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베개

업무가한가한틈을이용하여

서책에깊이들어옛글을읽는데

어디선가간헐적인기계음이들려오는것이었다

그진원지를찾아창가에서서바라보니

건너편과수원에서겨우내웃자란배나무를전지하는소리였다

다시책상으로돌아와

내가좋아하는글속에몰입되어져

[산나물]이란노천명님의글을만나그반가움으로

유년의고향언덕배기를올라동무들이름을불러보았다

먼지가많은큰길을피해

골목으로든다는것이

걷다보니부평동(富平洞)장거리로들어섰다.

유달리끈기있게달려드는여기장사꾼(아주마시)들이으레,또

“콩나물좀사보이소예,아주머니요,깨소금좀팔아주이소”하고

잡아다닐것이뻔한지라나는장사꾼들을피해빨리빨리달아나듯이걷고있었다.

그러나내눈은역시길가에널려있는물건들을놓치지않고보고있었다.

한군데에이르자내눈이어떤아주머니보자기위에가붙어서떨어지지않았다.

그보자기에는산나물이쌓여있었다.

순진한시골처녀모양의산나물이콩나물이며두부,시금치들틈에서

수줍은듯이그러나싱싱하게쌓여있는것이었다.

얼른엄방지고먹음직스러운접중화가눈에들어온다.

그밖에여러가지산나물들도낯이익다.

고향사람을만날때처럼반갑다.

원추리며접중화는산소의언저리에많이나는법이겠다.

봄이되면할미꽃이제일먼저피는데이것도또한웬일인지무덤들옆에서많이핀다.

바구니를가지고산으로나물을뜯으러가던그시절이얼마나행복했는지

그당시에는느끼지못했던일이다.

예쁜이,섭섭이,확실이,넷째는모두다내나물동무들이었다.

활나물,고사리같은것은깊은산으로들어가야만꺾을수가있다.

뱀이무섭다고하는나한테섭섭이는부지런히칡순을꺾어서

내머리에다갈아꽂아주며,이것을꽂고다니면뱀이못달려든다는것이었다.

산나물을캐러가서는산나물만을찾는것은아니다.

우리는이산저산으로뛰어다니며뻐꾹채를꺾고싱아를캐고

심지어는칡뿌리도캐는것이었다.

칡뿌리를캐서그자리에서먹는맛이란또대단한것이다.

그러나꿩이푸드덕날면깜짝들놀라곤하는것이었다.

내가산나물을뜯던그그리운고향엔언제나가게될것인지?

고향을떠난지30년.

나는늘내기억에남은고향이그립고

오늘처럼이런산나물을대하는날은

고향냄새가물큰내마음을찔러어쩔수없이만들어놓는다.

산나물이이렇게날양이면봄은벌써제법무르익었다.

냉이니소루쟁이니달래는그리고보면한물꺾인때다.

산나물을보는순간나는그것을사고싶어

나물을가진아주머니앞으로와락다가서다가그만또

슬며시뒤로물러나지않으면안되었다.

생각을해보니산나물을맛있는고추장에다참기름을쳐무쳐야만,

그래서거기다밥을비벼서먹어야만맛이있는것인데내집에는고추장이없다.

그야아는친구집에서한보시기쯤얻어올수도있기는하겠지만

고추장을얻어서나물을무쳐서야그게무슨맛이나랴.

나는역시싱겁게물러서는수밖엔없었다.

진달래도아직꺾어보지못한채봄은완연히왔는데

내마음속골짜구니에는아직도얼음이안녹았다.

그래서내심경은여태껏춥고방안에서밖엘나가고싶지가않은상태에서

모두가을씨년스럽다.

시골두메촌에서어머니를따라달구지를타고이삿짐을실리고

서울로올라오던그때부터나는이미에덴동산에서내쫓긴것이다.

그리고칡순을머리에다안꽂고다닌탓인가,

뱀은내게달려들어숱한나쁜지혜를넣어주었다.

10여년전같으면고사포(高射砲)를들이댔을미운사람을보고도

이제는곧잘웃고흔연스럽게대해줄때가있어,

내가그순간을지내놓고는아찔해지거니와

풍우난설(風雨亂雪)의세월과함께내게도꽤때가앉았다.

심산(深山)속에서아무거리낌없이,

자연의품에서퍼질대로퍼지다자랄대로자란싱싱하고향기로운

이산나물같은맛이사람에게도있는법이건만

좀체순수한이산나물같은사람을만나기란요즈음세상엔힘드는노릇같다.

산나물같은사람은어디없을까?

모두가억세고꾸부러지고벌레가먹고어떤자는가시까지돋혀있다.

어디산나물같은사람은없을까?

─1953.3.25.부산피난지에서

어머니가생존해계실적에

안해는어머니를목욕시켜드리고는

채머리가마르지도않으신어머니몸을뒤에서안고

거실햇볕바른곳에서젖은머리를뽀송뽀송하니

보드라운수건으로비벼말려드리고는

어머니를안해무릎에눕히고서

귀지를파드리곤하였다

허면

옆에서읽던책을내려놓고는

고요하니정겨운고부간의모습을저윽히바라보다가는

어머니께서개운해하시며해맑은표정으로당신방으로들어가신연후에

나도따라슬몃안해무릎을베고누우면

안해는눈을곱게흘키고는

귀지를파주곤하였다

맑은햇볕은

거실가득들어와내옆에같이눕지요

시계침소리는아득히멀어지지요

웅얼거리는안해의목소리는자장가로

아득하게들려오지요

천장에서도배반자를뜯는쥐소리가귓속에서

사각사각들려오지요

그만스르륵~~

토막잠에빠져들어

세상에서제일편안함에들라치면

안해가어깨를흔들어

어여안방에들어가침대에서편히자라고깨우는데

그게그리도야속하고아쉬웠다

세상에서제일편안한자세로

안해의따순체온이전해오는무릎베개를베고누우면

아득한어머니품속같고

항아리둠벙속같고

햇솜을틀어새광목으로

이불호청을꿰맨유년의어느봄날저녁

폭신푹신한솜이불위에

두팔두다리를한껏벌려큰대자로누운그저녁같이

너무너무편안하고아늑한데

안해는

자꾸등을떠미는데

여간

아쉬운것이아니었다

잠이고뭐시깽이고

다산통이나버려심드렁하니일어나앉으면

안해가따순차를가져다주는데

그도마뜩찮아베란다소청마루로나가앉아차를마시고는

다시거실에길게누울적에

저녁해함께

내곁에눕는

해질녘

어디선가들려오는동요소리있어

나직나직불러보노라면

유년의어느날엔가

어머니무릎을베고누워

앙가슴하얀옷고름을헤치면맡아지던

어머니의땀냄새와젖냄새가

풍겨오는것이었으니..

아,

그립고아쉬운

어머니의무릎베개

2:16나뭇잎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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