고누웠다

봄볕토담아래

쪼그려앉아서잠깐끄덕끄덕졸다가깨어보니

댕기머리치렁치렁윤기자르르하던검은머리가

호호백발검불처럼변하고야말았다

참사람사는일이아무것도아니다

둘째아들이라고매일같이나를찾아오는중년남자가

내귀에바싹대고큰소리로들려준다

"내일은외삼촌께서엄니를뵈러오신대유."

시집오면서

삼십리먼길을넘어오던그길에서

이름을부르며부르며

울고또울었던

그이름

철현이내동상이온단다

그옛날꽃가마타고넘어오던고갯마루에서

친정동네를바라보며부르고또불렀던

내하나뿐인불쌍한동상

내일은정신이라도잘수습하여

동상을알아봐야만할텐데..

이가슴가득흘러가는

쓸쓸한저녁강

귓가로

강물소리만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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