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의 단상 (4)

그렇게<덧니주식회사>의봄맞이야유회행사는조촐하게치러졌고

그야유회로인해매양그녀의수줍음으로

만날때마다어색해하던분위기가없어진것이좋았다.

그해의따스한봄은산과들에만오는것이아니었다.

그녀와나의가슴에도분홍빛의애드벌룬처럼두둥실떠서
이리저리봄산을넘나들고또넘어서찾아왔다.

그녀쪽에서자주전화가왔다.

그녀근무시간이면그녀의동료들이아예

우리의시간을위하여대리근무를자청해주었고

행정반근무자끼리돌아가며서게되는

상황실근무시간은하루중가장기다려지는시간이되었다.

참재주도많고재담도끊이는법이없이

밤새도록얘기하여도이야기가고갈되는법이없었다.

그러다가도이상하게만나기만하면
꿔다놓은보릿자루모양별반말이없고내이야기를듣기만했다.

어느날은훌쩍이며목메인소리로

울음반기침반이돼서전화를걸어왔다.

"흐흑!….아저씨~~~"

"?…."

"아저씨어쩌면좋아요."

"으흠?~~이거왠수돗물소리?.."

"앙!~~~~큭!큭!..넘넘슬퍼요."

"어쩐일인고?..우리전무를누가울리는고?"

"오순이가눈을안떠요."

"왠오순이?"

"전에말씀드린우리집강아지요.흑흑!"

"아!~~~그으노옴?"

"아침에일어나면제일먼저오순이를보는일인데.."

"…."

"오늘아침에는일어나지않아서다가가보니글쎄…"

"저런…쯧쯧!"

"며칠전부터감기기운이있는것같아서약도사다가먹이고고기국도말아주곤했는데…."

"음…."

"그제부텀아무것도입에아니대려고하기에속상해서

큰소리로혼도내주고엉덩짝을막때려줬었는데.."

"오~호!.."

"아저씨~~~어쩌면좋아요..불쌍해요..흑흑!."

"생명이있는모든것은꼭죽음이란슬픈의식을치르며

하느님곁으로가야만하는거야."

"….."

"그것이뒤에남아있는모든것에슬픔으로남아오래기억속에있어주다가

그것마저얼마만큼의세월이흐르고나면그또한점점잊혀져가곤하지.."

"…."

"우린그후의망각됨을더슬퍼해야하는데도

다행인지모르게도신은우리를망각의동물로빚어놓으셨지…"

"….."

"작은것의별리에너무상심치말자꾸나."

"그래도…."

"하기사나또한네경우라면이런말을할런지는..글쎄."

오순이란그개를파묻고무덤앞에쪼그려앉아있느라고

그날은좀늦게출근했노라고했다.

양지녁에무덤을만들고하염없이앉았는데

속눈썹위로무지개가떠오르더란다.

속눈썹끝에맺힌눈물방울에아주다섯빛깔을또렷이셀수있을만큼

영롱한무지개가뜨더란다.

그무지개가예뻐서울고

오순이가불쌍해서울고..

그날은오순이와지낸날들를추억했단다.

"아저씨도양지쪽에한번서보세요.그무지개가넘넘예쁘걸랑요."

"음~~그러지내꼭보고서결재를맡으리라.전무!"

"후후!…"

"아!..가만어떻게사장이전무에게결재를맡는다지?"

"어머!..그러게요?"

그날은내내오순이의재롱떨던애기며그놈의영특했음을추억하는

그녀의강아지얘기로끝났다.


그러면서도가끔씩말이끊어졌다가또흐느껴울었다.

다섯색깔무지개.

그무지개는아직도그바닷가에남아있을까?

아니..어쩌면색이조금은바랜모습으로라도있어줄런지모른다.

그녀의눈에촉촉히뜨던그무지개가이세상어드메쯤엔
필경있어줄께다.

산들바람이알맞게부는초여름으로접어드는좋은날이었다.

같은동료오양이라는아가씨집에서모내기를한다고
모(移秧)밥을먹으러나보고한번함께나오란다는전갈을전해왔다.

군대서는농번기대민지원의일환으로모내기를나가곤한다.

다른사병들은단체로꼭어릴때소풍가는날같이

기분좋게들나가서는모밥도얻어먹고막걸리도얻어먹곤들하는데

행정반원들은열외가되곤해서

그논배미를한번못나가는것이못내아쉽다는

내푸념아닌푸념에그녀가마련한일종의초대형식인배려였다.

굳이일요일에맞추려다보니모내기로선좀늦은시기였다.
그녀가근무하는우체국뒤수협건물을돌아송림사이에
있는우리가자주만나던그장소로나갔다.

사람들의눈에안띄려고길이아닌길을이리저리넘어서
얕은산과들을건너걸었다.

그녀는느릿느릿한걸음으로여기저기다참견을하며걸었다.

얕은산등성이를넘고보니그곳에는섬마을로는

흔치않은너른논과벌판이나타났다.

그논뚝길을걷다가네잎크로바를찾으려고풀밭에앉은그녀를

한참을또기다리다가무심코풀꽃반지를하나만들었다.

"여~~전무!"

"네에?"

"눈좀감아보게."

"……?

"앞으로나란히!!"

풀꽃반지를만들어살짝손가락에끼워줬다.

그리곤얼마후면행정반에서나혼자만이대대본부로인사명령이

떨어질것이라는아쉬움가득한말을슬몃전했다.

그녀의눈이크게떠지며눈물이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는걸어가며풀꽃반지를들여다보고

또걸어가다가잠시멈춰서들여다보곤걷곤했다.

그렇게늦장을부린탓에논에도착하고보니모밥은그렇다치고

모를내는일꾼들조차도그곳의논일을다끝내곤

산너머어디쯤에또있다는다른논으로들옮겨가고난뒤였다.

"모밥은어데가고허기짐만남았느뇨?"

"제가차부에가서사장님좋아하시는순대국밥사드릴께요."

"음?이초여름에무슨순대국?"

"차부옆푸춧간집에는사철계속국밥을말아요."

"그으래?호!~불행중다행이로고."

그푸춧간집뒷뜰에서그녀와먹던순대국밥은맛이참기가막혔다.

포도나무그늘아래에나무식탁과의자를내놓았던그뒷뜰.

낮은담장과그너머로푸른보리밭이랑과

건너산의송림이아름다운풍광을그려주던곳.

땀흘리며먹다가달려가선푸들대며세수하던그샘가.


그뜰에내려앉던정오의맑은햇살.

때마침들려오던뻐꾸기소리가하듣기좋아수저를잠시놓고귀기울이던곳.

식탁에까지겁없이날아와앉던참새떼들.

가게안채라디오에서들리던나른한유행가소리.

하늘에길게꼬리구름띠를남기고사라져가던하얀비행기구름.

그리곤고요.

그녀는아까부터뭔가를자꾸손에서폈다접었다를하고있었다.


넌즈시넘겨다보니다시들어거무테테한풀꽃반지를

무슨소중한보석반지라도되는양

손수건에고이겹쳐넣어두곤자꾸꺼내보고있었다.

해수욕장송림뒤언덕에있는

그녀의집이멀리내려다보이는산마루중턱까지배웅을했다.

그때까지서로가한마디의대화도없이산길을묵묵히걸었다.

풀내움은코끝에알싸하고

그녀의기진한발걸음은못내아쉬운듯기운하나없고

나른하고도구성진뻐꾸기소리만들려오던오솔길.

그녀는저만치걸어가다

뒤돌아보고손흔들며힘없이웃으며
어여가라는내손짓에고개를주억이며

느릿느릿걸어가는뒷모습너머로바다가보이고
힘없이걸어가는그녀의머리위로는하얀낮달이떴다.

#그녀와의이별뒤발신지주소도없이받은편지#

살아간다는것은만남과헤어짐과만남의연속일런지요?
오랫동안꿈꾸었던얼굴들이
멀어졌다가또가까와졌다가그럴때마다
늘생각하는것-인생-

어떤일들이
수없이부딪치며스치고지날때마다
운명이겠거니숙명이겠거니생각한다는것은체념일까요?
아니면자위일까요?

시간이
흐르고쉴새없이떠나가는보이지않는무엇인가의행렬이
가슴을스칠때마다
그리운사람,보고싶은사람,멀어져간사람,

아!
나에겐
떨쳐버릴수없는벌판처럼아득한벗일
뿐이랍니다.

어떤들판엔
들국화가무수히피었을겁니다.
아저씨가즐겨찾으시는곳에는무슨꽃이있나요?
어떤가을이내려와앉아있을까요?
아저씬지금어떤사람들을그리워하고있을까요?

어디론가훌쩍떠나는사람들의무리를싣고바람처럼달리는
열차와,허공에퍼지는기적소리와,
빙글빙글씨앗으로만남아있는코스모스의긴겨울준비를
뒤꼍에서서구경하는축에속해있지만
가을바람엔
어쩐지고독이서린듯합니다.곱기만한하늘아래에
살고있음에도내겐알수없는아픔만일고있을뿐입니다.

누가말했을까요?
잊혀짐이란묻힘과도같은것이라고…..

서서히묻히고있을어떤슬픔을아무도
모르겠죠.-슬픈사실아픈현실-

슬픔을이기는현명한방법은(?)
오늘보다내일은더많이잊는작업에몰두하여
까마득히,아련하게잊어야할것만같아요.

능수버들의
작은옷자락이쉴새없이떨어지는천안의충무로와인터체인지까지를
여러날걸었습니다.
이젠잊겠어요.잊지못할일들까지몽땅잊겠어요.
그리고나혼자라도아저씨랑의이별을위로하면서
길모퉁이어디쯤엔가있을찻집에들러서따끈한차라도들어야하겠죠.
그윽한차향으로가슴을채우면서…..
그리고아저씨를환히웃으며보내드릴래요.행복하세요.꼭요.

오양한테서전화로아저씨의얘기를들었습니다.
잠시라도걱정하게해서대단히죄송합니다.
건강하게열심히잘크고있습니다.

아저씨건강하세요.슬퍼요.이젠다시만날수없겠죠?
무용이집에갔던날이어제같은데……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아저씨안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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