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가을, 고향집

젊은날

가을이면휴가를내서

시골집에서홀로넉넉하게앉아지내곤했다.

책을읽으며

또음악을듣다가
고향의뒷동산에올라

고요히깊어가는가을속에앉아

나만의조용한시간을보내곤했었다.

지금은자취없이사라진고향집.

유독할아버지가기거하시는사랑방에서

휴가의사나흘을보내곤했는데

이유는앞,뒷문의가을풍경이좋아서였다.

늦은잠자리에서일어나면

다들아침일찍가을들판으로가을걷이하시러나가시곤

집안은고요한정적에묻혀있곤했다.

구수한된장국만있으면

아무런찬이필요치않은식성인지라

어머니께서차려놓으신소반상의조식을

간단하게후루룩!말아먹고

우물물을두레박으로길어올려서

정신나게세수를하고는

고요히가을이가라앉은시골집의

청랭한아침나절의풍경을

사랑방앞뒷문을활짝열어놓고

물끄러미내다보며지냈다.

높은봉우리
뒷산의자작나무숲이며

뒷란의감나무며

담배건조실위로흩어지는흰구름과

변소간의초가지붕을바라보면

그잿빛으로곰삭은초가지붕위로

탐스럽게얹혀있는박덩이가
따가운가을볕아래영글어가는모양을

고요한마음으로바라보는일은

고향집에서맞는가을풍경의으뜸이었다.

가을아침나절의한가함을

바쁨중에서가끔가다마주하면

요즘도눈감고생각하는풍경은

으례삼십년전그시절의

그리운풍경속으로들어가앉아있곤한다.

사랑방뒷문바로옆에는

꽤넓은앉은뱅이책상이있었다.

한보따리싸들고내려온책들은

가을풍광에취해서

책상에펼쳐놓은그대로

책장이넘어가질않았다.

하릴없이서랍속을열어보면

할아버님쓰시던붓과벼루가가지런히놓여있었고

벽에는낡은갓과탕건도걸려있었다.

왕골로짠자리를방바닥에깔았는데

그왕골자리의은근한내음이좋아

휴가기간내내사랑방에서할아버지와함께지냈다.

크게심호흡을하면

청랭하고맑은달디단공기가

참좋았다.

가을하면무엇보다도

잿빛으로곰삭은

초가지붕을바라보는일을참좋아했는데

고향떠나서울로유학하여살면서

그풍경이눈에삼삼하도그리워서

사춘기적고교시절얼마나몸살을했는지모른다.

뒷문을활짝열어놓고
턱고이고앉아

눈을게슴츠레하니실눈뜨고

무연히자작나무숲을바라보는일이

하루일과의대부분을차지하였다.

그러다오후쯤에는

할아버지나무목침을베고서
달디단오수에빠져들곤했었는데

낮잠에서일어나
마당가미류나무를올려다보면

팔랑,팔랑,흔들리는나뭇잎의진초록과
마당멍석에널어놓은태양초고추의

빨간빛의극명한대비색의흔들림은

잠에서아직덜깬눈을

잠시동안혼란스럽게하곤했다.

흰고무신을신고뒷짐지고

느릿느릿뒷산인높은봉우리에오르면

저녁해의노란햇살속으로

고향마을이내려다보였는데

거기앉으면

산아래멀리에서
마을에서뛰노는쪼무라기들의함성이

가물가물들려오곤했다.

서녘의황혼이

동쪽하늘저편멀리의뭉게구름까지

붉게물들이던풍광.

그저녁높은봉우리에올라내려다보던
저녁한때의자작나무숲의풍경은

또얼마나장엄했었던가.

[높은봉우리]라는

고향마을지명만큼이나

고산지대에서만서식하는

자작나무숲의

풍경.

내려와

사랑에서

왕골돗자리에

목침을베고누워보면

불어오던청랭한가을바람.

고개를들면보이던자작나무숲.

그고향의사랑방에서

잿빛으로삭아가는초가지붕을

하루왼종일바라보며지낼그날들은

정녕다시올수는없는것인가?

이가을..

나모르는길을따라

어드메쯤의산촌마을로들어

나의애마적토마와함께

고요하고한갓진山村에들어가

깊어가는가을풍경속에서

넉넉하게앉았다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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