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쓰는 편지

이편지가그대에게가닿았으면좋겠습니다

마음의휴식기를필요로하는여행이었습니다

오랜만에바다가보고싶었습니다

네비게이션도작동치않고그냥이정표를따라가다가당도한곳이강릉이었습니다

강릉에서잠시길을잃고막다른골목쟁이를돌아나가고보니

강릉역이었습니다

거기서방향감각을동원해서

연전에먹던입맛을찾아강릉선교장옆을찾아들어

시원한동치미막국수를먹었습니다

그러고는내쳐서오대산으로다시길을되짚었습니다

여행이란정처를정하지못하고떠도는구름같이

그렇게헤매도볼일이었습니다

바람따라가는저길도

참좋았습니다

전나무숲길을따라들어가서만나지는산사

적멸보궁상원사아랫절

월정사였습니다

이곳은눈이평,펑,쏟아지는한겨울에

안해가황혼기단기출가를수행한곳이기에

반가움에한달음에일주문을지나경내에들어가

어여쁘신명행,정경스님을뵈었습니다

마침단기출가자들이입소하는날이어서

자원봉사자가요구되었습니다

바로선방으로안내되어여장을풀고나니

햇살아래눈부신5월이마당한가득빛났습니다

초파일을맞아연등이달리고

바람에이리저리흔들렸습니다

대웅전에삼배를마치고나오려니

동자승들이귀엽게승복을입고

손바닥보다작은꼬까신을신었습니다

저순진무구한얼굴의미소를닮아야겠습니다

저해맑간동심을찾아가야겠습니다

대저

우리는동심을떠나와얼마나멀리까지와서

지친표정들을하고는어디로또가려고방향없이헤매도는것인지요

선방으로가는절뒷마당에서

눈부시게쏟아지는햇살아래잠시뒷짐을지고서성였습니다

비워서청정함을찾아살아가는것이행복이거늘

사바세계에서의꿈같은세상살이

모두다부질없음이거늘..

점심공양을간단하게마치고가벼운옷차림으로경내를돌아봤습니다

공양간에서공양을마치고돌아서는데

금새배가고파집니다

삼시세끼니를

정시정량의소식을해오던식습관이

절밥앞에무색해지고말았습니다

아무래도산에서살아갈체질인가봅니다

이곳은이제서야봄꽃들이피어나고있습니다

불사를이뤄출가자들의수행처로많은확장을하였습니다

한옥의아름다운美와곡선을이뤄

앞산과뒷산과조화로움을이룬건축미가돋보였습니다

이아름다움을찾아수녀님몇분이작은배낭을지고서

아이들소풍나오시듯나오셨습니다

전나무그늘아래무엇을논하시는지요

그모습들이

마치소녀들마냥청신하였습니다

문득

종교를넘나드시던양대종교의거목이셨던

김수환추기경님과법정스님

그리고이해인수녀님과평생글벗으로지내오셨던

법정스님과의서간문이떠올랐습니다

종교란무릇종파를가르지않고

이렇게서로의참마음의경계를넘나들일입니다

그것이예수님의뜻이고

부처님의뜻이라고생각합니다

산사를찾으면마음이한없이깊어지는

고요함으로의침잠에이르게됩니다

저돌담에해살거리는햇발같이

어디에고속함이나가둠이없이훨훨

바람같이

구름같이

마음이가는길을따라갈일입니다

안해는발우공양에쓰이는흰종이를갈무리하여

출가수행자들이잘사용토록접는일로

자원봉사자의한몫을다하고있는데

나는다른봉사자들이이미모든일을마친뒤라서

하릴없이여행자의신분이되고야말았습니다

경내를돌아볼겸사여행객들과같은마음이되어

느릿한걸음새로절마당을거닐어봅니다

하절기에들어며칠이지났건마는

진달래가피고산벚꽃이산마다아련하게피어나는이곳풍경에서

이양반들모두는엄연한상춘객이되었습니다

선방을나와멀리포행을다녀오기로마음먹었습니다

같은봉사자인중년의불자께서전나무숲길을권하기에

길을나서봅니다

절아래산문밖으로내걸린연등의조화로운배색들이

신록과어울려참아름다웠습니다

구름다리를건너는관광객들의옷차림새와도또한

자뭇어우러져아름다웠습니다

전나무숲길초입부터

온통연록색의속잎이피어나는풍경과

맑은물소리가참좋습니다

다람쥐도사람을경계치않고

발치에서내발길을막아서기까지합니다

늙은고사목이쓰러져누운전나무숲으로들었습니다

이길은많은인파들이스쳐서지나가는오솔길로

아무도가지않는길입니다

하늘을가린전나무군락지에서는

햇볕도잘비춰들지않습니다

양말까지벗어들고발바닥의오감을

다동원하여걸어봅니다

실로오래간만의포행입니다

숲길이

큰길로길이합쳐지다가

다시호젓한길로접어들었습니다

취나물인지뭔지는모르겠지만

나물만은확실하였습니다

어린새싹은모두가

몸에이로운약초라고들었습니다

오래묵어쓰러진고목이삭아서

풍화작용을반복하고또세월이흘러

흙으로돌아가려고부스러지는모습을보면서

나무의한생애가사람과다름아니라고생각합니다

저나무보려니어머니가생각나면서갑자기숙연키까지합니다

고개를들어어머니를생각하고

고개를숙여또어머니를생각합니다

어머니

이제껏걸어왔던길에서

다시길을두고

또다른길을갑니다

물소리가들려오는길에서발길을되짚어

산사로오르는길로접어들었습니다

물가로내려가

바위에앉아계곡윗쪽을올려다봅니다

물이너무맑아물사위가어른어른춤을춥니다

세수를하고한참을물속을들여다봅니다

이곳은이제사수류화개입니다

사랑하는사람과둘이걸으면참좋은길입니다

안해는이전나무숲길

함박눈이쌓인길을

삼보일배로수행을하였다고합니다

이아름다운길을

무릎에서피가나고관절이부서져나갈것만같은

추위와바람속에고행을자처하였답니다

이제그고행의길이

저렇듯아름다운길로변하여새소리물소리가득합니다

우리네인생또한

이와같음을요

슬프다고마냥슬픈것이아니고

기쁘다고매양꽃타령만할일도아닙니다

일반인들의발길이닿지않는수행처안뜰로들었습니다

인생의길을감에도

이렇듯한갓진길을갈일입니다

살아보니

곡절없이곧게난길

삶의탄탄대로가

꼭행복되고좋은것만은아니란것을깨달아갑니다

수류화개에낙화유수의절기가

세월속에함께흘러갑니다

진달래가나무속잎과어우러져

어여쁜풍광이됩니다

탑신끄트머리에걸쳐

잠시하늘을쉬어가는구름도

한가롭고

절기에한참을뒤미처피어나는꽃들또한

한가롭고

얼었던대지를비집고올라오는새순밭도

한가롭고

돌각담장위채마밭또한

한가롭고

뒷짐지고걷다가잠시쉬어가는마음또한

한가롭고

월정사를지나더윗절로오르는

한갓진마음

아래월정사의

번잡한인파에서슬몃비켜앉은지장암에서

홀로한가로운마음이됩니다

대웅전뜨락댓돌에턱괴고앉아

하염없는마음이됩니다

더나아갈길이없는곳에서

나의넉넉한포행을그쳤습니다

길가양에앉아퐁퐁,솟아나는청정수에

켜켜로쌓였던속세의더깨를

정갈히씻어봅니다

그리고더낮은下心으로살아가는길을

이자연속포행에서배워봅니다

몇시간을걸었는지다리가뻐근합니다

하지만마음은가붓하여

노인봉을넘어상원사적멸보궁까지

거뜬히넘어가도되겠습니다

이아름다운5월을

참많이도걸었습니다

대웅전에들어삼배를마치고

마당으로내려서서

내지나온길을돌아봅니다

바람이었습니다

지나온내한생애가한갓

바람이었습니다

기진한저녁해가

지친내등을어루만져주며

이제평안에들라고이릅니다

선방으로들어몸을뉘어봅니다

내지나온길을뒤돌아보건데

돌투산이가시진길

그먼길을에둘러

이만큼이면잘왔지싶습니다

이렇게팔베개를하고

노란장판의감촉을오랜만에등짝으로느끼면서

쏟아지는잠속에이리저리흔들리는문창살을세어보면서

오대산월정사선방에서쓰는

5월의편지를마칩니다

그대

멀리에서

청신함으로

내내건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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