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의 단상 (끝)

그녀.

지금에와서생각해보니

어찌그녀의마음을제대로더깊이헤아리질못했는지

스스로야속함으로남는다.

그때나지금이나상대방이스스로말하기전에는

아무리궁금한것일지라도내쪽에서먼저물어보질않는다.

그녀가도회지에서직장생활을하다가

마음의병이깊어고향으로돌아온지일년여가됐다는것을

그동네에사는방위사병에게듣기는했지만

더자세한것은알지못했다.

왜오순이란강아지의죽음에그리도애닲파했었는지…

그녀스스로어느선을긋고

그이상내게다가서는것을극히절제하는것을느낌으로감지하면서

나또한그녀의마음에반하는행동을하지않았다.

나와의이별후에

그녀는직장인우체국도그만두고홀연히종적을감춘일이며

전역한그이듬해여름휴가차그니가염려가돼그곳을찾았을때

그녀의가족모두가

어디론가이사를가버려텅비어버렸던

그니의집.

그녀의사랑은처음부터철저하게외사랑이었다.


더내게다가서지도못하고

그렇게그녀스스로가내게서멀어져간안타까운외사랑.

그녀와우체국으로갔다.

그곳에서그녀의동료들과내일떠나게됐다는인사와

그간의고마움을행정반요원들을대표하여감사한마음을전한다는
그런통상적인인사를나눴다.

그때우체국사무실케비넷위

먼지쌓여올려져있는라디오녹음테잎에서

흘러간팝송가수페티페이지의

애수띤노래가하염없이흘러나왔다.

우체국간이의자에앉아음악만들으며고개를숙이고

마우런말도하지못하고

발끝만내려다보던그녀.

창밖으로쏟아지는초여름햇살을초점없는눈으로
바라보며서있던

창가의나.

우리는몽산포로난길로나섰다.

처음으로만나어색하게걷던길.

먼지뽀얀구멍가게에서마을전체가정전이되던날

양초를사들고헤매던그날밤의작은소동.

그때손등으로떨어지던그뜨거운촛농.


언덕배기위의작은교회당.

아무도없는그곳에들어가그녀는건반을치고

난소리높여가곡을부르던일.

그런날들을추억하며묵묵히걸었다.

바다쪽으로나아가는길과

그녀의동네로들어가는갈림길에까지왔다.

"이세상마지막을가는사람같이너무슬퍼하지말자꾸나."

"……."

"업무파악이어느정도끝나면그때일간놀러오지."

"제대하시는그날까지..건강하세요."

"그래.고맙구나."

"그리구..이거."

"?"

"그동안..너무고마웠어요."

"무슨소리를하는거야?"

"흑!~"

"시간이없구나동료들과의송별회식때문에.."

"……"

"내일10시쯤해서육로가아닌해상으로갈것같구나."

"……."

"왜알지?[충의16호]라고속도빠른군초계정.그배를타고가."

"……."

"그럼..나..간다."

거수경례를부치는나를

그녀는눈물범벅으로바라보았다.

애써외면하며구보로쉬지않고뛰었다.

고개를넘으며돌아다보니

길가에얼굴을감싸고앉아울고있는그녀가

점점내시야에서멀어지고있었다.

버스뒷좌석에앉아

그녀가건네준하얀손수건을펴보니
모내기날매줬던

빛바래서말라버린풀꽃반지가있었다.

그날저녁의송별회식에서
괜스레우울하여술을많이마셨다.

어렴풋이눈치채고있던몇몇동료들이말없이자꾸따라주었다.
평소못마시는술을다받아넘겼다.


모두가잠든시간에목말라깨어일어나

바닷가벼랑위에서
한참을그녀와의이별을생각했다.

상황실로달려가우체국으로전화를해봤다.

그녀가아파서숙직실에누워있는데누구의전화도안받는다고했다.

이튿날묵직한머리로일어나우체국에전화를또해봤지만
그녀는퇴근하고없었다.

안녕?
추적추적비가내리고
우린이별했고
더이상해야할말이없어야하고….
그러나**인
펌프질하는가슴깊은곳의아픔을자꾸만그리움이라
생각하나봅니다.

서로의다른길목을향하여돌아선순간부터
**이의영혼은무너져내렸고
주체할수없는얼굴의영상이수없이쌓였고…
못견디게보고싶어질땐
그져"하나님보고싶어요"라고만말하자결심했고
진심으로행복을빌어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슴속에있는사람은
왜보내질못하는걸까요?
왜보내지지않는걸까요?

그제도어제도
오늘도
**인하나님보고싶단말을수없이뇌까렸읍니다.

***

비굴한사람이되지않기위하여
열심히일하고
혼자가되는시간엔그림을그리고양초를만들고
음악을듣고….
좀있으면웃을여유도생길거예요.
술많이마시지마세요.
건방진조언일까요?
술많이마실까걱정이돼요.

맨날맨날행복한날이되라고기도해줄께요.
그리고이쁜**이가되지못한것
진심으로용서를빕니다.

-그녀의마지막편지-

군초계정[충의16호]에올랐다.

중대장이대대작전관(교육관)으로가면서해안정찰을겸해
가고자해서무전기를가지고따라타게됐다.

술이덜깬빈속으로배에오르니현기증이났다.

평소친하게알고지내던그배의팀장(선장)인김중사가

쥬스와식빵을특식이라며내게줘

몇조각으로조식을대신했다.

몽산포앞에서는해안쪽으로배를바싹붙여서

느리게운항해줄것을부탁하며

속이메스꺼워선실에들어가누웠다.

잠시후김중사가몽산포앞이라며알려주기에갑판으로나갔다.

그녀.

그녀가해안절벽바위위에서서

이쪽을바라보고있었다.

쌍안경을들여다보니

손을앞으로모으며

무슨기도같은것을하고있는것같았다.


뱃고동을울려주며손을흔들어주니

그녀쪽에서도손을두어번힘없이내저었다.


배는이미그녀가서있는

절벽바위쪽을스쳐지나가고있었다.

그녀는점점멀어져만갔다.


이쪽을향하여몇발자국걸음을옮기는것같은데

쌍안경이자꾸흔들려잘보이질않았다.

눈물을훔치고있는지

연신얼굴께로손이올라가는것이

가끔씩쌍안경안으로들어왔다.

점점작아져가는그녀에게계속손을흔들어주는것으로밖에
달리어쩌지를못하고..

뱃머리를서성였다.

그것으로그녀와나사이는

영영마지막인이별이되고말았다.

그뱃머리에서손흔들던기억이

그녀에대한마지막추억으로남고말았다.

푸른물결과뱃머리로모여들던갈매기.

그녀는자꾸멀어져

조그만흰점으로작아져가고

강렬하게쏟아지는뜨거운태양.

그리고

그선상에서

그녀가보았다는

속눈썹위로촉촉하게뜨는오색무지개를보았다.

바다와수평선이뒤범벅된

내속눈썹위로

무지개가아롱지고

희뿌연안개바다가펼쳐지고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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