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산길을 가며 김소월을 읽다

내마음에서눈물난다

뒷산에푸르른미루나무잎들이알지

내마음에서

마음에서눈물나는줄을

나보고싶은사람

나한번보게하여주소

우리작은놈날보고싶어하지

건넌집갓난이도날보고싶을테지

나도보고싶다

너희들이어떻게자라는것을

나하고싶은노릇나하게하여주소

못잊혀그리운너의품속이여!

못잊히고

못잊혀그립길래

내가괴로워하는이여

오다가다길에서

만난이라고

그저보고그대로

갈줄아는가

뒷산은청청

풀잎사귀푸르고

앞바단중중

흰거품밀려든다

산새는죄죄

제흥을노래하고

바다에흰돛

옛길을찾노란다

자다깨다꿈에서

만난이라고

그만잊고그대로

갈줄아는가

십리포구산너먼

그대사는곳

송이송이살구꽃

바람과논다

수로천리먼먼길

왜온줄아나

예전놀던그대를

못잊어왔네

우리집동산에는풀이푸르고

숲사이시냇물모래바닥은

파란풀그림자떠서흘러요

그리운우리임어디계신고

날마다피어나는우리임생각

날마다뒷산에홀로앉아

날마다풀을따서물에던져요

흘러가는시내의물에흘러서

내어던진풀잎은엷게떠갈때

물살이헤적헤적풀을헤쳐요

그리운우리임어디계신고

가엾은이내속을둘곳없어서

날마다풀을따물에던져

흐르는잎에나말해보아요

못잊어생각이나겠지오

그런대로한세상지내시구료

사노라면잊힐날있으리다

못잊어생각이나겠지오

그런대로세월만가라시구려

못잊어도더러는잊히오리다

그러나또한껏이렇지요

그리워살뜰히못잊는데

어쩌면생각이떠지나요?

1934년12월하순어느날

평안북도정주의산자락에자리잡은무덤들주변을

한남자가서성거리고있었다.

삼십초반쯤으로보이는남자의얼굴에는

깊은그늘이드리워져있었고

초췌해보였다.

그는간략한성묘를마친후

한무덤가에앉아무덤에뿌리고남은술을천천히마셨다.

해가뉘엿뉘엿질무렵

남자는허청거리며산길을내려갔다.

내려오는길에그는장에들러아편을구했다.

그리고서둘러귀가해서아내와함께밤늦도록술을마셨다.

그는아내가술에취해잠이든것을확인하고

장에서구해온아편을삼키고영원한잠에빠져든다.

그다음날인1934년12월24일새벽에

그남자는싸늘한시신으로발견됐다.

아,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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