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의 단상 (5)

제비꽃.
그녀를생각하면떠오르는꽃이다.

터미널에서만나식사를마치고태안읍을
빙둘러싸고있는백화산쪽으로난골목쟁이로접어들었다.

하천을따라조금올라가노라니옛스러운분위기가
그윽한한옥이있고

그담장너머로하얀목련이청초하게핀길을걸었다.

가던길을멈추고한참을기웃거리며담장안을넘겨다봤다.

아마도그집의후원쪽인듯했다.

툇마루며쪽대문은비바람으로풍화되어

만지면금방이라도부서지며떨어져나갈것만같았다.

그낡은처마며용마루가오히려그윽한분위기를자아냈고

그분위기에목련꽃이더없이잘어우러졌다.

언젠가목련꽃을보면팝콘이연상된다던

그녀의말을떠올리며백화산쪽으로올라갔다.

산전체가바위로이뤄진그산은산세가가히환상적이었다.
무슨커다란원형극장에앉은듯이상하고묘한분위기를자아냈다.

산정상에는군레이다기지가있어민간인통제구역이라서

오르진못하고산허리쯤에서앉아읍내를내려다보고앉았다.


옷에다제비꽃을꽂고서나란히앉아바라본

태안읍은봄날아지랑이속에아른거렸다.

♬~바위고개언덕을혼자넘자니~
옛님이그리워눈물납니다~~..♪

그녀의청아한목소리는바람에실려산에들에멀리
멀리울려퍼져나아갔다.

그녀의노래가어찌나애잔하게들리는지한참을침묵으로앉아있었다.

그녀를보니눈가에이슬같은눈물이촉촉하게고여있었다.

백화산을내려오며작은길모퉁이를돌아찻집에들었다.

자세하게상급부대로의전출을이야기했다.

그리고그간의호의와따뜻한배려에대하여

진심어린감사를표시했다.

지금의중대장이대대에서대위계급중서열상최고참이었다.

공석이된작전관으로중대장이자연스레올라가게됐다.

가면서굳이나에게같이일좀하자며

파견형식으로인사명령을낸것이었다.

삭막한군대생활에따뜻함을불어넣어준것과

다시인연이닿으면또만나게될것이라는이야기를띄엄띄엄했다.

그다실에서그녀가내게

사장님을좋아하지만자신은절대내게다가갈수없는사랑이라고

무심한듯간결하게운을떼었다.

여고를막졸업하고서울로상경하여지낸이야기와

첫타향살이의고단함과자취집에서겪어낸

자신의의지와는상반된

기억하고싶지않은마음과몸의씻지못할상처를

라디오연속극에서나나옴직한이야기를

어깨를들썩이며까지오열을토하면서

충격적이고도아픈사연을내게고백하듯풀어갔다.

그랬었구나.

그런큰상처를안고다시고향으로돌아온것이었구나.

그래서내게더이상다가올수없는

그녀만의외사랑이었구나.

나는찻잔만내려다보며아무런대꾸없이그녀에게

어찌위로를해야할지마땅한이야기를도통찾지를못하였다.

무슨말을어찌해야하는지

눈물로눈가가번들거리는그녀의모습에당황스러워지기까지했다.

그녀.

오전까지는애써명랑을가장하며떠들곤했는데
오후가되고부터는통말수가줄어들어우울해했다.

"언제..무용이네집에놀러가요."

"갑자기왠무용이네?"

"그애들이사장님을엄청보고싶어할거예요."

"그렇찮아도인사나드리고떠날까했는데.."

다음일요일

쫄병시절근무하던그초소도들러볼겸

무용이집에도인사할겸

그날다시만나기로약속하며돌아왔다.


돌아오는버스에서그녀는내내창밖만바라볼뿐한마디
말도없었다.

차창밖으론이곳으로처음전출올때

송림사이로간간이보이곤하던바다가스쳐지나가고있었다.

무용이네집에가는날은온산의뻐꾸기소리가
가는곳마다이산저산을날아다니며구슬프게울어댔다.

그녀와창기리차부에서만났다.
버스시간을놓쳐버려

퇴근하는방위병의오토바이를얻어타고나갔다.

오토바이가신작로등성이를넘어서며차부쪽을보니
그녀는차부에서한참을떨어진밭머리쪽으로나와고개를숙이고있었다.

처음전출오면서걸어가던그자갈길을그녀와말없이걸어갔다.

마을이끝나고산모롱이만돌면무용이네동네였다.
그밭등성이에서잠시앉아쉬었다.

"일찍나왔구먼."

"……"

"이곳은처음이지?"

"……"

"이길이내가전출오면서맨먼저밟았던길이지."

"….."

"그때가엊그제인듯한데…."

그녀는돌아서서멀리바다쪽수평선만말없이바라보고서있었다.

무용이네빨간기와집이보였다.
대문은별반사용하지않고항상텃밭쪽뒷문으로만드나들었다.

여전하게집뒷산숲에서는무수한참새소리가
집안가득하게들렸고

담장밖오동나무는가지가벌써마당안까지드리워졌다.

담장에잇대어심어놓은나무들이많이자랐고
마당가득하게늘어놓은화분과분재(盆栽)에는

그릇마다에푸른이끼를소담스레담고있었다.

무용이아버님이놀라며반겼다.

"어이구!어쩐일이데연락없이?"

"별고없으셨데요?"

"나야…뭐."

"아주머니는어디가셨나봅니다?"

"응.잠깐볼일있어서백사장포구엘나갔지."

"별반변한게없네요."

"떠난지얼마나됐깐디?"

"애들은공부잘하고요?"

"자네떠나고갈칠놈이있어야지."

이런저런얘기를나누다커피한잔하고일어섰다.

"왜?좀쉬었다가지."

"바다에좀나갔다가가면서들르지요."

"그려점심때면애덜엄마올거구먼."


바다로나갔다.

너른해안백사장을보니가슴이탁트였다.
줄곧말없이뒤에처져걷고있는그녀에게
분위기를바꿔볼요량으로뜀뛰기를제의했다.

"저기보이는바위동굴까지누가먼저가나시합!"

"……"

"요~잇~땅!"

뛰면서보니그녀는저만치뒤에서그냥걸어오고있었다.
힘하나없는걸음이었다.

동굴앞에서서그녀를바라다봤다.

발끝만내려다보며걸어오던그녀는

저만치서걸음을멈추고나를바라봤다.

나는애써외면하며삼봉해수욕장암벽위의하늘만바라봤다.

어느결에가까히다가온그녀.


"슬퍼요.흑!~"

"무슨…."

썰물로텅~빈백사장을함께걸었다.

물결이멀리부터왔다가달아나버리며

물결무늬고운모래톱을만들고있었다.

둘은발자욱을남기며말없이끝간데없는

가없이넓고넓은하얀모래백사장을걸었다.

걷다뒤를돌아보니봉우리세개가아스라히멀어졌고
두발자국만나란히

평행선을그리며따라오고있었다.

그발자욱을밀물이서서히차오면서지워가고있었다.


"노래좀불러주세요."

"?.."

"그냥아무노래나.."

♬~바닷가에~모래알~처럼

수~많은~사람중에만난~그사람..!

얼결에부른다는게그노래가나왔다.

그녀는내노래가채끝나기도전에모래밭에
쪼그리고앉아얼굴을감쌌다.


아주소리내어엉!~엉!~어린아이마냥울었다.
한번터진울음은오래도록끝나지않았다.

아무도없는넓디넓은백사장한가운데앉아울었다.

살며시손을잡아일으켰다.
오던길이아닌여울목으로돌아나갔다.

뒤에선바닷물이만조시간에맞춰쏴아!~쏴아!~소리내며

그녀와나의텅빈가슴으로밀려들어오고있었다.

눈이퉁퉁부어오른그녀는마을로가지못하고
먼저차부로가서기다리겠다고하여혼자서무용이네집에들렀다.

푸짐한점심상을앞에받고서도식사를못하고일어서며
그냥나오려니아주머니가못내서운해하며
어쩔줄을몰라하셨다.

"인저못보간디?"

"언제시간나면놀러오겠습니다."

"그려..제대전에꼭한번놀러와."

"그러지요.그럼..안녕히들계십시오."

"잘가아~~~꼭한번와야혀?"

산모퉁이를돌아서며뒤를보니아주머니가
텃밭머리에까지나와계셨다.

그좋았던동네.

훈훈했던人情들.


눈부신자갈길을걸어가며올려다본

파란하늘끄트머리쯤의틀모시산자락에서

구성진뻐꾸기소리가들려왔다.

메아리치듯

벌판저편마을회관뒷산에서도
화답하듯뻐꾸기소리가구성지게들려왔다.

귀는자꾸먹먹해져가고…

써놓았던편지이고
주인을찾지못하여맨날슬퍼보이는편지인것같아
같이보냅니다.
……………………………………………

월광의도시바다를보면서
내마음은온통아저씨얘기에만젖었습니다.

새삼스럽게물소릴연모하면서
잠못이룰줄누가알았었나요
무얼생각하세요?
아저씬이해변의월광을보신적이있나요?

높은파도가출렁거리는해운대의아침바다에서도
여기저기모래바닥에드러누운
사람들의고뇌어린(?)얼굴들을대했고
따사롭게쏟아지는햇살속에서살갗이
아프도록그을렸고난될수있는대로
동료들과자주웃을수있는기회를잡으려
바닷물에서물싸움,등등을많이했어요.

모르실꺼예요.
**이가얼만큼아저씨를그리워하는줄….

요즈음은
앉으나서나누우나
맨날맨날아저씨생각만해요.

보고싶어요.
멀리있으면좋을것같아서먼곳을달려왔지만
멀리일수록더욱더보고싶어요.

**이의이계절은
영혼마저감당키어려운계절입니다.
언제나비.
언제나비일뿐입니다.

하지만
노랑나비가훨훨날았고살그락거리는잔디스치는
바람소리도들었고
너무맑아눈을감아야했던봄날들의
이야기가나에겐가장고귀한추억으로
남아있는것으로서만족하려합니다.

건강하세요.
굉장히보고싶어편지했어요.

-그녀의이별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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