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의 단상 (3)

우체국건너편길모퉁이찻집계단을

덜컥거리는철모를벗어옆구리에끼고

슬며시문을밀치고들어섰다.

시골의한가로움이깃든

전형적인풍경으로햇볕이비춰드는커튼창빛에

착가라앉은분위기의옛날식다실이였다.

창가쪽에서자그마한체구에

털실로뜬쉐터를입은소녀가조용히일어서며

내쪽을향해수줍게목례를해왔다.

다가가씩씩하게거수경례를붙이며

앞좌석에앉았다.

"반갑습니다이렇게만나뵈니…"
"……"

고개를들지도못하고묵묵부답인지라

어색하기그지없기도하거니와

카운터의아가씨들이자꾸흘끗대는모습들이안좋아
일어서며바깥으로나가길권했다.

엽차마시듯커피를단숨에마시고일어나

함께바깥으로나가자고제의를했다.

말없이따라나오던그녀는

밖을나와서도이내몇발자국뒤쪽에쳐져서따라오고있었다.

둘은바다로연한길을말없이걸었다.

침묵속에철모의덜거덕대는소리가유난히크게들렸다.

송림입구에서발길을멈추고뒤돌아보니

그녀는한참뒤쪽길섶에서서성거리며

자신의옷장식인옷고름만만지작거리고있었다.

다시뒤돌아다가가서옆에서니

이번엔아예등을보이고뒤돌아섰다.

피식~웃음이났다.

땅바닥에털썩앉아멀리송림사이로보이는바다에눈길을던졌다.

"바다가참가깝네요"
"……"

전화상으론참많은얘기를잘도했건마는

왠일인지그날그녀는한마디말도내게하지않았다.

귀대시간은가까워지고

그녀는말없고..

한참을앉아있다일어서며손을내밀어악수를청했다.

악수하며바라본그녀의눈은사슴을닮아있었다.

그선한눈매에항시미소를띠고있는얼굴이

이제껏의묵언을대변하는듯했다.

우리의첫만남은참으로싱겁기짝이없었다.

부대로돌아와전화를하니한참만에야전화기에나온그녀는

그저말없이듣기만했다.

도대체지금이어느시대인데춘향이가

이도령을만난듯이내외를하고꿀먹은벙어리를할수가있느냐.

금쪽같은시간을냈건만그게무어냐고항의아닌항의를해댔다.

그만남이후로

그녀는한발더가까이에내게다가왔다.

그녀쪽에서전화를해주는날이더많아졌고

서울집의시외전화도자신의부담으로맡아연결해주곤했다.

그녀의일기장에내이름이자주오르고있다며

은근히자신의속마음을내게나타내곤했다.

한번은그녀쪽에서한가지제안을제시해왔다.
서로가덧니를가지고있다는공통점을이유로<덧니주식회사>
를설립하지않겠느냐는익살스런제의였다.

나는단번에수락하고나는사장으로그녀는전무로

서로의직책을부르기로했다.

그살벌했던군대의분위기와는반대로

그해겨울은<덧니주식회사>사장으로따뜻하게보낼수있었다.

그녀는뜨개질을참잘했다.

장갑이며군복속에껴입으라고조끼도떠서주곤했다.

고마움에앞서부담스런마음도있었으나

그녀의성의가너무진지해서

그녀의말대로국군장병위문품으로생각해달라는쪽으로

편하게받아들였다.

그전무의뇌물덕택으로그해겨울은

속내의없이도거뜬하게지낼수가있었다.

그뒤로가끔전령나갔다오는길에
잠깐씩얼굴을마주하며어색했던첫만남을상쇄해나갔다.

그러는사이봄날이오고있었다.

바닷가의봄은부드러운바다바람에실려제일먼저왔다.

저멀리하늘과바다가맞닿은수평선에서부터

봄은파도에실려넘실대며육지쪽으로훈풍에실려그렇게다가왔다.

그봄에<덧니주식회사>는최고로번성하며무르익어갔다.
온삼라만상이환한빛깔을띠고

하루가다르게봄빛을머금어갈즈음

그녀도봄빛으로수줍게한걸음한걸음
봄날이오듯이그렇게한발짝더내게로다가왔다.

창가의뽀송뽀송한버들개가뽀족이내미는날이였다.
면회를오겠다고알려왔다.

위문품으로무얼가져갔으면좋겠냐는물음에

담배를피우지않는난콜라와비스켓이면과분하다고말했고

그녀쪽에서는위문품목의추가를종용하는가벼운실랑이도벌였다.

미리약조한시간이었건만

괜스레위병소쪽을연신내려다보고있었다.

열어제낀행정반창으로는

짭짤한바닷바람이부드러운훈풍으로솔솔불어들어왔고

창으로보이는건너편산중턱의묘소에는

아지랑이가아른대며시야가득흔들리는따스한봄날이었다.

12시!

그때유행했던부라보콘의CM송에따라

약속시간을그녀가정했다.

연육교헌병검문소쪽으로흙먼지가일면서

완행버스가서는것이보였다.

잠시후아카씨아숲사이로

먼발치에서도금방알아볼수있는
특유의경쾌한걸음새로내려오는그녀가보였다.

쌍안경으로보니아래위가연초록색으로

앞섶에는앙증맞은넥타이가달린옷과멜빵바지가

귀엽게어울리는복장이였다.

남들의눈에띄게않게하려고

10여분후에행정반사무실을천천히나섰다.

철조망옆오솔길을따라가다가해안가마을쪽으로걸어나아가
큰길로내려서면군용츄리닝차림으로구보로뛰었다.

그녀는이미저만치산모퉁이를돌아가서안보였다.
속도를더해달려가니저만치앞쪽에서

마을에서나온동네총각두엇과실랑이를벌이는모습이보였다.

두사람의추근거림을피해

길옆에비켜서서오도가도못하고있었다.

최대속력으로내달리며이름을크게부르며

뛰어가니그젊은이들은자전거를돌려황급히마을쪽으로사라졌다.


"헉!헉!~누구냐?

"피!~~"

"클날뻔했네?"

"이리늦게나오시면어떻게해요."

"미안,미안"

"무서워서혼났어요."

"바아보~~."

곱게눈흘킴을하는그녀의상기된뺨을

살며시쥐어주었다.
특유의수줍음으로그녀의목과귀는빨갛게물들었다.

길옆의보리밭이랑에서는종달새가날아올랐다.

종다리를따라하늘을쳐다보니

구름한점없는맑디맑은청명한봄하늘이펼처져있었다.

마을길을버리고염전쪽으로난길을걸어갔다.

헬리포트에서쌍안경으로자주바라보며가늠해뒀던
그장소를찾아가려니생각보다는의외의길들이펼쳐졌다.

염전의하얀소금끼가배여햇빛에반사되는뚝길을

한사람은앞서고한사람은조금뒤로쳐져서걸어가며
그녀의콧노래소리가해조음에흩어져가까워졌다가는
멀어졌다가하는소리를들으며걸어나갔다.

♬~산너머조봇한오솔길엔~봄이찾아온다네~♪

노래를부르며설렁설렁한걸음으로겅중이듯

그녀는뒤따라오고있었다.

바닷가로연한산아래에당도하니

놀랍게도외딴초가집한채가

봄햇살아래한가로운풍경으로앉아있었다.

울타리도없는마당에는

토종닭몇마리만낯선사람을목길게빼고디룩디룩바라볼뿐..

방한칸에부엌하나.

말그대로단칸오두막집이었다.

집안에는아무도없고

활짝열어놓은문으로방안이어둠침침하게들여다보였다.

호기심에다가서려니

뒤에서그녀가내옷깃을잡아당겼다.

"아무도없는집이니그냥가요."
"잠깐이면돼.나이런분위기엄청좋아하는거알면서.."
"그래두…"

마루도없는흙봉당에성큼올라서서방앞에섰다.

방바닥은짚멍석이깔려있고

바람벽에는횃대하나달랑잇대어
그위로낡은옷들이사철가림없이수북히걸쳐져있고

뒷문위로작은사진액자하나달랑걸려있었다.

영정사진이었다.

그사진속엔

학생복을입은젊은남자가환히웃고있었다.

봉당에털썩앉아보니집뒤산에서

억수로많은참새소리가빠글빠글대며들려왔다.

그녀가펌프샘에기대서서

젊은영정사진과초가집한채인

그분위기에맞게노래를나직하게부르고있었다.

♬~넓고넓은바닷가에오막살이집한채
고기잡는아버지와철모르는딸있네

……

늙은아비혼자두고영영어데갔느냐.~♪

노래는끝났는데

눈감고듣던내귀에

그녀의가느다란

흐느낌소리가들렸다.

"여,이제봤더니수도꼭지네그랴?"

"……"

참새소리가득한마당에서서

그녀는돌아서서멀리바다쪽을하염없이바라보며

손수건으로연신눈가를찍고있었다.

초가집뜨락에는맑간봄햇살이눈부시게쏟아지고..

나는연신펌푸물을퍼올려서

애꿎은세수만자꾸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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