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BY glassy777 ON 5. 31, 2014
자화상
산모퉁이를돌아
논가외딴우물을홀로찾아가선
가만히들여다봅니다.
우물속에는달이밝고
구름이흐르고하늘이펼치고
파아란바람이불고
가을이있읍니다.
그리고
한사나이가있읍니다.
어쩐지그사나이가미워져돌아갑니다.
돌아가다생각하니
그사나이가가엾어집니다.
도로가들여다보니
사나이는그대로있읍니다.
다시
그사나이가미워져돌아갑니다.
돌아가다생각하니그사나이가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달이밝고
구름이흐르고하늘이펼치고
파아란바람이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있읍니다.
-윤동주-
먼지쌓인
앨범집을꺼내
이리저리펼치다가
문득만나지는청소년기의자화상
아..내게저렇게풋풋하고푸른시절이있었던가?
꿈도많고감성깊은사춘기의한시절
저녁마다
공부하다가잠시쉴겸
트렌지스터라디오에고무줄로칭칭감은
라디오보다더큰밧데리가감긴
내마음의따스한친구였던
트렌지스터라디오
그를보듬어안고
자취방창아래평상에서
밤하늘의별들을올려다보면서
감미로운폴모리아악단연주와
기차소리와기적소리아련히
시그널음악이깔리면서
시작되었던감성프로
밤의플렛트홈
여자성우김세원씨의
부드러운목소리가울려퍼지던
밤하늘아래별떨기그별하나였던
별같이초롱초롱저영롱하던
나의고교시절
풋사랑에잠못이루고
이리저리뒤척이며밤하늘의은하수를건너던
꿈많던소년인흑백사진속
저청소년기의자화상
모표를광약으로
반짝반짝닦아서헝겊으로문지르고
교련복에각반을차고선에
목총으로분열을하던
그교정의교단과
까만나이방의
교련선생님
왜그리도무지막지하게우리들을후들겼는지
조그마치라도대열에줄이맞지않으면
업드려뻗쳐놓고빠따를후려갈겨
정신을혼미하게군기잡던
호랑이선생님
그무지막지
교련선생님께서
얼굴가득죽은깨가
깨알같이빼곡히박혀있어
백미터미인이셨던
청순가련
예쁜송기숙
독일어처녀여선생님앞에서는
왜그리도번들거리며비굴하도록
급사람좋은웃음만지었는지
우리들의눈흘킴을
아셨을까나?
저흑백사진속시절
나의풋사랑
아직도단발머리소녀로만남아있는
단발머리여고생
임명숙
이젠누구의손자
할머니가되어있겠지?
내앞에서바들바들떨림이전달돼왔던
매양고개숙인단발머리에얼굴이가려
두발짝내뒤만따라걷던그소녀
자취방골목언덕배기를지나
놀이터공터에함께앉아
이야기를나누다가
그소녀의가게집앞에서헤어질때면
우리들머리위에서눈부시게
환하게빛나던
가로등불빛
헤어지기아쉬워우물쭈물
손이라도잡고파서망설이다가는
그예끈
그소녀의호랑이같은아버지께들켜서
혼비백산놀라서두손으로입을틀어막고
동공이동그랗게커지면서놀란토끼의표정을짓던
수원여고2학년의세라복흰카라의소녀
지금쯤어느하늘아래에서
나같이귀밑머리희끗희끗늙어가고있을까
철저한아버지의감시로다시는만나지못하고
밤마다그소녀집골목언저리를찾아가
가로등불빛을피해어둠을밟아가며
그소녀의
창을바라보던
안타까운
응시
2학년2학기
가을초입무렵
그소녀의창에다시는불빛이켜지지않고
장대비가온통앞을가리며낙뢰로번쩍거리던
그골목쟁이에서하염없이비를철철맞으며
이사를간그소녀의공부방창아래서
처음으로눈물나게겪어내던
풋사랑의아픔
이별이란
말조차서로건네지도못하고
이사를가버리며헤어져간
그청소년기
상실의
아픔
풋사랑의
미련만남아
밤마다밤하늘은하수만
하염없이올려다보던
저기저
흑백사진속
청소년기의고교시절의
내자화상
첫사랑이름자와
내이름자는무덤까지가지고간다는
영국속담을빌리지않더라도
지금도눈감으면
그소녀의미목구비와알듯모를듯짓던
부끄러움가득묻어나던그소녀의
미소까지그려지는
흑백사진속
자화상
아,
푸르렀던풋사랑의
한시절이떠오르는
자화상
다시한번
그시절로돌아갈수는없을까나?
아름다운시절아,
너어디만큼가고있니?